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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곳에서 Jun 05. 2024

[마드리드] 오, 나의 레알 마드리드!(3)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그렇게 돌고 돌아 10년 만에 다시 마드리드에 왔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은 여전히 붐볐고, 길에서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내가 마드리드에 도착했을 때는 코로나19 끝물 무렵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다르게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과거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에서 현찰로만 결제가 주로 가능했었는데, 이제는 카드 사용도 가능하고 심지어 애플페이도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했다. 유럽 안에서도 보수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문화가 강했던 스페인도 코로나19라는 사건으로 인해 많이 디지털화된 느낌을 받았다.


마드리드에서 내가 일하게 될 곳은 레알 마드리드 경기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건물이었다. 심지어 사무실에 출근하기 위한 버스 정류장, 지하철 정류장 역 이름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Santiago Bernabéu)역이었다. 첫 출근날 동료들과 인사를 하는데,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축구 좋아해?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어디가 더 좋아?",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나 18년 차 Madridista야!." 그 친구가 그 대답을 듣자마자 하이파이브를 던지며 포옹을 해주었다. 그때 속으로 "마드리드에서의 회사생활이 순탄하게 흘러가겠군.."이라고 생각했다.


레알 마드리드 팬 18년 차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럽의 경기장을 굽어보면서 일한다는 것은 성덕(성공한 덕후)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일 출근길에 수많은 역사를 써내려 왔던 경기장을 한 번씩 바라보았고, 회사에서 복잡한 일이 생기거나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면 경기장을 바라보면서 멍 때리곤 했다. 내가 도착했던 시기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구장은 한창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진행하고 있었고 '24년 6월 현재 거의 마무리된 상황이다. 이 프로젝트는 약 8억 유로(1조 1천억원)가 투입된 대규모 공사이다. 건물 외관, 개폐식 지붕 설치, 이동식 잔디 등 현대식으로 경기장으로 싹 바꾸었다.

사무실에서 촬영한 레알 마드리드 구장. 왼쪽은 23년 8월, 오른쪽은 24년 6월 촬영

레알 마드리드 팬인 내가 이곳까지 왔으니, 축구 경기를 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10년 전의 대학생이 아니고 직장인이었다. 각종 야근 업무와 저녁 약속, 손님 방문 등 여러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에 코 앞에 경기장이 있었지만, 일정을 빼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알 마드리드 티켓을 구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10년 전에 경기를 볼 때는 인터넷으로 어렵지 않게 구매했었다. 그러나 최근 스페인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서 그런지 대부분의 리그 경기가 항상 매진이었다. 나는 Madridista Premium(연간 유료회원) 임에도 불구하고 티켓팅이 열리는 날에 광클을 해도 항상 매진 글씨만 바라보았다. 그래도 가끔 경기장 박물관에 가서 각종 트로피, 역사적인 사진, 구단 운영 방식 등을 흥미 있게 지켜보았다.

경기장 박물관에 전시된 구단의 업적. 챔피언스 리그 15회 우승, 라리가 36회 우승으로 숫자가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골 중 하나 지단의 챔스 골 장면 및 그의 상징 '프레데터' 축구화.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마드리드에서의 업무와 생활에 적응할 때쯤, 본격적으로 마드리디스타(Madridista)로서의 라이프를 즐기기 시작했다. 먼저 같이 일하는 스페인 동료, 여기서 알게된 마드리드 사람들과 축구 얘기를 많이 했다. 스페인에서 축구 관련 얘기는 크나큰 논쟁거리이면서도, 동시에 친분을 맺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레알 마드리드 골수팬 직원들과 선수 이적 이야기, 가십거리, 역사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업무를 할 때도 호흡이 잘 맞고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평일에 하는 챔피언스 리그 경기의 경우, 퇴근하고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축구를 보면서 팀워크를 다지기도 했다.

직원들과 사무실 근처에서 봤던 23/24 챔피언스리그 명경기, 레알 마드리드 vs 맨시티 전

해외 주재원으로 생활하면서,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알고 현지인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은 비즈니스와 현지 생활면에서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TV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들을 봐도 그렇지 아니한가. 그들이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고, 한국의 숨겨진 곳을 여행하면서 다니는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 사람들이 그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뭐 하나라도 도와주려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 자체가 글로벌 팬을 많이 보유한 구단이지만, 멀리 한국에서 온 내가 레알 마드리드에 관한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면 상대방 현지인에게 각인을 새기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마드리드 생활을 정착하는데 현지 레알 마드리드 팬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살고 있는 곳 경비 아저씨도 레알 마드리드 골수팬이다. 내가 가끔 유니폼을 입고 Bar에 가서 축구를 보러 가는 걸 보고 대화를 걸면, 그때부터 우리는 절친한 친구가 된다. 실제로 집에 물이 새거나, 고장이 나면 이 아저씨가 한걸음에 달려와 고쳐주신다. 그리고 회원권이 있는 현지인을 사귀게 되면, 레알 마드리드 경기에 초청해주기도 했다.(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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