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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Apr 01. 2024

한번 상사는 영원한 상사, 싱가포르 인들의 친절

평생 회원권 같은 그들의 친절과 우정  

나는 20대 시절 싱가포르 엔지니어링 업체에서 일했다. 당시 내가 하던 일은 사업 개발과 영업이었다. 말레이시아 지사에서 1년, 중국 지사에서 3년 가까이 근무하여 싱가포르 본사나 태국지사로 출장을 가곤 했다. 직급 없이 계약직으로 그곳에 근무했던 나는 매니저 급은 동료처럼 대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서로 이름을 부르며 수평적인 관계로 업무를 하다 보니 나보다 직급이 높다고 그들을 상관처럼 대하는 것은 낯선 행동이었다.  


내가 보고를 해야 하는 이사(director)나 부장(senior manager), 대표이사를 나의 상사로 대했다. 

당시 태국 지사에 있던 알프레드(Alfred)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으로 태국지사 영업이사였다. 영업 이사답게,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고객 프레젠테이션 전 고민하고 긴장하는 나에게 너무 심각하다고, 웃으라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Jane why so serious, smile!!!”  

싱가포르 본사의 회의가 있거나, 태국 지사에 출장을 가면 만나게 되는 알프레드는 언제나 파이팅 넘치는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업무 이외에도 엄청난 지식과 정보로 언제나 재미난 이야기 들이 넘쳐났다. 싱가포르 본사 세미나가 있어서 참여할 당시, 태국에서 온 한 여성 직원, 태국 영업 담당 일본인 다케시, 말레이시아 지사에서 온 한국인 나 이렇게 싱가포르에 살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리고, 아침부터 싱가포르 투어를 해주었다. 아침 일찍 간 곳은 카야 토스트 식당이었다. 지역에서 유명한 문이 없는 식당에서 먹는 따끈한 카야 토스트는 정말 현지인이 된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리고는 해변이며 여러 싱가포르에서 유명하다는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 

그런 추억을 간직한 싱가포르에 24년 만에 다시 가게 되었다. 그것도 한 달에 두 번이나 가야 하는 일정이 잡혔다. 첫 번째 출장을 다녀와서 오래간 만에 싱가포르에서의 사진들을 SNS에서 올렸다. 그리고는 알프레드와 과거 상관이었던 에드몬드에게 연락이 왔다. 싱가포르에 오면 연락했어야지 왜 연락을 안 했냐며 나의 포스팅에 답변이 달렸다. 연락하고 싶었지만 내심 미안했었는데 이렇게 말해주니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2주 뒤, 다시 싱가포르에 출장을 가게 되어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젠 퇴직을 해서 관광 가이드로 취미처럼 일을 하고 있는 알프레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격에 딱 맞는 직업이다. 알프레드와 오래간 만났지만 정말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가고 싶은 곳을 말하면 어디든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나라 끝에서 끝까지 가봐야 한 시간 정도니, 어디든 데려다줄 수 있겠다는 말은 진심일 것이다. 

드라이브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알프레드는 싱가포르에 현대자동차 공장이 아주 크게 있다고 알려주었다. 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에 공장이 크면 얼마나 클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정말로 큰 공장이었다.  


점심을 사주겠다며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묻길래 예전에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던 호커 센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호커 센터( hawker center)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야외 음식점 같은 곳으로 푸트코트처럼 다양한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한국의 푸드 코트 정도의 가격으로 정말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밥을 먹으며 알프레드가 보여주었던 친절했던 옛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항상 친절한 사람은 자신이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친절은 그가 사람을 대하는 일상의 방법이다.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모습이었고, 그런 하루에 나라는 사람이 그와 함께 하며 그의 친절을 누린 것이다. 나같이 친절하기 위해 에너지를 더 써야 하는 이들에겐 친절은 특별한 것이고 내가 해준 것도 받은 것도 오래오래 기억한다. 알프레드에게는 일상인 이 친절함을 또다시 나는 누리며 특별한 날을 만들어갔다. 

  

알프레드와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에드몬드와 그의 와이프 제시카와 함께 식사를 하였다.

나에게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칠리크랩을 대접하고 싶었던 그들은 좋은 중식당을 예약했다.  

에드몬드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5살 7살 딸 둘을 데리고 명동으로 가서 가본 적 없는 한식당을 예약해서 대접한 적이 있다. 반찬은 많았지만 생각보다 고급지거나 맛있지 않았던 기억에 내심 미안했는데 멋진 중식당에 도착하니 그때 내가 제대로 대접을 못한 게 더욱 미안해진다.  


에드몬드는 나와 함께 말레지아지사에서 근무했다. 싱가포르인인 에드몬드는 주말이면 싱가포르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다음날 싱가포르 공항에서 출국하는 일정으로 말레이시아에 한 시간마다 있는 셔틀 비행기를 타고 가서 환승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기꺼이 자기 집에서 자고 싱가포르에서 바로 출국하라고 했다. 

그의 제안에 정말 별생각 없이 그를 따라갔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듯, 차로 쿠알라룸프르에서 싱가포르로 이동했다. 가는 중에 길 가의 원숭이도 가끔 보이고, 말레이시아의 경찰은 싱가포르 차 넘버를 가진 우리 차를 이유 없이 세워서 속도위반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넘버를 가진 차량을 잡아서 뇌물처럼 돈을 받는 건 흔한일이라고 했다. 에드몬드가 아니라고 우겨봐야 아무 소용없었고, 얼마의 돈을 주자 바로 우리를 보내주었다. 

싱가포르 국경을 넘기 전에 에드몬드는 근처 주유소에서 차의 기름을 채웠다. 싱가포르 보다 말레지아 주유비가 더 저렴하니 채워서 가는 것이었다. 아이가 있는 집에 빈손으로 가는 것이 내심 미안해 주유소 옆 편의점에서 과자와 초콜릿 등 여러 가지 간식들을 샀다.

에드몬드의 집에 도착하고 그의 아내 제시카가 반겨주었다. 

나에게 방을 내어 주었는데 알고 봤더니 아이들 방이었다. 아이들은 당시 유치원 생 정도로 아주 어린아이들이었고, 내가 눈치 없이 아이들 방을 점령했구나 그제야 알게 되었다.

지금 느끼는 거지만, 편의점에 파는 초콜릿을 아이들 주라고 가져간 것도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그런 초콜릿을 최대한 먹이지 않는 게 엄마인데 말이다. 그걸 선물이라고 들고 가다니… 

두 딸을 모두 의사로 키워낸 제시카에게 아이를 키우며 어려운 점을 물었다. 워킹맘이었던 제시카에게는 뭔가 구구절절한 힘든 육아의 기억이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없다고 했다.

한국 보다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 시터 구하기도 쉽고 임금도 낮다. 싱가포르에는 최저 임금제가 없다. 그러다 보니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미얀마 인근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기 쉽다. 


에드몬드와 저녁을 먹고, 창이 공항 1 터미널(Jewel Changi Airport)으로 갔다. 1터미널은 주얼이라고 해서 쇼핑몰과 함께 있었고, 그곳에는 유명한 주얼창이 폭포가 있다. 터미널의 멋진 폭포를 구경하고,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비첸향 Bee Cheng Hiang 육포도 사고, 스타벅스에서 마지막 커피 한잔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대한항공이 출발하는 인근 터미널 4까지 데려다주고 에드몬드 부부와 헤어졌다. 

그렇게 싱가포르 회사에서 근무한 나는 그들 밑에서 아주 잠시 일한 덕에 24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평생 회원권을 가진 부하직원처럼 그들의 친절 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https://blog.naver.com/janekim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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