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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Apr 14. 2024

워킹맘이 일을 포기하는 이유

아이의 가치와 일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이 맞는가?

프리랜서 통역사로 일하는 수연은, 어느 대기업 해외 프로젝트를 하며 만났다.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우리는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내는 친구가 되었다. 수연은 아이를 낳고, 좀 더 안정된 고정급의 일을 원해 기업체의 사내 통역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수연이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육아를 도와주는 누군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고정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고정적인 월급이 있어야 고정적으로 돌봄을 해주는 이모님에게 지불할 돈도 생기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며 직장을 다닌다는 건 힘든 결정이지만 이 또한 육아와 일 두 가지를 모두를 해내기 위한 큰 결심이었다. 

하지만 수연은 높은 일의 강도와 지쳐가는 자신의 모습,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을 놓친다고 여겨 1년 근무 후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다시 전향하였다.

나의 경우는 반대였다. 어렵게 가진 아이를 위해 일을 관두고 출산과 육아를 했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완전한 경력 단절의 시간을 겪었다. 하지만 경력 단절 이후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결국 프리랜서로 일 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랜서나 1인 기업은 고객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가 나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횟수가 고객마다 다르고, 그런 고객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내게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수연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 집에 있는 동안만 할 수 있는 몇 시간의 일로 매일을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린이 집에 있을 동안만 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그런 일들이 넘쳐 나는 것도 아니고, 고객이 나의 시간에 맞춰 주지도 않는다. 일이 의뢰 와도 아이의 픽업 시간에 5분만 겹쳐도 그 일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아이를 픽업해 주고 도와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나의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남편이 아닌 이상은 내가 시간당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나 또한 어린이집을 마치면 돌봐 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비정기적으로 도와줄 이모님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이들 돌봐주는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그 돌봄 이모님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이다. 어쩌다 비정기적으로 몇 시간만 아이를 돌봐 주는 일을 해줄 이모님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공지를 올리고, 많은 이모님과 통화를 하며 알게 된 것이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돌봄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비정기적으로 아침에 도와줄 이모님을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살고 계셨고, 새벽에 남편이 출근할 때 밥만 차려 놓고 용돈 벌이 삼아 아르바이트 처럼 하시겠다는 이모님이셨다. 꾸준히 요청드리는 게 아니라 나도 일이 있을 때만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기꺼이 도와주셨다. 하지만 그런 이모님은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다. 

아침 일찍을 일을 가야 할 때면 아이가 깨기 전에 나가야 했고, 그럴 때면 이모님이 오셔서 아침을 먹이고, 어린이집 버스를 태우는 것까지 두 시간 정도 도와주셨다.  

그런 이모님도 이사를 가시게 되며 결국 멀리 대구에 계신 친정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요청할 때마다 몇 시간 기차를 타고 꾸역꾸역 올라와 아이들과 며칠 보내고 다시 대구로 내려가시는 일을 반복하셨다. 이런 고된 여정을 엄마는 기꺼이 해 주셨고, 그동안 친정 아빠는 기꺼이 혼자 지내는 불편함과 외로움을 감당하셨다. 이 또한 딸이 가진 능력을 인정하고, 그게 본인의 딸을 위한 거라 여겨서 가능하다. 


그렇게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 여러 사람들의 손을 빌려 나는 어렵게 일을 지속했다. 어린아이를 여기저기 맡기며 일을 하려고 애썼던 그 순간순간은 정말 지치고 힘들었다. 숨차게 움직이다 문득 주저 않아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일은 누구를 위해 하고 있는가? 왜 하고 있는가? 아이가 여기저기 남의 손에 낯 설음을 극복하며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 과연 이 일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일을 하는 엄마들은 이런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한다.


‘애는 엄마가 키워 야지’, ‘엄마손에 큰 아이가 자존감이 높다’ 이런 수많은 타인의 말들이 스쳐가며, 결국 내 일의 능력과 아이의 가치를 비교하며 내가 가진 능력들을 내려놓는다. 아이 앞에서 나의 능력은 한 낯 보잘것없는 티끌 일 뿐이다. 

이제껏 나를 증명하고 가치를 인정받아, 돈을 받을 수 있었던 그 능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아이라는 존재와 가치와 비교한다면 당연히 보잘것없고 하찮아진다. 그럼에도 그 능력을 내려놓지 못하면 스스로 자꾸만 이기적인 엄마라 느끼게 된다. 

생각해 보자. 꼭 내 아이가 아니 더라도 생명을 가진 존재의 가치와 일이라는 가치가 서로 비교하는 게 맞는가? 우리가 하는 비교는 소중한 내 자식,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와의 이 순간이라는 가치를 생각하고, 지금 내가 받는 일이 급여와 비교한다. 아이의 일생과 내 일의 급여를 비교하면 과연 일을 해야겠다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할까?   


프리랜서로 아이의 어린이 집에 있는 동안만 가능한 일자리를 찾고 있던 수연에게 들어온 3일간의 통역일은 상당히 괜찮은 조건이었다. 수연이는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며 그 일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통역 3일의 일정 중에, 첫날 30분, 둘째 날 아이 픽업 등 , 3일간의 일정을 다 합쳐 두 시간 정도 아이를 돌봐줄 수 없다는 상황이 일을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난 일에 대한 욕구가 강해, 온 갓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 하루는 어린이집에, 하루는 동네 친구집, 하루는 학원 선생님께 부탁을 해 어린이집에서 학원까지 아이를 데려가 달라는 부탁 등… 정말 여기저기 많은 신세를 지며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곤 했었다. 

