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창작자에 의한, 창작자를 위한(1)

스토리의 중심에서 창작자를 외치다

by 대기만손

2013년 스토리 사업 담당자는 모두 4명이었다. 2012년까지 2명이었지만 예산이 전년보다 5배 이상 늘어났기에 담당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산이 늘어난 만큼 인력이 보강되지는 못했고 그마저도 보강된 인력이 나를 포함해 모두 입사 2년 차의 신입이었다(다른 한 명의 신입은 재무팀에 있던 내 동기였다). 그렇게 사업의 헤드인 차장 1인, 허리인 대리 1인, 그리고 그들의 수족으로서 뒤를 받치는 주임 2인으로 구성된 스토리 사업 유닛은 다이내믹한 한 해를 시작했다.

출처: 네이버 뉴스검색

당시 스토리 사업을 담당했던 선배님들이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었다는 사실은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우선 선임 차장님은 사업계획 수립의 귀재였다. 당시 스토리 사업은 정상적으로 확보한 신규사업 예산이 약 30억 원이었고, 2분기부터 준비해서 6월 1일 자로 시작해야 했던 추경* 사업 예산이 약 20억 원 정도였다. 신규사업만 해도 새롭게 추진하는 사업들의 세부적인 계획을 짜는데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추경사업까지 들이닥친 상황에서도 차장님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면 요술 방망이 마냥 사업계획서가 뚝딱하고 나왔다. 신입인 내 눈에는 그게 정말 너무 신기했었는데, 차장님이 그런 나를 보곤 "대충 하면 돼"라며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시크하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대리님은 유쾌하면서도 일에 대해서는 거침없고 정확하신 분이었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하나 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지적하셨는데, 잘하는 게 있으면 칭찬도 아끼지 않았기에 채찍과 당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나를 트레이닝시키셨다. 지나고 보니 이때 이 분들 옆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내 회사 생활과 업에 대한 자양분이 되었기에 지금도 늘 감사한 마음이다.

* 추경: 추경이라 불리는 추가경정예산은 정부가 당초 확정한 본예산을 수정·보완하여 추가로 편성하는 예산으로, 예상치 못한 경제 상황 변화, 자연재해, 긴급한 재정 수요가 발생했을 때 본 예산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 국회 의결을 거쳐 편성됨


스토리 사업이 규모가 워낙 커지고 세부사업 가짓수도 많아지면서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을 해내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신입들에게도 상당히 많은 업무가 주어졌다. 대략적인 업무분장은 있었지만 딱히 의미는 없었고 차장님과 대리님이 지시하는 일은 닥치는 대로 다 해야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덧 내가 주로 하게 된 업무는 스토리 사업에 참여하는 창작자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창작자들을 관리하는 업무는 이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이나 피칭 현장이 잘 운영되는지 점검하고 이들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동기는 사무실에서 사업추진에 필요한 각종 행정 업무를 중점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선배들이 보기에는 내가 내 동기보다는 조금 더 외향적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참고로 나의 MBTI는 ISFP이다... ^^;;).


내가 관리해야 했던 창작자들은 단순히 작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듀서나 감독도 창작자의 범주에 포함이 되었고, 신인부터 중견까지 정말 다양한 창작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도 한때 드라마 피디를 꿈꿨던 사람이었다 보니 창작자들과의 만남은 정말 즐거웠다. 특히 당시 운영했던 '콘텐츠 창의워크숍'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내조의 여왕>을 연출한 김민식 피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집필한 박혜련 작가, <각시탈>을 집필한 유현미 작가, <해를 품은 달>을 집필한 진수완 작가 등 정말 쟁쟁한 업계 최고의 창작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업 담당이었던 나는 워크숍에 참여한 창작자분들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말을 섞어볼 수 있었고, 가끔 교육이 끝나고 가진 뒤풀이 자리에도 참석하는 영광을 얻었다.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던 K-직장인인 나에게, 대부분이 프리랜서인 창작자분들의 내일이 없는 뒤풀이 자리가 만만치는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20대의 패기와 체력 덕이었는지 얼마나 길어지건 상관없이 그런 자리들을 즐겼고 다음날(보통은 자정이 넘었으니 당일날이라고 해야겠다...) 회사에 지각 없이 무사히 출근도 했다.

2013년 콘텐츠 창의워크숍 포스터

스토리 사업은 최대한 창작자의 입장을 고려해 추진하는 사업이었다. 그래서 아직 꽃피지 못한 신진이나 무명 창작자들은 생업을 병행해야 했기에 이들을 배려해 이런 워크숍은 저녁 시간대에 운영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워라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래도 신입인 나는 이 모든 게 그저 재미있었다. 그렇게 창작자들과 매일 같이 만나고 대화하고 가끔씩 술잔도 기울이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콘텐츠산업에서의 '창작'에 대해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해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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