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는 동양어문학부라는 모호한 이름의 학부가 있고 그 안에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전공(학과)이 있다. 지금은 각 교수들마다 개인 연구실을 배정받아 뿔뿔이 흩어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문대 2층 복도를 들어서면 중국어 학과 사무실이 있고, 그다음 일본어, 복도 맨 끝에 한국어 학과 사무실이 있었다. 태국도 중국 화교 출신들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 중국어학과의 규모는 일본어와 한국어에 비할 바 없이 크다. 교수 수도 많고, 공자 학당도 교내에 설치되어 있어서 중국에서 파견 온 젊은 강사들도 많다.
처음 학교 복도에서 마미코를 마주쳤을 때, 그녀가 태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예상보다 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내가 한국어 학과에서 유일한 한국어 선생인 것처럼 그녀도 일본어 학과에서 그랬던 것이다.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져서 도서관 카페나 학교 식당에서 엄청난 수다를 떨면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마미코는 태국인 남편과 호주 유학 시절 만나서 결혼한 후 태국에 정착했다고 했다. 호주에서 유학을 해서 그런지 영어도 잘했고,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과 사근사근함이 나는 정말 좋았다. 그녀는 태국어를 읽거나(이건 태국어를 말할 줄 아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능력!) 간단한 대화도 할 수 있는 데다가 우리 학교에서 근무한 지 4년이나 되어서 그런지 학교 사정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기 힘들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가십거리를 나눌 친구가 생겨서 행복했다. 태국 살이 3개월 차가 되니 슬슬 외로워서 입이 근질거렸는데 마미코가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출근할 때면 토피 케이크에서 마미코 커피까지 아이스 라테를 두 잔 포장해서 오토바이 택시에 폴짝 올라타고 학교에 갔고, 점심시간엔 마미코의 차를 타고(그렇다.. 그녀는 차도 있었다) 바닷가 근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밥도 먹곤 했다.
교내 모든 회의와 행사는 대부분 태국어로 이루어진다. 회의에 참석해도 거의 귀머거리 상태로 앉아있다가 나중에 한국어로 통보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하루 종일 태국어를 듣고 있다 보면 뭐라고 하는 건지 정말 궁금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마미코가 이런저런 정보를 귀띔해 주곤 했다. 예를 들면 엊그제 정년 교수님 은퇴 기념행사에 참석했을 때도 경품 추첨 딱지에 이름을 써서 내라고 마미코가 알려줘서 작은 상품도 탈 수 있었고, 매 학기가 끝나면 있는 수업 평가에 대한 팁을 준 것도 그녀였다. 교내 부속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다른 일본인 선생님도 소개해줘서 주변에 일본인 친구도 몇 명 더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중국 쌀 국숫집에 모였다.
동네에서 유명한 쌀 국숫집인데 에어컨 따위는 없다. 먼지 가득한 선풍기가 휙휙 돌아가는 더운 국숫집에서 얼굴이 빨개져서 땀을 흘리면서도 뜨거운 면발을 후루룩 들이키며 끝없는 수다를 떤다.
그녀가 해 준 이야기 중 흥미 있었던 것 하나는 한국어 학과의 태국 선생님들은 꼭 한국인들 같고 일본인 학과의 태국 선생님들은 꼭 일본인 같다는 것이다. 언어와 주변 환경(한국 유학을 하셨거나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경우가 많으므로)이 사람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끼쳤나 보다. 별 것 아닌 내용에도 우리는 정말 그렇지 않냐며 깔깔대며 웃었다.
오전에 학생 성적에 관한 전체 교내 회의가 있었다. 나는 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고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한다. 보수적이고 말 많은 태국 선생님들 사이에서 조심해야 할 행동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약간 스트레스를 받았다. 조용히 회의실에 들어서 의자를 살며시 빼며 앉으려고 살피다 마미코와 눈이 마주쳤다. 코를 찡끗하며 보내는 그녀의 눈웃음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성적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나오자 마미코로부터 문자 알림이 울린다.
"너 성적 발표하는 사진이야. 기념으로 간직해."
역시 세심한 마미코.
인스타그램에 올릴 멋진 사진이 생겼다.
타국에서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아무리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서 지내고 싶어도 예기치 못한 부분에서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고 문화 차이에서 오는 불통은 서로의 얼굴을 붉힌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