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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kyoung Sep 27. 2018

동묘에서 느꼈던 ‘질서와 무질서 사이’

동묘시장 첫 방문기

동묘에 다녀왔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원래는 동묘에 갈 생각이 없었다. 공원에 가서 사진이나 찍고 오려던 찰나에, 소영언니가 동묘와 낙산공원 코스를 제안했고 한 번도 안 가본 공간이라 신나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뒤엉켜 물건을 구매한다고 소문만 무성히 듣곤 정말 궁금했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대들이 어떤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을지!

 

동묘 시장 거리

최근에 나 혼자 산다의 출연 X 추석 연휴 버프로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많았다. 첫 동묘 방문에 어리둥절한 나를 끌고 소영언니는 이곳저곳 열심히 나를 데리고 돌았다.



도통 주제를 알 수 없는 여러 물품들이 한 곳에. 컨셉은 빈티지.
중고 책을 구경하는 사람들


마치 추억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기엔 아직 이십 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렸을 적 집에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 CD플레이어 (어느새 추억의 소품이 되었다니 소름이다), 주부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빨간색 법랑 냄비. 그리고 내 추억엔 들어올 수 없는 아주 옛것들까지. 이 물건들을 어떻게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제 기능을 하는지도 궁금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어찌 됐든 동일했던 건 젊은이나 어르신들이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하고, 살펴보고 있었다는 점. 어색함에 멀리서 바라보던 나도 어느 순간 쪼그려 앉아서 물건을 구경하기시작했다.


필름 카메라
빈티지 컵


그중에서도 내가 꽂힌 물건이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필름 카메라와 빈티지 컵(?)이다. 어느 정도로 가지고 싶었냐면, 당장 서울에 자취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동묘로 달려와 사고 싶을 정도로! 필름 카메라야 예전부터 늘 가지고 싶었던 물건 중 하나이고, 컵은 비교적 늦게 나의 위시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는데 - 점점 집에 있는 게 익숙해지면서 집에서도 카페처럼 커피와 술을 즐기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근데 그 컵이 고급스러운 컵은 아니다. 그저 단정하고 예쁜 컵이 아니라 목적성을 띄고 컨셉이 뚜렷한 컵이었으면 좋겠다. 맥주컵, 사케컵, 소주컵, 사이다 컵, 콜라컵, 커피 컵.. 빨리 사고 싶다 정말! (쓰다 보니 술이 제일 먼전데 의도하진 않았음)




동묘에서는 구제 옷, 빈티지 물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전공이 광고학이라 그런지, 카피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고 한다.


안나수이 아닌 '아나수니' 를 시작으로, 어르신들의 소비자를 모으는 카피가 참 흥미롭다.  


칼은 1천원부터. 들러와!
진짜 인지 알 길 없는 가짜면 10배 보상하는 천연석
무심하게 바닥에 놓여 있는 장도리는 삼천원
가방에 적힌 '무조건(1천원씩)' 판매하는 제품이 더 재밌음.
"제발 개판 좀 치지 마시오, 다 보고 있습니다."
각종 아답타 광림 20미터 전방에 →
전세계의 미녀들의 휴대품! 랑콤 화장품!

판매를 위한 가격이 있는 카피부터 안내문구, 부탁 겸 협박(?) 문구까지 다양했던 동묘 시장.


카피라 함은 구도가 보기 좋아야 하고, 글씨체와 크기, 그리고 내용까지 보는 사람 입장에서 쓰여야 한다고 배웠다. 상인분들은 배우지도 않았을 카피의 원론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맞춤법이 틀리던, 글씨체가 어쨌든, 표현하는 방식이 어떻든. 사람 냄새가 물씬 나지 않은가?


 


동묘는 무질서 속에 있는 질서를 잘 보여주는 공간인 것 같다. 분명 어지럽고 왜 있을지도 모를 것들이 있으며, 정돈되지 않은 것과 심지어 먼지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저마다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 백화점과 마트처럼 깔끔하게 디피 되어 있진 않아도 나름의 컨셉을 가지며 하고자 하는 말이 아주 명쾌하다. 누구에게는 혼란스럽고 번거로운 것들이 혹자에게는 순조롭고,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자유로 다가온다.




동묘의 첫 방문이 꽤 좋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아니하며 해방된 느낌으로 가득했던 곳. 조만간, 동묘를 가지 않은 친구들과 또 새로운 시각으로 이 곳을 바라보러 방문해야겠다.


그때는 꼭 컵을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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