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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Oct 22. 2024

글을 쓰고 싶은 마음

글쓰는 마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걸까?

그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태초의 내가 썼던 글들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초등학생 시절 : 일기]

나는 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당시, 매일 해야만 하는 숙제 중 하나는 일기 쓰기였는데 등교하자마자 전날 썼던 일기를 선생님께 제출하면 선생님은 그중 잘 쓴 일기 (나는 그렇게 믿었다)를 1~2개 선정해 하교 전 발표를 시키셨다. 어느 날은 내가 쓴 일기가 참 재미있었다며 친구들 앞에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발표 요청에 한편으로 당황했지만 또 한편으론 누군가에게 재미를 주었다 생각하니 칭찬받은 느낌이라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후의 나는 선생님의 칭찬을 부쩍 의식하는 아이가 된다. 매일 (칭찬받으려고) 일기를 썼다. 때로는 선생님이 읽을걸 염두하며 굳이 안 해도 되는 묘사를 구체화했다. 전엔 엄마가 방귀를 뀌었다로 썼는데, 그날 이후로는 엄마가 방귀를 "뿌우우 우웅" 꼈다로 썼다. (엄마 미안해) 이 정도면 선생님이 이해하시겠지. 생각해 보면 나는 이미 독자(=선생님)를 염두한 글을 쓴 것이었다. 물론 그때의 나는 전혀 몰랐지만.  

(p.s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골고루 돌아가며 모두에게 발표를 시키셨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  편지]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했던 시기였다. 즉, '친구가 제일 좋아' 시기였는데 그 좋아하는 마음을 부단히 편지로 전하고 전달받았다. 중학교 2학년, 전학 간 학교에서의 첫 주, 다른 반 친구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내용인즉, '너 전학 왔지? 왠지 너 나랑 잘 맞을 것 같아. 친하게 지내자.' 였(던 것 같)다. 말로 하기 쑥스러운 마음을 글로 전달받은 느낌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진심'이라는 감정이 선명히 느껴졌는데 그 매개체는 단연 편지였다. 이후 나는 친구들에게 줄기차게 편지를 썼다. 싸우고 나서는 화해의 편지를, 좋아하면 고백의 편지를, 보고 싶으면 그리움의 편지를, 수다 떨고 싶으면 교환 편지를 썼다. 심지어 매일 보는 같은 반 단짝 친구와는 수십 장의 쪽지를 주고받다 성에 차지 않아 (본격적인 잡담을 위해) 아예 수첩을 사서 나눴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대로 기록이 되었고, 그 수첩은 10년 후 꺼내보자며 나의 모교 00 중학교 건물 뒤쪽 소나무 아래 묻었다.


[고등학생 시절 : 수험노트]  

대한민국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수험생활에 찌들어 있는 고딩이었다. 매일의 하루는 읽고, 쓰고, 풀기의 연속이었는데 그 지루하고 힘든 수험생활을 그나마 견디게 해 줬던 건 '쓰기'였다. 무슨 말이냐면 수험생의 최대 적 식곤증을 '쓰기'가 이긴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는 허벅지를 꼬집어도 볼을 때려봐도 졸음을 이길 재간이 없다. 그런데 뭐라도 쓰고 있으면 머리는 멍해도 손은 움직이니 눈은 떠있을 수 있었다. 당시의 '쓰기'는 들리는 말을 노트에 그대로 적는 행위에 불과했지만, 손의 속도가 말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으니 나름 중요한 내용을 파악하고 요약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대학생 시절 : 다이어리]

다꾸는 아니었다. 꾸미는 것엔 영 재주가 없었다. 다만, 다이어리에 사부작 기록하는 걸 즐겼다. 그 계기는 미국에서의 교환학생이었고, 2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며 생애 최초의 경험들을 많이 했는데 가능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마구잡이로 적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 lays 감자칩을 먹었을 때의 감동. (이후, 청키 초콜릿 칩과 같이 먹었더니 전율이...! 첫 단짠의 경험)

처음으로 사귄 미국, 멕시코, 쿠바, 베네수엘라 친구들. 그들로부터 깨우친 성(性) 평등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해보겠다고 우겼던 첫 인턴 생활

역대 최고의 몸무게를 처음으로 찍었지만 (+12kg)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자신감

처음 가본 디즈니월드에서 차오른 국뽕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미국에서 첫 운전(면허) 경험. 덕분에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처음'이 주는 경험은 두려웠지만, 흥분됐고 그 모든 순간을 절대 잊고 싶지 않았다. 매일의 작은 순간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분명 변화되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남기고 싶었다.


[직장인 : 기획서, 보고서]

나는 직장인이 됐다. 인턴 첫날, 사수가 시킨 일은 사례조사였는데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곳에서의 사례를 찾아보라는 요청이었다. 열심히 찾아본 결과를 유사점, 다른 점으로 나누어 노트에 기록했다. 그리고 그 노트를 사수에게 보여주자 그는 박장대소했다. 이게 웃길리는 없고, 뭔가 잘못됐음을 즉각 감지했다. 그는 귀엽다는 표정 반, 어이없다는 표정 반으로 "이걸 손으로 쓰면 어떡해요? 보고서로 줘야지." 그 말을 듣는데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얼굴조차 들지 못한 채 연거푸 사과했던 내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26살의 나는 다시는 손글씨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나는 (직장에서는) 절대 손글씨로 쓰지 않는다. 모든 문서는 정해진 양식(틀)에 맞춰 정해진 폰트와 크기, 줄간격으로 깔끔하게 편집해서 보고한다. 언론홍보, 광고, 브랜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공간 기획, 운영 등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수없이 많은 기획서와 보고서를 만들었다. 많은 문서를 만들어 내면 낼수록 커리어에서는 플러스가 됐지만 그 수가 많아지는 만큼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생각하다 여기까지 왔다. 어릴 때의 나는 말보다 글의 힘을 믿었던 것 같다. 칭찬을 받고자 시작한 일기였지만 읽는 이를 생각했고,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알게 됐으며, 기록은 삶이 건네는 기쁨, 슬픔, 두려움, 희망 그 모든 감정을 알아챌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그것이 즐거웠다.


즐거움. 어쩌면 나는 그 순수한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직장인의 나는 여러 종류의 기획서를 만들어내지만 내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어른이 되어버렸다.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의 글들을 쓰고 싶지만 한 글자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중첩된 벽에 갇힌 기분이 든다. 그 벽 너머에는 나를 기다리는 파편의 이야기들이 부유하고 있을 것만 같은데, 이들을 어떻게 짓고, 잇고 엮어 세워 보일 수 있을까.


그 답은 다시 글쓰기로 돌아온다. 일상의 안과 밖, 틈과 사이에서 일어나는 파편의 일들을 글자로 자양분 삼아 또 다른 글자를 생산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다.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판단 없이 그저 쓰고 싶다. 물론 그 즐거움을 다시 느낄 때까지 헤맬 것 같다. (아니 헤맬 거다.) 그런데 헤매더라도 기껏해야 내 머릿속일 테니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내 생각을 받아주는 것도 나고, 그걸 풀어쓰는 것도 나다. 그러니 이제 힘을 빼고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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