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사람의 향기가
마지막 향기
가끔 문상을 갈 때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고인의 삶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잘 죽기도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어떻게 잘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귀결된다.
친구가 부친상을 당하여 문상을 다녀왔다. 해외여행 중에 부고를 접하여 삼우제를 마친 뒤에 집으로 문상을 갔는데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들여 주며 친구는 얼굴의 반쪽이 되어 있었다. 너무나 삶을 알뜰 삶을 마무리하신 고인에게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4남매를 알토론 같이 키우고, 몸이 불편한 아내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수발을 들어주신다는 것은 진작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빈틈없이 마지막을 중하셨다니 놀랍기만 하다.
갑자기 운명하시는 바람에 아들이 영정을 마련하지 못해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생전에 손수 마련해 놓은 수의 안에 언제 찍었는지 건강하신 모습의 사진이 들어 있더란다. 햇빛 좋은 어느 날, 두분의 손을 꼭 잡고 사진관에 가서 찍었노라고 어머니가 말씀 하셨다며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차마 영정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차마 말 할 수 없어서 미적거리는 자식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알리지도 않고 그렇게 준비 해 놓으시는 게 부모의 마음이런가,
고인의 유품을 정리 할 때 유족들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손수 나무로 남든 네모난 통에 차곡차곡 통장과 유언장이 들어 있다. 자식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우의 있게 지내라는 당부를 읽으며 평소에 하시던 말씀처럼 가슴에 와 박히는 데, 그 아래 통장의 내역과 함께 재산의 분배가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었다고 했다. 평생 평교사로 근무하여 재산이라야 살고 있는 조그만 주택 한 체이고, 그간의 생활비는 자식들이 조금씩 챙겨드렸는데 어찌나 절약하고 사셨는지 적지 않은 돈이 여섯 개 통장에 나뉘어 들어 있었다. 아내와 자식의 이름으로 똑 같은 액수가 들어 있고, 또 하나는 집에서 나오는 빈병과 폐유 지를 모아 팔아 모은 돈을 따로 모아둔 사백만 원 가까이 든 통장이 있었다. 집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만 돈을 ehf어려면 아마 평생을 모았을 것이라며 친구는 목이 멘다.
유언장 마지막에 ‘부채(負債)는 단 한 푼도 없다.’ 라는 글귀보다 더 유족을 숙연하게 만든 것은 다른 데 있었었다. 상자 맨 아래 두툼한 봉투가 하나 있어
열어보니 사십여 년 동안 한 사회 복지 단체에 보낸 후원을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본인 이름이 아닌 네 자녀의 이름으로 보낸 것이었다.
보낸 것이었다. 적은 액수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을 매달 꾸준히 후원해 왔다는 것을 가족들은 아무도 몰랐다. 그곳에 편지가 들어 있었는데 후원을 중단하지 말고 가가 자가 자기 이름으로 계속하라는 당부가 있었다.
아버지의 듯을 받들어 자녀들은 물론 손자들까지 후원자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니 한 알의 씨앗이 얼마나 큰 열매를 맺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새 지갑이 몇 개나 되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은 몇 십 년 사용하여 모서리가 다 해질 정도로 낡은 지갑이었는데, 그 안에 두개의 영수증이 나왔다. 운명하시기 며칠 전에 우체국에 가서 막아 며느리에게 보낸 생일 축하 꽃바구니 값과 축하 금을 보낸 영수증이었다. 암세포가 횡격막까지 퍼져 운신하기 조차 힘들었을 텐데 며느리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겹게 우체국으로 향하던 그 걸음걸음에 배인 사랑에 할 말을 잃는다.
막내며느리는 평소에 친 딸보다 더 가까이“아빠. 엄마” 하고 부르며 시부모를 따랐다. 처음엔 철없어 보였는데 어찌나 살갑게 굴던지 그만 며느리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곤 막내딸 하나를 얻은 것처럼 아끼셨는데, 그 며느리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이승에서 마지막 외출을 하신 것이었다.
평소에도 찾아뵙거나 전화를 하면 그저 “고맙다”는 말씀을 수도 없이 하시고, 이웃에 사는 큰며느리가 왔다 가면 아무리 힘들어도 꽃 일어나 대문 밖까지 전송하며 “수고했다”는 말을 빼놓지 않으셨다니 그분 에세 자식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도 그토록 고마워 시니 그분은 인간에대한 존중이 몸에 배인 분이라 생각이 든다.
당신이 영원히 거할 집조차 오래 전부터 가꾸어 너무나 쉽게 상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택을 마련하곤 틈틈이 정원을 가꾸듯 그 둘레에 꽃나무나 과실수를 심어 나중에 저손 들이 놀러오면 감이나 살구를 따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이어서 잔디도 잘 살아 소풍삼아 올 수도 있도록 준비를 해 놓았다니 고인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놀랍기만 하다.
그분처럼 죽을 준비를 할 수만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목청 높여 바른 삶을 주장하지 않고, 그저 삶을 보여 줌으로써 절로 고개 숙이게 만든 위대한 친구의 아버지!
모처럼 아름다운 뒷모습을 접하곤 한동안 인수 없는 향기로움에 휩싸였다. 새가 날개를 접고 안식에 들어가듯 근면과 성실, 사랑으로 일관했던 이승에서의 삶을 고이 접은 그 뒷모습이 그렇게 정갈 할 수가 없다. 우리 부모님들은 일제 강점기를 비롯하여 6.25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이시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지금과 같은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설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느라 밤낮없이 일한 장본인들이다.
격변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았던 분이 동전 한 개, 쌀 한 톨을 아껴 어려운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을 보태면서도 단 한푼이 부채도 지지 않고 살다 나비가 날아가듯 가볍게 이승을 떠난, 너무나 평범하지만 결코 법접 할 수 없는 그분이 삶이 한 없이 존경스럽다.
만개한 꽃이 바람 한번 불자 화르르 떨어져 내리고, 푸른 잎사귀가 그 자리를 빼곡하게 메우며 피어나고 있다. 꽃진 자리마다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 갈 것이다. 그 순환이 새삼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