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요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선생 Mar 02. 2022

한국과 관련 있는 듯 관련 없는 관련 있는 미국 건국

조지 캐리의 <미국 정치사상 공부의 기초> 리뷰


주말 사전투표가 시작되고 대선이 막바지에 다다릅니다. 민감하지만 중요한 주제, 당장 선거에 나온 후보들이 어떤 생각과 말을 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이럴 때 한 걸음 물러서서 ‘정치’의 근본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지요. 걸음을 더 떨어뜨리려면, 우리나라 얘기보단 남의 나라 얘기로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는 게 더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세계사적으로 미국의 건국은 매우 독특한 사건입니다. 기존에 없었던 나라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신경 쓸 것도 많았습니다. 통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기본권으로 인정해야 할지, 국가를 구성하는 각 부서 사이에 권한은 어떤 정도로 규정해야 하는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지 등등. 이들은 미국 건국에서 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질문에 대답하면서 미국에 독특한 정치사상 전통을 만들어 왔습니다. 새로운 정부를 만들자마자 당장 통치를 시작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론적인 고민 못지않게 실용적인 방안 또한 여러 방면으로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건국의 아버지들의 생각이 집약된 미국 헌법은, 미국의 맥락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참고할 만한, 국가 운영의 핵심 질문에 대한 표준적인 답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선거철엔, 이에 관한 책을 읽는 게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고민이 바로 국가 운영의 핵심 질문과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헌법을 중심으로 미국의 정치사상을 개괄한 아주 얇지만 핵심이 잘 담긴 책, 조지 캐리의 미국 정치사상 공부의 기초를 읽어보겠습니다.



보통 서구 정치사에서 중요한 혁명을 꼽으라면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그리고 미국 건국이 들어갑니다. 이 셋은 각 지역의 역사적 전통만큼이나 성격도 많이 다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미국의 건국은 적대자 없이 나라를 처음부터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새롭게 나라를 만드는 처지였던 전 세계의 수많은 정치공동체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학계에선 ‘미국 건국’ 작업이 진행된 시기를 1700년대 중반 영국이 ‘선의의 방관’을 끝내고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해 강압적인 정책을 쓴 때부터 1800년대 초반까지 거의 70년으로 잡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견줘보면 우리나라도 1948년 형식적 건국 이후에 지금까지 나라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땅덩이로나 경제 규모로 따지면 각 주가 거의 우리나라 크기죠? 게다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기엔 지역별로 독립성도 대단히 강했고요.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려 할 때 제기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과연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필요할까, 또 이전에 그렇게 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할까 하는 것입니다. 제 설명이 너무 거칠긴 하지만, 이 질문을 중심으로 벌어진 건국의 아버지들 사이의 견해차를 흔히 연방주의자 대 반연방주의자 논쟁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민주주의를 추구할 것인지 또한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마냥 ‘바이 더 피플 포 더 피플 오브 더 피플’ 하는 것이 과연 미국이라는 국가의 지향점인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다수 시민의 폭정을 막기 위해 정치적 권리를 제한해야 건전한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 국면에서 대체로 반연방주의자들은 직접민주주의와 이를 구현하기에 알맞은 작은 정부를 지향했고, 반대로 연방주의자들은 큰 정부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며 반연방주의자들을 설득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제한을 달아놓는 전략을 택했다고 하고요.

미국 건국 과정에서 나온 서류들은 이처럼 정치 행위의 핵심 문제들을 건드리기 때문에, 이후에 정치 행위를 하려는 사람들과 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다만 이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든 문서를 해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을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데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후 미국의 정치 이념 논쟁은 곧 헌법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관한 논쟁으로 곧잘 번져나갔고, 그러다 보니 헌법 해석의 역사를 보는 것이 곧 미국 정치사상의 변화를 보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에 관한 아주 핵심적인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함께 추천드리는 책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입니다. 한글로는 연방주의자 문서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을 기초하는 과정에서 발표한 글이나 서로 주고받은 편지 중 중요한 것들을 묶어놓은 것입니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윤리와 사상이나 생활윤리 시간에 배우는 학자들이 쓴 책과 더불어 정치사상이나 정치사의 고전이라고 평가받는, 풍부한 아이디어의 원천이니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고 넘어가 봐야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