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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Mar 10. 2024

나는 전문가입니다.

당신은 전문가 인가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남들 앞에서 “난 전문가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실력과 책임감을 겸비해야 비로소 프로 자격이 있다. 남들이 ‘프로’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해내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아마추어’는  무언가 ‘좋아서 하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어떤 일이나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 같은 요소가 사라지면 더는 하지 않는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일부 요약


 나는 통역이라는 일의 실력을 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고, 프로처럼 일을 하기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해왔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나를 완전한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통역 일을 하며 난 쉬지 않고 학습했다. 배경 지식 없이는 통역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국내파이고 통역 대학원을 나오지 않았음에도 많은 고객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기술 분야 전문 배경 지식을 누구보다도 많이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렇 승승 장구하는 듯 보였지만 난 언제부턴가 새로운 일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출산으로 경력단절 이후 통역일을 시작하고 프리랜서로 10년 가까이 신나게 일을 하고 나서야 어렴풋이 느껴진 나의 한계와 욕구!


통역일을 하면서 알게 된 나의 한계

역사는 서비스직이다. 사람과 상호작용이 많은 직업이다.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오랫동안 일을 한다면 모를까, 프리랜서라면 기존 고객 외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보다 나이 어린 고객이 많이 지기 시작했다. 나이는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요소다.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은 예의를 지켜야 하는 상대가 된다. 새로운 사람과 일을 하고 빠르게 라포를 형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장벽이 더 생겨 버린 것이다.  

통역 업계에서 나이를 극복할 수 있는 설루션을 생각해 보면 2가지다. 하나는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번역일을 하는 것과, 부스 안에서 동시통역만 하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하는 번역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번역은 기술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동시통역을 하고는 있지만 그건 기존 고객들의 요청에 의해서 해온 일이다. 통역대학원을 나오지 않은 나에게 내 일을 모두 동시통역으로 채우고 그 비용을 지불할 충분한 의뢰는 들어오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조금씩 단가를 올리고 싶지만 아주 소심하게 일의 단가를 올리면 일부 고객들이 사라진다. 그렇게 사라진 고객의 일은 쉽게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가가 올라가도 나와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고객은 남아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 외국에서 유학한 영어 잘하는 사람들에게 진입 장벽이 낮아 쉽게 진입하는 일반 비즈니스 회의 통역 분야는 단가가 정말 낮다. 그런 분야는 수요와 공급이 많아 단가 상승이 어렵다.

배경 지식 없이 통역하기 힘든 분야, 감사, 교육, 기술로 넘어오면 그나마 단가가 높지만 그곳에도 한계가 뚜렷이 보였다. 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보조의 역할인데 그 역할자에게 부담하는 비용은 어느 선 이상으로 가치를 더하기 힘들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통역을 하면서 알게 된 나의 욕구

나도 남의 메시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피치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스피치 연습을 하면서 내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법을 배우고 스피치 대회에서 우승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가진 생각과 콘텐츠를 더욱 전문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이런 한계와 욕구는 나를 다른 분야에 기웃거리게 했다.

새로운 분야는 언제나 병아리 같은 시기를 거쳐야 한다. 사람들은 쉽게 말하고 나는 그런 말들에 자존심 상하고, 상처받는다.

“통역일이 별로 없으신가 봐요!” 매일 같이 통역 스케줄이 있을 시기에 퍼실리테이터 일을 기웃거리며 배울 당시 사람들이 나에게 던진 이 말에 나는 상처받곤 했었다. 나와 관련 없는 누군가의 생각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음에도 그런 말들은 나를 참 많이도 흔들었다.

‘내가 인정받던 일을 그냥 지속해야 하나? 새로운 일을 배우려면 언제나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 거지! 내가 통역 사였을지 모르지만 통역과 무관한 일을 하니 겸손한 자세로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라며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 혼자 되뇌곤 했다.

퍼실리테이터로 일을 하면서 통역사라는 직업은 나타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통역사가 퍼실리테이터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를 괜히 높여 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강사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또다시 같은 경험을 해야 했다.

작년 나의 매출을 살펴보면 해외 프로젝트 20% 통역 40% 강의 40%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통역사로 기억하고, 아이들도 “너희 엄마 뭐 하시니?”라는 질문에 내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가장 사람들이 반응이 좋은 ‘통역사’로 답한다.    


오래간 만에 간 통역사로서의 해외 출장.

10년 넘게 지원한 고객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은 통역이라기보다는 그 회사 직원처럼 함께 한 출장이었다. 고객이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지, 본사에서 어떤 부분을 듣고 싶어 하는지 이미 분기별 회의에 매번 참석한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좋은 호텔에서 진행된 콘퍼런스는 각 지역별 대리점 담당자분들의 영업 실적과 지역 판매 특성, 해결 설루션을 공유하는 세션으로 이어졌다.

지역별 발표가 이어지고 한국 담당 대리점 발표는 한국 고객사를 대신해 내가 발표를 진행했다. 통역사인 나는 다른 어느 아시아 지역의 담당자 보다 훨씬 유창한 영어로 발표할 수 있었다. 오래간 만에 진행하는 고객사 발표는 떨렸지만 '나는 스피치 우승자였어' 라는 주문을 외우며 청중 앞에서 여유로운 척 발표를 이어 나갔다.

발표를 마친 후 고객사의 만족스러운 표정과 칭찬, 본사 이사님의 한마디 “I like your presentation.”,

또 다른 한국 업체의 농담, ‘내일 다른 옷을 입고, 파마라도 하고 와서 우리 회사 발표도 해주면 안 되나요’

발표 후 이런 반응에 나는 술에 취한 듯 좋았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무대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발표를 마치고, 영광에 취해 있는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기분이 좋은 내가 왜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전문가 옆에서 일을 하고, 전문가와 같은 스폿라이트를 받는 직업, 전문가의 입이 되어주고, 그들과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일이 통역사의 일이다.


이 일을 하며 마치 내가 전문가가 된 듯 착각에 살기도 하고, 어느 순간 전문가를 위한 한 기능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허무해하기도 했었다. 결국 타인의 일을 내일처럼 하지만 결국 내일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했다.


사람에게 일단 ‘통역사입니다’라고 하면 무언가 잘해 준 것도 없이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혜택이 있었고 나도 그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더 이상 점수를 주지 않는 상대를 보며 어느 한구석 허전함을 느꼈다. 나는 무엇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기술 전문 통역이라고 말을 하지만, 기술자도 기술전문가도 아니다.   

어디에도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 한계, 통역일을 하며 수없이 마주했던 상황이었다. 바쁜 나날 들 속에서 잠시의 스폿라이트를 누리기를 반복했지만 내게 채워지지 않는 한구석은 여전히 존재했다.


내가 좀 더 일찍 나의 일에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이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쉽게 전문가 옆에서 스폿라이트를 받으며 내 것이라 착각하며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꾸준한 노력의 결과를 좀 더 쉽게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 냉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기술과 태도를 모두 갖춘 프로가 되고 싶다. 이제는 내가 나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남들 앞에서 “난 전문가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는  실력과 책임감을 갖추려 한다. 이기주 작가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 한 것처럼 그에 맞는 태도, 마음가짐을 갖추려 한다.   



https://www.youtube.com/@janekim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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