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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Mar 29. 2018

갈수록 재미 없어지는 책에 대처하는 자세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한 호흡이 끊기는 지점이 있다. 인간의 집중력 문제인지, 작가의 필력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어떤 지점에서 한 번 쯤은 쉬어가야겠다고 책을 덮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제법 논리적으로 풀어낸 작가가 있다. 미국의 북 칼럼리스트로 한 해 200권이 넘는 책을 독파하는 유명한 탐독가인 존 퀴넌은 왜 책을 끝까지 읽기 어려운지 아래처럼 설명한다.


독서광은 어떻게 책을 읽을까?


“원래 책이란 완전 흥미진진하게 시작해서 70쪽 즈음부터 김이 샌다. 어떤 책은 70쪽까지도 못간다…저널리스트들이 쓴 책은 늘 처음 두 챕터까지는 상당히 괜찮고, 그 다음에는 쓸데없는 얘기를 잔뜩 때려놓다가 다시 가속도를 좀 내서 대단원으로 수렴시킨다. 이 때문에 편집자들은 작가에게 팔릴 법한 물건은 앞에다 실으라고, 어차피 읽히는 부분은 처음 두 챕터니까 거기 필살기를 써야한다고 권한다.” (존 퀴넌 ‘단 한권의 책’)


새 책으로 갈아치우기 좋은 때는 이때다. 퀴넌은 70쪽 정도까지 읽은 뒤에 다른 책을 펼쳐든다. 그 책도 70쪽 정도 읽으면 또 다른 책을 펼쳐든다. 그러느라 동시에 서른 권에 가까운 책을 돌려서 읽게 될 때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언제 그 나머지 책들을 다 읽게 되냐고?


글쎄, 그건 모를 일이다. 그렇게 돌려 읽다가 돌아돌아 덮어뒀던 책을 다시 펴고 71쪽부터 읽게 될 수도 있고, 끊임없이 열리는 새로운 책의 행렬 속에 묻혀서 영영 멀어져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작가는 그렇게 덮어뒀다가 6,7년이 지나서까지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숱함을 고백한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책의 주요 내용은 70쪽 이내에 다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 어차피 모든 걸 다 읽을 수는 없다.  


책을 여러 권 돌려 읽는 방법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하게 쓰는 방법이다. 어떤 책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기는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 독서를 유지하는 아주 쉬운 방법은 다른 새 책을 꺼내드는 것이다. 새 책은 모든 면에서 새롭다. 퀴넌 말대로 많은 저자들은 일단 독자를 붙들기 위해 초반부에 상당한 힘을 쏟는 경향이 있다. 새 책을 집어 든다는 것, 그것은 흥미진진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새로운 70쪽이 우리 앞에 기적처럼 등장하는 일이다.


요컨대, 읽히지 않는 책을 71쪽부터 다시 읽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을 필요는 전혀 없다.


다독왕으로도 유명한 일본 마이크로소프트 사장 나루케 마코토는 독서에 대한 책을 많이 썼다. 그는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책에서 '초병렬 독서법'이라는 독창적 독서법을 주장한다.  그는 한 권의 책에 연연하지 않고, 주로 물리적 상황에 맞춰서 최적화된 다른 종류의 책들을 준비해 동시다발적으로 읽는다. 화장실에서는 5~10분 안에 한 챕터를 읽을 수 있는 책, 식탁 옆에는 밥먹으면서도 볼 수 있도록 집중도가 덜 요구되는 폰트가 크고 사진이 많은 책, 서재에서는 집중해서 오래 읽을 책 등으로 책을 돌려보는 식이다.  


이 방식은 지루함 때문에 도중에 책 읽기를 포기하게 되는 오류를 효과적으로 막아줄 뿐 아니라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서도 그에 최적화된 독서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한 권 붙들고 좌절할 필요 없다. 안읽히면 멈추고 돌려 읽어라. 시간은 유한하고 책은 많다.


스스로를 '과시적 독서가'라고 소개하는 '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 대표 역시 10~20권 정도의 책을 사면 완독하는 책은 한 두권 정도에 불과하다고 고백한다. 책을 살 때 이 책을 반드시 다 읽어야겠다고 확신하는 경우도 없다고 말한다.


"책은 기본적으로 절반 이상 지나면 좀 지루한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한 권을 끝내기 전에는 다른 책을 못 읽는다고 생각하니까 이 책도 못 읽고 저 책도 못 읽고 거기서 책 읽기 자체를 관두게 되는거죠. …그냥 책에 미안한 생각을 버리고 쿨하게 여기세요.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재미없어서 끝까지 못 읽은거라고요."


인생은 때로 따분하고 힘이 든다. 책 읽는 것까지 그래선 안된다. 인생을 바꾸긴 어렵지만 책을 바꾸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초반 70쪽의 세계를 무한히 만끽하는 것이다. 미안해야할 주체는 내가 아니라, (재미없는) 책이다. 다독서광들 뿐 아니라 평범한 우리에게도 언제나 초반 70쪽의 새로운 세상을 열 특권이 있다. 그 특권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모든 자가 누릴 수 있다. 그 책을 덮고, 다른 책을 펴면 된다. 정말로 간단한 방법일 뿐 아니라 매우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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