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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클랑 Dec 01. 2023

안톤 브루크너, 그는 누구인가.

2024 브루크너 특집 





내년 2024년은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이라고 한다. 

특별히 그가 대성당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던 오스트리아 린츠(Linz)에선 

그와 관련 행사들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내년에 빈필하모닉은 안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과 브루크너하우스 린츠 개관 50주년 기념 축하 콘서트를 열 예정이고, 프로그램 일부로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이 연주될 예정이라고 전해진다. 



Brucknerhaus Linz - 출처 : 오스트리아 관광청 홈페이지



브루크너는 13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 Sankt Florian 수도원에 합창단원이 되면서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게 되었다. 


내년 여름 8월 14일부터 24일까지 브루크너에게 각별한 곳인 Sankt Florian 수도원에서는 

브루크너 데이즈 (Bruckner Days)로 지정해 다양한 행사와 연주들이 열릴 예정이다. 


Sankt Florian - 출처 : 오스트리아 관광청 홈페이지


브루크너하우스 린츠(Brucknerhaus Linz)에서는 내년 9월부터 10월까지 11번의 연주를 통해 

그의 교향곡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특별히 브루크너 생전의 제작법에 따라 만들어진 악기로 연주될 예정이라고 한다. 

브루크너는 동물의 내장으로 만든 줄이 달린 현악기, 

지금의 음색과는 상당히 다른 음색을 내는 비엔나식 목관, 금관악기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을 그가 원래 의도했던 방식으로 재현하는 의미있는 시도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브루크너는 누구일까? 







Anton Bruckner, 1894 (Wikipedia Deutsch)


요셉 안톤 브루크너는 1824년에 태어나 1896년에 죽음을 맞이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교사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음악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은 Sankt Florian 수도원에서부터이다. 


합창단원으로 지내면서 여러 음악을 접했고, 이후 음악교사가 되기로 진로를 정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11개의 교향곡과 3개의 미사, 테 데움 등의 종교음악을 작곡했다. 


그러나 살아 생전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주로 바그러의 추종자로 알려지는 바그너파와 브람스를 신봉하는 브람스파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추측하기로는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절대음악 노선에서는 브람스의 노선과도 스타일이 겹치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브루크너의 작곡기법은 슈만과 브람스를 계승한 신고전주의적인 구조와

슈베르트가 보여준 개성화된 내용의 결합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경향은 구스타프 말러로 계승된다고 본다. 또한 그의 종교음악은 멘델스존 이후 종교음악의 맥을 잇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종교음악은 대규모 합창과 교향악의 결합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경향은 베토벤의 장엄미사의 맥을 잇는다. 




Richard Wagner, 1871 Wikipedia Deutsch 




브루크너와 바그너의 관계

브루크너가 바그너의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그가 31살 때 린츠로 거처를 옮길 때부터로 알려져 있다. 

대위법을 배우기 위해 가끔 빈을 갔던 브루크너는 바그너가 지휘한 연주회를 갔던 일이 있다. 

하지만, 브루크너가 바그너에게 처음에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863년, 당시 작곡 스승인 오토 키츨러의 권유로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스코어를 연구하게 되면서 그는 바그너 음악에 매우 흥미를 갖게 되었고, 

그 해에 린츠에서 상연된 ‘탄호이저’를 실제로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얼마후 스승인 키츨러가 지휘하는 '로엔그린'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보고 

브루크너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2년 후인 1865년에 뮌헨에서 상영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초연을 보러 간 브루크너는 

당시 유명한 음악가들이 숙박하고 있던 호텔에서 '안톤 루빈스타인'과 '한스 폰 뷜로'에게 

자신이 만든 교향곡 1번 악보를 보여준 일화가 있다. 


이후 뷜로가 바그너에게 브루크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바그너와 브루크너의 첫 만남이 실현되었다.

린츠에서 대성당 오르가니스트 외에도 프로진이라는 남성합창단 지휘자를 맡고 있었던 브루크너는 

바그너에게 '1868년에 열리는 합창단 공연에서 이전에 작곡한 것이라도 연주하고 싶으니 뭐든 한 곡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그너는 기쁜 마음으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5막에 등장하는 ‘환희의 합창’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당시 브루크너의 감격은 매우 컸다고 한다. 

1872년 5월 빈에 살았던 브루크너는 바그너가 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역으로 마중하러 나갔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바그너는 빈 음악계의 몇몇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빈 음악원과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던 브루크너쪽으로 달려가 ‘자네는 내 동료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듬해 브루크너가 바이로이트에 가서 바그너를 만나고 교향곡 2번과 3번을 보여준 이야기는 유명하다. 

3번 교향곡은 바그너에게 헌정하여 ‘바그너 교향곡’이라고 알려진다. 

바그너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연주해야 한다” “연주해주겠다”고 여러 번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번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바그너가 빈필하모닉에게 연주를 권했지만, 악단 쪽에서 채택하려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바그너는 브루크너를 진심으로 칭찬한 적도 있고,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모든 작품을 연주하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교향곡 3번 외에 다른 작품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베르너 볼프에 따르면, 바그너의 아들 지크프리트는 훗날 “아버지가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을 연주하겠다고 말한 건 본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여러 학자들의 추측으로는 바그너는 브루크너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을 세상에 소개하고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았고

(자기에게 특별한 이익이 없다면), 그의 작품에 관한 일이 아니면 시간을 잘 내지 않았다고 한다.

브루크너도 바그너가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거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브루크너는 자신이 지나치게 바그너 숭배자로 여겨지는 것도 꺼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브루크너는 실제로 바이로이트를 자주 방문했고, 바그너 오페라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오페라는 작곡하지 않았다.) 

바그너의 음악을 열렬히 좋아했던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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