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서막, 신화창조

창작의 원천에서 업(業)을 시작하다

by 대기만손

2012년 5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입사하고 처음 배치받은 부서는 '문화창작기반팀'이었다. 뭔가 팀 이름이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각 장르 부서나 기능 부서에서 추진하기 애매한 사업들이 모여있는 팀이었다. 마치 <미생>의 영업 3팀 같은 느낌이랄까? 하반기 입사라 이미 각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어서 처음에는 팀 내 최선임 차장님의 업무를 보조하며 신입사원답게? 회사 일에 적응하며 어리바리하게 보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이듬해인 2013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한 사업의 제대로 된 부담당자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야기산업활성화'라는 사업이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대부분의 일에는 특정한 사업명과 할당된 예산을 가진 '사업'이 존재한다. 이야기산업활성화도 이러한 사업 중 하나이고 당시 예산은 약 10억 원 정도였다. 사업명이 길다 보니 '스토리 사업'이라고 줄여서 부르곤 하는데, 이 스토리 사업은 당시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의 기초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었다.

“인류의 미래는 정보화 사회의 태양이 지고,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이끌어 가게 될 것“
- 롤프 얀센(Rolf Jensen) -


그즈음은 다양한 장르 콘텐츠의 원천이 되는 스토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던 시기였다. <해리포터>가 대표 사례로 손꼽혔었는데, 당시 책만 4억 부가 넘게 판매되며 총매출이 308조 원에 달했고 영화나 게임, 완구, 테마파크 등으로 확장되며 경제효과가 연간 5조 원에 이른다고 추정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스토리가 발굴되려면 많은 창작자가 콘텐츠산업으로 유입되어야 하고 하나의 작품이 되어 빛을 발할 때까지 숙성의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개발하는 단계는 일종의 R&D 단계로서 노동과 자본은 투입되지만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기업 픽사(PIXAR)의 경우 작품마다 최소 5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평균 7년의 제작기간 중 프리 프로덕션에 5년가량이 소요되고 스토리를 구성하는데만 최소 2년을 투자한다. 흥행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면 분명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은 자명한데 픽사정도 되는 기업이 아니고서야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기간에 장기간 투자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스토리‘를 콘텐츠산업 발전을 위한 기초 R&D 투자로 인식하고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2009년부터 선도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즈음에는 한국 영화의 기획개발비도 2006년 4,600만 원에서 2007년 2,700만 원으로 급감하며 전체 제작비의 1%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민간의 스토리 개발 동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제 막 일기 시작한 '한류'의 지속적인 확산과 발전을 위해 새로운 스토리와 스토리텔러를 발굴하고 육성해 우수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자 했다. 스토리 사업은 이러한 정책 방향성 아래 장르별 오리지널 스토리 발굴은 물론 다양한 장르 콘텐츠로 OSMU(one source multi use)될 수 있는 스토리와 창작자를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스토리 사업은 '新話(신화)창조 프로젝트'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대표사업인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을 중심으로 스토리 발굴, 개발, 제작, 유통 등 단계별로 지원해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내고 해외 진출까지 모색해 보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여기서 新話는 신들의 이야기를 뜻하는 神話에서 '새로울 신(新)'을 적용해 변용한 것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해 내겠다는 사업의 정체성이 반영된 것이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 사업의 세부사업은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운영과 시상식 개최, 스토리창작센터 운영, 콘텐츠 창의워크숍 운영, 부산국제영화제 피칭 등으로 약 10억 원 규모로 당초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스토리가 콘텐츠산업의 근간이자 성장의 핵심 동력이라는 점이 피력되어, 2013년부터는 스토리 기획개발 공모, 원작소설 창작과정 운영, 지역 스토리 창작센터 육성 지원, 신진 스토리 작가 데뷔 프로그램 운영, 스토리 완성화 지원, K-스토리 해외진출 지원, 스토리마켓 개최 등 새로운 세부사업들이 더해져 50억 원이 넘는 규모로 예산이 전년 대비 5배 이상 대폭 증가하였다. 그렇게 나는 스토리 사업이 본격적으로 확장되던 시기에 부담당자로 투입되었고, 창작의 원천이라는 이 분야에서 나만의 제대로 된 루키 시즌에 돌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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