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저씨 영어 중급자 버전
결론부터 말하면... 영어는 영어공부를 하는 만큼 는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 말은 전공 공부만 해서는 생각보다 영어가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전제가 필요하다. 모두가 조건이 다른 상황이니 결론이 모두 다를 것이라는 것을 염두하자.
내 영어 학습의 히스토리를 말하자면... 28세까지 영어공부는 전혀 안 했다고 보면 된다. 아주 평균적인 대한민국 성인 수준이었다. 그러다 28세에 영국으로 돌연 어학연수를 떠났고 1년간 시간을 보내며 영어에 눈뜨게 되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할 만은 하게 됐지만 자연스러움과는 거리먼 수준이었다. 이후 10여 년간 계속 영어공부를 했다. 원어민 수업도 받고, BBC도 꾸준히 듣고, 시험도 쳤다. 꾸준한 노력덕에 조금씩 좋아졌지만 역시 드라마틱한 변화는 불가능했다. 내 머리의 한계인가? 이 나이엔 이제 무리인가 싶은 생각도 많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더 기회를 가지는 것, 영국 유학을 떠나는 것이 전공공부 외에도 영어와 끝장을 볼 기회라는 생각이 컸다.
유학을 위해 Ielts를 준비하게 되는데 이때 영어가 좀 는다. 대체로 6.5가 목표이고 나 역시 그랬다. 가장 어려운 영역이 Speaking 인데 다른 영역과 비교해 혼자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온라인 페이지를 알게 됐는데 질문을 랜덤 하게 받고 내 대답을 녹음할 수 있는 곳이었다. 비용을 내면 채점까지 해주는 곳이었는데 비용을 내지 않더라도 내가 한 영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그 몇 개월간 확실히 말하는 속도나 소소한 문법을 신경 쓰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간 곳은 잉글랜드 북부. 우리가 아는 영국영어는 주로 런던 쪽 억양인데 북쪽으로 갈수록 악센트가 더 강하고 발음의 정도도 다르다. 예를 들어 요크셔 악센트가 강한 그곳은 Young Person을 '용퍼슨'에 가깝게 발음한다. 쉽게 말하면, 사투리가 심해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영국 각지에서 오다 보니 보니 엄청난 속도와 제각각의 악센트를 사용한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나를 포함하여 역시 그들 나름의 악센트를 심하게 사용한다. 이런 환경에서 내 영어 수준은 딱 일상회화를 하는 정도였다. 전공 수준의 토론으로 들어가면 솔직히 끼기 쉽지 않았다. 그땐 영국 학생들의 거의 독무대에 가까웠고 그런 경험을 한 날은 하루종일 우울감이 몰려왔다.
몇 달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엄청난 학습량으로 인해 읽기 실력과 속도는 꽤나 개선된다. 그리고 영어 말하기도 어느 정도 개선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가족들과의 시간이 소중해 다른 학생들과 어울릴 시간을 상대적으로는 적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현지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 원어민 특유의 추임새나 리액션이 몸에 배게 되는데 그럴 기회가 솔직히 많지 않았다. 이걸 아주 목적의식적으로 하는 중국친구가 있었는데 몇 달 지나고 나니 원어민으로 보일만큼 비언어적인 행동을 하는 걸 보고 꽤나 놀란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꽤나 자연스럽게 잘 들리고, 편하게 말할 정도로 좋아질지 알았던 내 영어가 마음같이 되지 않자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여전히 옆집 아저씨의 요크셔 사투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이제 전공공부도 거의 마무리되었겠다 사람도 더 만나 학습한 표현을 써보려고 노력했고, 집 근처 채러티숍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학교 내 어학센터에서 무료 수업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조금씩 좋아지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현타가 왔다.
아이들은 따지고 보면 우리 중 가장 주류적 삶을 살았다. 정규 학교에서 하루 종일 영어환경에 놓이고, 학교를 마치고도 친구들과 놀며 영어로 소통하고, 심지어 집에 와서도 우리에게 조차 영어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어린 딸은 (당시 한국나이 8세) 한국어를 잊기 시작할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되는 걸 보면서, 나이/환경/습관의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아마 영국에서 1.5년간 전공 공부가 아니라 어학연수를 했다면 아마 영어는 더 많이 늘었을 것이다. 더 다양한 일상의 표현을 배우면서 실력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영어는 영어를 공부해야 는다는 결론. 특히 나 같은 40대에게는 말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는 수준이었지만 영어로 일을 하기엔 부족한 상태로 영국 생활을 마무리했다. 여기까지 두 번에 걸친 영국생활 총 2.5년의 영어실력이다.
한국으로 온 지 이제 1년 반이 좀 지났다. 그 사이에도 온라인 영어, ChatGPT, 원어민 수업 등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잘하냐? 물론 아니다. 그럼 영국에서 돌아올 때 보다 좋아졌냐고? 그건 Yes다. 일희일비하지만 쉬운 건 쉽고 어려운 건 어렵다. (당연한 거 아니냐고? 쉬운 것도 어렵던 시절을 생각해 보시라). 사실 쓸모가 많지는 않지만 영어는 자산이자 유일한 취미활동이다. 이제 몇 년 지나면 50대, 기회가 된다면 또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단어 하나라도 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