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기절
지난 토요일 2022년 6월 11일, 리원이는 여전히 GCSE 시험 중이었지만 기나긴 시험 기간 동안 나름 강약 조절을 잘하고 있는 중이었고 예준이는 한 주간의 Exam week를 끝내고 홀가분한 주말이었다. 리원이가 애정 하는 가수중 하나인 빌리 아일리쉬의 투어가 시작되었고 영국 곳곳은 물론이고 파리,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콘서트가 열렸다. 사실 이번 콘서트 티켓은 무려 2년 전에 티켓팅을 한 거다. 코로나로 인해 2년이나 공연 시장이 멈췄었고 덕분에 빌리의 공연은 2년이나 미뤄졌으며 그 사이 리원이는 GCSE 해당 학년이 되었다. 나름 중요한 시험 중에 이렇게 맘 잡고 놀아도 되는가 싶었지만 두 달 가까이 치르는 시험인지라 멘털 관리와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본인도 꼭 가겠다고 하고 두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것도 이상하고 여기서 그러는 아이들도 없다. 암튼 리원이 덕분에 우리는 백만 년 만에 콘서트를 보러 가게 되었고 코로나 조심도 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런던까지 나가는 것도 귀찮다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만에 런던 나들이도 할겸 결국 온가족이 나서기로했다.
6시 30분에 게이트 오픈이고 8시에 오픈 공연, 9시 15분에 드디어 빌리가 등장한다. 오픈 공연은 Jessie Reyez 캐나다 가수라는데 음색도 특이하고 아주 매력적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알고 있던데 나는 그날 처음 본 가수였다. 내가 모르는 것과는 무관하게 콘서트 전에 분위기 업시키기에 매우 충분한 멋진 가수였다. 우리는 지정 좌석이었으므로 일찍 입장할 필요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런던 나들이라 넉넉하게 일찍 도착해서 저녁도 먹고 주변 산책도 했다. 스탠딩 자리로 입장하는 젊은이들은 이미 우리가 도착한 시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스탠딩석이 제대로 콘서트 느낌 나겠으나 그 긴 시간을 서 있을 자신이 절대 없었다. 다시 간다고 해도 나는 지정 좌석으로 가련다. 아이들은 생각이 다르겠지만... 주변을 돌아보다 우리도 줄을 섰고 줄을 서면서 몸이 불편한 분들이 (의족을 사용하는 분들인데 사실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꽤 많았다. 왜 내 눈에 그분들이 들어왔을까? 장애가 있는 분들도 당연히 콘서트를 즐겨야 하는데... 여러 가지 불편하고 답답한 면이 많은 영국이지만 이럴 때 아, 이곳이 이래서 선진국이라 불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애를 가진 분들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모든 것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곳. 당연한 거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있다는 걸 아는 나는 이런 당연한 것이 또 감사했다.
드디어 빌리 등장!!
아이들은 열광했고 나도 덩달아 설레었다. 자신감 넘치고 박력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내가 보기에도 그녀의 젊음이, 그녀의 재능이 부러울 만큼 멋졌다. 함께 일어나서 함께 춤추며 즐기기 원했던 그녀는 우리들에게 3가지를 당부했다. 이곳에 함께 있는 동안 세 가지의 룰을 꼭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면서...
1. Don't be an axxxole. =.=
2. Don't judge anybody here.
3. Have FUN!! (가장 중요한 룰이라고 했다)
원래 사춘기 청소년들이 엄마 아빠 말은 안 들으면서 좋아하는 연예인 말은 엄청 잘 듣는 건 동서양이 다 마찬가지인듯하다. 어찌나 빌리 말대로 잘 즐기고 행복해 하는지... ^^ 빌리 또한 노래 사이사이에 아이들에게 엄청 긍정적인 메시지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이곳에 함께 와준 부모님들한테도 감사해야 한다는 말에도 아이들은 엄청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우리 때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컴백홈을 불렀을 때 그렇게 많은 가출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던데... ^^ 내 눈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노래 가사를 모르기는 나랑 마찬가지인 듯한데 '네가 좋다면 나도 좋다'라는 느낌으로 눈에서 하트 뿅뿅하며 함께 즐기는 부모들의 모습이 나에겐 참 감동이었다. (이런게 너희들을 향한 우리들의 사랑이란다. 아이들이 부모의 마음을 알런지...?) 그렇게 아이들은 점점 열광하고 결국엔 스탠딩석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기절해서 실려나갔다. 위층으로는 에어컨이 잘 가동되어 더운 줄 몰랐는데 아래 스탠딩석은 아이들의 열기로 꽤나 덥고 엄청 다닥다닥 붙어있어 기절할만하겠다 싶었다. 스탠딩석 앞에서는 물도 나눠주며 안전 요원들이 신경을 쓰고 있었으나 공연장이 워낙 어둡고 시끄러워 안전요원들이 쓰러진 아이들을 바로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주변 아이들이 핸드폰 라이트를 켜서 비춰주니 위에서 보기에 동그랗게 원이 생겼다. 빌리는 노래를 하는 와중에도 자연스럽게 안전 요원을 불러 기절한 아이를 챙겼다. 너무 자연스레 "Security go!!"를 외쳤다. 그렇지, 그 수많은 공연 중에 그렇게 기절한 아이들이 한둘이었겠는가?!
공연 마지막 순간이 되자 빌리는 마무리 인사를 했고 모두 우레와 박수를 보냈고 빠른 행동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나가기 시작했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빌리도, 박수를 보내고 자리를 떠나는 팬들도, 내 눈엔 너무 신기했다. 우리나라 콘서트에서 보면 앙코르는 기본이고 그 앙코르도 한두 번이 아니고 가수가 마무리 인사하고 들어갔다가도 "오빠, 오빠, 오빠!!" 외치면 또 나와서 아쉬움을 달래는 노래를 한곡 더해주거나 인사를 또 하거나 하지 않던가?? (요즘은 아닌가? 내가 너무 옛날이야기를 하는 건지...??) 암튼 공연 내내 보였던 열광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쿨하게 공연이 끝났다. 우리도 주차장이 막힐까 봐 부랴부랴 차를 빼서 돌아왔다.
런던까지 나가서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꼭 공연을 봐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딸 덕분에 오랜만에 콘서트도 보고 런던 야경도 보며 돌아오는 길이 나름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아참!! 다음날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 배우가 빌리의 콘서트에 왔던 사진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고 빌리가 그걸 리그램하고 그걸 또 정호연이 리그램했다는 기사를 봤다. 알고 보니 정호연 배우가 우리 맞은편에 있었던 듯... ㅋㅋㅋㅋ 정호연 배우 인스타 스토리 사진을 보면서 안 보이지만 우리가 이 정도에 앉았겠다며 딸에게 기사를 보여줬다. 딸은 이게 기사로 날일 이냐며 갸우뚱했다. ㅎㅎ 그 다음날까지 재미났던 빌리의 콘서트.
18.06.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