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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 오후 Mar 19. 2018

공산주의자가 어때서?-트럼보

"당신은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몇 가지의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던가.


그 기준은 또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졌던가.




'달튼 트럼보'는 공산주의자다.


세상 만물이 오로지 '공산주의'와 '공산주의 아닌 것'으로만 구분되던 시대.

그는 미국에서 가장 불편한 종류로 분류되었다.


트럼보는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고 1950년 약 1년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시나리오 작가인 트럼보는 어쩔 수 없이 가명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스파르타쿠스', '용감한 사람' 등의 작품을 남기며 오스카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우리에겐 '로마의 휴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각 체제에 대해 이해할 기회도 없이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만을 강요받았던 한국인들에게 공산주의자는 특별히 더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음에도 세상을 좌, 우로만 구분하는 자들에 의한 폭압에 시달리는 그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블랙리스트'


트럼보를 옭아맸던 이 '블랙리스트'란 단어는 그 자체가 이분법적 세계관을 함의하고 있는데, 사람이 이처럼 단순하게 흑과 백, 좌와 우로만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사람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게 될까.


사람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대상을 인식할 때 고유의 주체성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주체에 의해 해석된 객체로 받아들인다.


굳이 대상을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이유는 정보관리의 편의성 때문이리라.


쉽게 말하면 사람은 수많은 외부 대상에 대한 정보를 그대로 소화하기엔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장 구분하기 편리한 객체로 변환해서 받아들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해석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에 근거하느냐이다.


이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사실 굉장히 초라하다. 자신의 제한된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경험에 근거하여 특정 바스켓을 만들고 이름을 붙인 후 그 바스켓에 해당되는 대상을 모두 담는 식이다.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읊어보자면, 

대상의 여러 특징 중 뚜렷한 하나의 특징이(성격, 직업, 재정적 여건, 정치적 성향 등) 포착되면 기존에 경험한 대상 중 비슷한 특징을 가진 대상과 동기화한 후 같은 바스켓에 담아 버린다.


예를 들어 집안 환경이 부유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신이 과거에 접했던(실제로 관계한 사람이든, 사회적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든) 부유한 사람과 비슷할 것이라 여긴다.


복합적일 수밖에 없는 대상을 간소화하는 것.


하나의 특징만으로 기존의 경험에 근거하여 마음대로 상상해버리는 것.


'의외'라는 말은 그래서 폭력이다.


그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니까.

이건 마치 새로 나온 영화가 기존에 있던 영화와 제목이 같다는 이유로 내용도 같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만큼이나 황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유한 성질을 지닌 누군가를 함부로 분류해선 안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한계를 지닌 존재로 어쩔 수 없이 한정적인 자원(시간, 에너지 등)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다만 대상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게 어렵다면, 비용이 들더라도 최대한 다양한 기준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성격이나 정치적 성향뿐 아니라 직업적 성취도, 자라온 환경, 심지어 계절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고려한 후 최대한 여러 바스켓에 나눠 담고 조합해야만 왜곡을 줄일 수 있다.


반공주의자들에게 트럼보는 단지 공산주의자였지만, 영화 제작사에겐 누구보다 믿음직한 작가였고, 가족들에겐 삶의 고된 시간을 나누어 부담할 만큼 중요한 존재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만들어둔 바스켓이 많아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협소해지는 것은 그 방법이 단순히 간편해서가 아니라 지나친 자기 확신 때문이다.


내가 속한 영역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반대 영역에 대한 혐오는 강해지고, 영역을 구분하는 기준에 가중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여러 바스켓을 활용할 여유가 없다.


일례로 진보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은 아무리 탁월한 직업적 재능과 좋은 성품을 지닌 배우라 할지라도 보수적 가치를 지향한다면 실망하고 만다. 정치적 성향이라는 기준이 그 어떤 기준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기준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확신에 매몰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나라는 사람을 깊이 돌아보면, 

'내성적, 진보적, 예민함, 관념론자, 효용성이 최우선'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체성을 가졌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100% 해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복합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그 어떤 누구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 만든 폭력적인 리스트의 항목들을 폐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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