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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곳에서 Jun 04. 2024

[마드리드] 오, 나의 레알 마드리드!(2)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나는 서해 최북단 섬에서 군복무를 하였는데, 당시 내가 군생활을 하던 부대는 워낙 격오지였기 때문에 싸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 군인들이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지금으로 치면 돈 주고도 하는 디지털 디톡스를 한 셈인데, 당시에는 싸이월드와 레알 마드리드 소식을 볼 수 없어서 아주 미칠 노릇이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상대방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해외 축구팀 소식을 물어보면 '군대 가더니 얘가 미쳤나..'라고 생각할게 뻔했기 때문에,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나는 병장이 되었고, 채널 선택권이 나에게 돌아와서 스포츠 뉴스를 통해 종종 소식을 접하곤 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감독 하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비 알론소, 메수트 외질, 마르셀루 등 갈락티코 2기를 구성했던 시점이다.

그리운 갈락티코 2기 행님들...

군대에 제대한 후, 나는 전공인 스페인어 공부를 위해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내가 있던 곳은 마드리드가 아닌 한국인이 거의 없었던 지방 도시였다. 현지 친구들을 몇몇 사귀었지만, 당시 스페인어가 미숙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노는 것에 기가 빨렸던 나는 어학원과 집만 오가며 무료한 생활을 하였다. 그래도 동네 도서관과 어학원에서 공부는 열심히 해서 스페인어 실력은 많이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먼 스페인까지 와서 공부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매주 주말 저녁이면 나는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단골 Bar에 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 맛있는 타파스와 함께 현지인들과 축구를 같이 보았다. 동양인이 매주 유니폼을 입고 레알 마드리드 경기 시간대에 맞춰 식당에 방문하니 사람들이 나를 퍽 신기해했고, 말도 걸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스페인 음식과 맥주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면서 최애팀의 축구 경기를 보고, 현지인들이 종종 스페인어로 사람들이 말도 걸어줘서 회화 실력도 쑥쑥 향상되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골수팬들과 네트워크가 생기면서 클럽에 대한 현지 정보를 더욱 많이 알 수 있었고, 비하인드 스토리, 가십거리 등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축구 외에도 현지인들이 쓰는 스페인어 어휘, 구어체, 욕 등 다양한 것들을 학습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타파스와 함께 축구를 볼 수 있는 Bar 풍경 / 축구 볼 때 입고 다녔던 유니폼(라리가 32회 우승 기념 한정판 유니폼)

약 5달 동안 준비한 스페인어 자격증 시험을 치르고,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직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내가 공부하던 도시에서 마드리드는 버스로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2시간 30분 만에 더 빠른 고속열차 Renfe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었으나, 1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은 가난한 어학연수생에 언강생심이었다. 당시 스페인 다른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대학교 친한 동기가 있어서, 그 친구와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보기 위해 마드리드에서 만나자고 했다. 당시 우리나라 박주영 선수가 스페인 '셀타 비고'라는 팀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경기를 보는 것으로 결정하고 인터넷으로 레알 마드리드 vs 셀타비고 경기 티켓을 예매했다.


2013년 1월 경기 당일 오전에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마드리드행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니 주변 사람들 몇몇이 Hala Madrid!(마드리드 파이팅!)이라는 말도 외쳐주고, 나보고 축구를 보러 마드리드까지 가냐고도 물어봤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말도 잘 걸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면 당시 스페인 시골에는 동양인이 많이 없어서 내가 신기해 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친구와 마드리드에서 만나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도착했다. 마드리드에 소매치기도 많고, 워낙 사람이 붐볐던 터라 내가 가진 유일한 재산이었던 아이폰4를 주머니 안쪽 깊숙이 숨겨두어 경기장 전경을 찍지 못한 게 아쉽다. 그래도 이 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가 4:0으로 승리를 거뒀다. 우리나라 박주영 선수도 선발명단에 있어서 전반전에 출전했지만,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교체가 되어 조금 아쉬웠다. 지난 몇 년 간 TV와 컴퓨터 모니터에서만 보던 경기와 선수들을 실제로 봤던 그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2013년 레알 마드리드 vs 셀타 비고 라리가 경기 @Santiago Bernabéu

스페인 리그 경기 중 재밌는 경기는 보통 밤 9시에 시작하여 11시에 끝난다. 내가 봤던 경기도 밤 11시에 끝났고, 친구와 나는 숙박 호텔을 잡기도 애매하고 돈도 아낄 겸 그냥 마드리드에서 날밤을 샜다. 한국인이 없는 곳에서 약 5개월 동안 있다가, 친한 친구를 만나 한국말로 수다를 떠니 너무 재미있었고, 긴 새벽 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졌다. 첫 차를 타고 내가 거주하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면서 돈을 번다면 이토록 좋아하는 축구를 실컷 볼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해외 주재원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저 경기를 보고 약 한 달 뒤 나는 복학을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내가 귀국할 때쯤은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 바르셀로나의 메시 두 라이벌 위주로 축구판이 돌아갔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제 스페인 리그를 쉽게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축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시절.. 호날두와 메시가 활약하던 시절의 '엘 클라시코'

그렇게 스페인 어학연수 시절을 마치고 10년 뒤, 돌고 돌아 나는 스페인 마드리드로 주재원 발령을 받아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비록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2기 행님들도 대부분 떠나거나 은퇴했고, 화려했던 스페인 라리가 전성기 시절은 지났지만 나의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팬심은 여전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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