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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곳에서 Jun 06. 2024

[마드리드] 오, 나의 레알 마드리드!(4)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마드리드에서 내가 봤던 경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2개의 경기가 있다. 그중 하나는 23년 9월 24일에 펼쳐진 지역 라이벌전 레알 마드리드vs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경기이고, 다른 하나는 올해 우승한 챔피언스리그 16강전 경기였던 레알 마드리드 vs 라이프치히 경기이다.


스페인 1부 리그인 라 리가(La Liga)에는 마드리드를 연고지를 둔 4개의 축구 클럽이 있다.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요 바예카노, 헤타페로 그중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간의 더비 경기가 아주 치열하다. 그도 그럴 것이, '24년 6월 기준 UEFA 축구 클럽 랭킹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는 2위 이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10위이다. 우리나라 축구 팬들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흔히 "꼬마"라고 부르는데, 이 팀은 절대 꼬마라고 불릴 수준의 팀이 아니다. 챔피언스 리그와 라리가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공격수 분야에서 우수한 선수를 배출하는 팀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페르난도 토레스(스페인),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 세르히오 아구에로(아르헨티나), 라다멜 팔카오(콜롬비아) 등이 모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공격수 출신이다.


이렇듯 유명한 지역 라이벌 경기 티켓은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과거 두 팀은 유럽 축구 대항전인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2번이나 만났고, 스페인 리그에서도 상대 팀을 꼭 이겨야 우승 확률이 높아질 정도로 큰 라이벌이다. 나도 이 경기를 보고 싶었으나, 레알 마드리드 구장에서 치러지는 경기표는 이미 매진되고 암표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보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구장 VIP석에 초대되어, 이 경기를 무려 VIP 석에서 볼 수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가난한 어학연수생 신분으로 그라운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싼 티켓을 구매해서 봤었는데 10년 동안 강산도 변하고 나도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처음 가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구장은 2017년에 새로 개장된 곳이라 아주 깔끔하고 현대식 축구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구장인 Cívitas METROPOLITANO 구장

경기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3:1로 대승을 거두었다. 구단 규모와 전력으로 보면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가 훨씬 앞서지만, 역시 축구에서는 경기를 해봐야 안다. 수만 명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 속에서 나는 레알 마드리드의 패배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의 뜨거운 열기에 이 클럽에도 관심이 생겼다. 실제로 스페인 사람들과 물어보면 레알, 아틀레티코 두 팀 중에 경기장 분위기 자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훨씬 재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경기장 관중 대부분이 찐 마드릴레뇨(Madrileño, 마드리드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고, 입장권도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젊고 혈기왕성한 극성팬들이 많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응원가와 응원 구호를 목청껏 부르는 모습을 보니, 상대 팀이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유난히 홈구장에서 거의 패배하지 않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 반면에 레알 마드리드 관중석에는 전 세계 관광객의 비중이 높아서 구단 응원가, 응원 구호를 외칠 때 약간 단합이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23/24 시즌 세계 최강 팀인 레알 마드리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경기는 올해 3월에 펼쳐진 레알 마드리드와 라이프치히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경기였다. 그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구장에서 꼭 경기를 보고 싶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다행히 운 좋게도 티켓팅을 성공하였다. 마침 이 경기가 치러진 날은 레알 마드리드 구단 창립 12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경기는 보통 화요일 혹은 수요일 저녁에 했기 때문에, 나는 사무실에서 야간 잔업을 하다가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여유롭게 슬슬 걸어서 경기장에 도착했다.

축구 경기 시작 전 전운이 감도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구장 주변

구단 창립 기념일이라 뭔가 스페셜한 이벤트가 있을 줄 알았는데, 별 다른 부가행사는 없었다. 그래도 서포터스들이 멋진 카드섹션을 준비하여 약간의 볼거리는 있었다. 유럽 축구에서 경기 외에도 주목할 것이 바로 카드 섹션이다. 팬들은 카드 섹션을 통해 팀의 역사, 정체성 등을 보여주고 우리 팀 선수들에게는 사기를 북돋아주고 상대 팀에게는 경기 전부터 기를 꺾어 놓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구단의 역사와 전통을 알고 이 카드 섹션들을 보면, 축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유럽의 왕"이라는 문구의 카드 섹션과 창립 122주년을 기념하는 서포터즈들

그러나 경기는 아주 실망스러웠다. 창립 122주년이 무색하게 선수들의 경기력이 형편없었다. 라이프치히에게 1차전에 승리한 탓인지 선수들이 방심한 모습을 자주 보였고, 승리를 향한 집념과 투지가 부족해 보였다. 아무리 팬심이 두터운 레알 마드리드이지만, 이 날 따라 유난히 팬들의 야유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힘들게 이곳까지 왔는데 나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줘!"라는 바람이 섞인 야유와 욕설, 휘파람 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아마도 이런 야유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팀이 이겼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경기는 1:1 동점으로 끝났고, 이 경기를 통해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올해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여 통상 15번째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게 되었다.


23/24 시즌은 레알 마드리드 팬에게는 아주 행복한 시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 리그에서 36번째 우승을 차지하였고, 며칠 전에 막을 내린 유럽 대항전 챔피언스 리그에서 역사적인 15회 우승(La Decimoquinta)을 차지했다. 이 중요한 2개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한동안 도시가 들썩일 정도로 마드리드시 자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나도 레알 마드리드 팬으로서, 일생일대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마드리드의 현지 축제 분위기를 맘껏 즐겼다.(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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