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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클랑 Dec 04. 2023

오늘날 브루크너의 음악이 전해지기까지

2024 브루크너 특집  


브루크너와 히틀러의 관계


브루크너도 바그너처럼 나치 독일 시절 나치의 선전용으로 전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브루크너를 한 인간으로서, 작곡가로서 관심이 많았으며, 유년시절, 브루크너의 교향곡에 매우 감동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히틀러가 예술가로서 빈의 미술계에 들어가는데 실패하게 되면서 자신의 신세를 초기에 빈의 예술계로부터 촌사람으로서 아웃사이더나 다름 없었던 브루크너와 동일시하게 된다. 


브루크너 흉상 앞에 서있는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는 브루크너도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였다는 것을 강조하며 브루크너를 이용했다.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적 모습과 민족주의적인 이면은 히틀러가 나치당 선전에 이용하기 좋은 면이였다.)  

여러 정치 집회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이 연주되었고, 히틀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 때도 브루크너의 7번 교향곡이 라디오에서 울려퍼졌다.

그러나 바그너와 달리 브루크너는 게르만 민족주의, 반유대주의자가 아닌 게 밝혀졌고, 유대인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와 친한 사제관계였다는 것이 알려져 바그너와 같은 큰 오명을 얻지는 않았다. 

그 덕분에 그의 작품은 별다른 외부 저항없이 연주되었고, 이스라엘에서도 그의 음악은 자주 연주되다.




브루크너의 원전판(Urtext) 문제

판본문제가 브루크너만큼 복잡한 작곡가가 없다는 말이 있다. 

브루크너가 살아생전 자신의 곡을 미친듯이 뜯어고쳤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번도 아닌 여러 번)

더군다나 그의 사후에까지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개정작업이 늘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던 건 아니기에 곡에 따라 판본 간의 평가도 엇갈린다.

 예를 들어 1번 교향곡의 경우, 최종개정판(1891년)이 곡의 개성을 감쇄시켰다는 견해가 있어

이전 버전인 1877년 판본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바그너에게 헌정된 3번의 경우, 판본 문제가 가장 복잡한 곡이라고 한다.

1890년판이 많이 연주되고 있지만, 그 전 판본인 1877년판을 선호하는 지휘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브루크너의 음악, 그 특징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지만, 오페라엔 큰 관심이 없었고, 대신 관현악법과 대담한 화성 구성 등 음악적인 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중기 이후에 작곡한 교향곡들의 경우, 기존의 소나타, 론도 형식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고 있고, 9번 교향곡 3악장에선 무려 일곱 개의 다른 음정들을 한꺼번에 올리는 불협화음 효과도 사용한다.

또한, 한 가지 음형을 내놓으면 곧바로 버리는 경우 없이 반복해가며 음악에 추진력을 싣는다. 

‘브루크너 시퀀스’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다.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음향이 장중한 탓에 편성이 크리라 생각되지만, 

교향곡 7번에 ‘바그너 튜바’라 불리는 튜바 4대가 추가되면서야 편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금관악기의 역할로 인해 장중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오르간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사운드를 모방하기 위해 금관을 사용했다는 의견들이 있다.


https://youtu.be/uaV3eEJB55c?si=ikyMaYSEozoFDMSu

안톤 브루크너의 7번 교향곡 -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지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2018년 프랑크푸르트 알테오퍼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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