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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Sep 06. 2023

중력이 주는 안정감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지난 회사를 다닌 게 7년, 그리고 떠난 게 어느새 8년이다. 어쩌면 이제 내가 기억하는 '회사'는 오늘의 실체보다는 아마 상상 속에서 가공된 부분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란 그런 녀석이다. 차곡차곡 잘 정리해 둔 것 같은데도 멋대로 기억을 뒤섞어 버린다.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의 회사생활'에 대해 감히 입을 열기가 조심스럽다.


나는 호주로 왔다. 특별히 의미를 두었다기보다는, 문이 열리는 곳으로 쪼르르 쪼르르 따라 들어왔다.

비장한 각오도 없었다. 그 당시에 난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문을 두드렸고, 생각보다 매몰차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었다. 어디는 경력이 길어서, 어디는 경력이 짧아서, 퇴직 사유가 불분명해서, 비자가 걸려서 여기저기서 치였다. 절망감에 자꾸만 덜컹거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호주가 문을 열어줬다. 

빼꼼 빛이 들어오자마자 이곳으로 후다닥 뛰어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 나라는 잠금장치가 좀 허술한 편이다. 아니, 아예 없는 건가?

눌러살겠노라고 애쓰면 도끼눈을 뜨고 깐깐하게 구는데, '실례합니다. 잠시 머물겠습니다.' 하면 '아, 그런 거였어?' 하며 얼굴을 바꿔 세상 친절해진다. 


 친절함에 취해 잠시 머물 요량으로 어슬렁 왔었다. 

그러다 3개월쯤 뒤부터는 악을 쓰고 눌러앉아 버렸다. 


지금은 호주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만약 2025년 이후로 멜버른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랜드마크인 플린더스 스테이션에서 조금만 더 걷기를 권한다. 연결된 지하도를 따라 곧 세워질 타운홀(시청) 역을 꼭 방문해 보시길! 지금 내가 열심히 도면을 뜯었다 붙였다 하며 작업 중인 프로젝트이다.


돌고 돌아, 우리나라에서 하던 일에 가장 가까운 일로 정착한 지 이제 딱 1년이 지났다.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 호주로 대학원을 왔고, 영주권을 기다리던 시간들은 지나고 보니 찰나처럼 느껴지지만 무려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코로나로 대격동을 겪으며, 대여섯 군데 회사에서 짧고 경력을 거쳤다. 

그중에는 한인 건축사무소도 있었고, 호주 국토교통부에 해당하는 정부기관도 있었다. 꽤 긴 시간 동안 부동산 재벌 가족이 운영하는 한가로운 가족 회사에서 VR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실험실에 틀어박혀 '금'을 찾아내는 아르바이트도 했고, 전혀 생뚱맞게 미용실에서 리셉션을 보기도 했다.  


그 과정이 조금은 긴 비행처럼 느껴지고, 이 익숙한 엔지니어링 일에 돌아온 지금 마침내 땅에 발을 내린 느낌이다. 잊고 있던 중력이 훅 느껴졌다. 어깨 위로 쌓이는 삶의 무게는 모두 이 중력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발끝에 닿는 땅의 안정감도 중력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일이 힘들고, 월요일이 피곤하지만, 정돈된 일상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여기 발을 딛고 서서, 이제 곧 마흔을 앞둔 요즘 다시 한번 꿈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아니, 꿈, 희망, 목표, 장래희망, 성공 같은 단어들을 온통 어지럽게 흩어놓고 다시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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