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질 무렵에는 색온도가 낮아져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노을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자연스러운 노을보다는 빌딩 숲 사이사이로 햇살이 부딪혀 만들어지는 노을만을 보기 때문에 본래와는 조금 다른 노을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노을이 질 때에는 일상보다 조금 드라마틱한 느낌을 자아내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해가 질 때에 맞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합니다. 서울 을지로는 회색빛 도시 이미지를 만끽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해 질 녘 시간이 날 때엔 일부러 을지로에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예상할 수 없는 풍광을 경험합니다. 어느 날 문득 이 빛으로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에 느린 셔터 속도와 함께 카메라를 흔들어 봤습니다.
컬러 슬라이드 필름과 1/2초 저속 셔터에 의해 일부러 흔들어 그린 사진은 독특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일상의 모습이 비일상적으로 보여 흔히 볼 수 없는 그림으로 표현되더군요. 오랜만에 이 필름을 찾아 RAW 스캔을 하고는 약간의 보완을 하니 필름 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움이 느껴졌습니다. 필름으로 작업을 하면 디지털 사진보다 오히려 더 풍성하고 독특한 표현력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을지로 어느 거리, 1/2초로 흔들린, 걸어가는 사람에게 정면에서 다가오는 노을빛이 하나의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오래전 그날처럼 언젠가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는 날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노을 지는 을지로에 다시 나가봐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