어느 날은 저녁 7시에 픽업을 가기로 하고 어린이집에 7시까지 봐 달라는 부탁을 한 적도 있다. 원장 선생님이 7시까지 퇴근을 못하고 있고 그 눈치를 받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그렇게 민폐를 끼치며 그 일을 했다. 일을 마치고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버스에 내리자마자 100미터 달리기 전력 질주로 어린이집을 향해 뛰었다. 목에서 피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뛰어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죄인처럼 사죄하고 아이를 데려왔다. 그렇게 꾸역꾸역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오만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고, 신세를 지고, 민폐를 끼치며 일을 지속했다. 


아이와 일이라는 가치 비교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매번 고민하는 건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난 그냥 이기적인 엄마라고 스스로 정의해 버리고 더 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연이는 달랐다. 여느 다른 워킹 맘과 똑같이 아이와 일의 가치를 비교할 때면 언제나 아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선택을 했다.  우리의 능력은 지금의 가치로 환산되고 그것을 아이의 가치와 비교하지만 나라는 인간의 가치와 나의 미래는 전혀 감안하지 않는 스스로의 냉정함이 안타까웠다. 

수연이에게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내가 시간이 된다면 정말 그 두 시간을 어떡하든 도와주고 싶었다. 내가 했던 수십 가지 방법을 모두 알려주었다. 그렇게 신세를 지는 거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너의 능력을 하찮게 여기지 말라고 잔소리 잔소리를 했다. 결국 수연이는 온갖 방법을 강구하고 알아본 결과 하루는 어린이집, 하루는 남편의 1시간 조기 퇴근, 하루는 또 다른 친구의 도움으로 3일의 일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불편함과 낯 설움을 분명 겪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자라도 잘 자랄 수 있다. 내가 완벽한 엄마가 아닌 것을 나도 알고, 아이도 이미 안다. 그리고 그렇게 불안하고 힘들었을 아이는 저녁에 위로하고 채워줄 수 있다.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해도 그것 또한 아이가 자라는 방법이다. 

물론 일을 하고 돌아온 나는 지쳐 있지만 그럼에도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죄책감은 피곤한 몸도 일으킨다.   

나는 다시 시작하려는 많은 엄마들이 당장의 일의 가치와 아이라는 가치와 비교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적은 돈을 버는 일을 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가치도 그만큼 중요하다. 내가 발휘하는 능력은 나를 증명하고 나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다. 지금의 일의 가치 플러스 나의 미래가치도 반드시 함께 봐야 한다.  엄마의 역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할 것 같지만 나의 미래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게 어렵게 일을 이어온 나는 지금 전문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 신기할 만큼 고객도 많아지고,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N잡러가 되었다. 중학생,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집에 있으면, ‘일이 없는 날이구나’, 엄마가 아침 일찍 나가거나 집에 와도 없으면 ‘일 나갔구나’ 생각하며 일하는 엄마에게 익숙해졌다.

아침에 일찍 나간다고 울지도 않고 저녁에 엄마가 늦어도 밥은 언제 줄 거냐고 투덜대지 않는다.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고, 아이들의 스케줄도 나만큼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제는 아이들이 몇 시에 오는가에 상관없이 나는 고객의 요청을 나의 일정에 맞춰 수락하고 필요시에는 출장도 간다. 아직 사춘기인 아이들을 생각해 나의 출장이 너무 길지 않도록 조절할 뿐이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에게 있었던 일들과 감정들을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만 출장을 가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1주일 정도의 출장은 주중에 있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당일 듣지 못해도 여전히 그 감정과 흥분이 살아 있다. 엄마로 그런 감정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나의 판단에 따른 일의 조절이다. 친절하지도, 희생적이지도 않고, 내 능력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올인한 엄마도 아니지만, 아이들은 잘 크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의 따뜻한 밥에 대한 욕구보다 냉동식품을 데워 먹더라도 엄마와 같이 앉아 수다를 떨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한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엄마 언제 오냐’고 물을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전화가 올 때면 엄마와 나눌 유치 찬란하고 허접한 일상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급식이야기, 친구들과의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이에게 무언가 소중한 사람처럼 느껴져 나는 자존감이 올라간다. 그럼 나도 그날의 실수들, 맛있게 먹었던 식사, 고객에게 들은 칭찬을 자랑하며 나의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의 삶이나, 내가 사는 삶이나 조금 다른 사회 속에서  잘하기 위해 애쓰는 똑같은 인간의 삶이다. 이제는 돌보아야 할 생명체가 아닌 똑같은 인간으로 하루의 일상을 흥분하며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과거 이기적인 엄마라고 스스로 정의해 버린 채 일을 했던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우는 아이를 보며 밀려오는 죄책감에 압도되지 않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지만, 난 아이를 버리지도, 아이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나의 능력 또한 무시하지 않으려 힘든 시간을 견뎌 냈을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나는 매번 흔들렸을 것이고, 지금껏 일을 하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시대가 다를 뿐 일을 하며 사는 삶은 언제나 스토리로 가득하다. 일을 하는 난 아이들이 겪을 미래의 스토리로 가득하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아이들의 일상 스토리를 들어주는 수다의 시간이 이제는 내 삶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일하는 엄마의 진정한 가치는 아이들에게 미래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모델이 되어 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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