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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Sep 13. 2024

K를 버려야 산다!

베트남 전문가 칼럼

이따금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필자에게 베트남 바이어를 소개받기 원하거나 필자가 직접 베트남에서 해당 제품을 유통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일들이 있다. 그러면서 ‘한국 홈쇼핑에서 팔다 남은 재고’이거나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이라는 꼬리표를 단다. 그러면서 ‘아주 저렴하게 공급해줄 수 있으니 베트남에서 쉽게 팔 수 있지 않겠느냐’며 선심 쓰듯 제안한다. 베트남 시장 상황을 잘 몰라 그런 것이긴 하겠지만 이들의 제안에는 


1)   소득 수준 낮은 베트남에서 (못 사는 나라에서)

2)   한국 제품이 인기라는데 

3)   Made In Korea 제품을 

4)   낮은 가격에 공급해주면 

5)   잘 팔리지 않겠어 

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 소비자라고 해서 한국에서 잘 팔리지 않고 유통기한도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Made in Korea’라는 이유만으로 제품 구매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지역 소비자들은 제품을 고를 때 의심이 많고 품질을 깐깐하게 살펴 본다. 그 이유는 저급한 품질의 가짜 제품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세안에서 이커머스가 가장 활성화된 베트남이지만 여전히 Cash on Delivery (물품이 배송될 때 현금으로 결제) 방식을 선호한다. 소비자가 품질에 문제가 없는지 최종 확인한 후 결제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유통기한이 1년 미만 남은 제품들은 아무리 할인을 많이 해도 재고 처리가 쉽지 않다. 소득 수준이 낮은 소비자에게 ‘싸게 팔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들을 한국에서는 쉽게 한다. 하지만 오히려 소득 수준이 낮아 제품을 잘못 구매했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 경제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안전한 구매를 할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잘못 주문한 물건을 쉽게 버리고 새로 구매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다 평소 이용하던 브랜드도 아니고 인지도가 낮은 제품이니 ‘가격이 저렴한’,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구매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인식 속에 ‘Made In Korea’이니 당연히 팔리지 않겠느냐는 오만한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류가 만능은 아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크게 잘 못 생각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한류인기=한국 제품 인기’라는 인식이다. 중소기업에서부터 굴지의 대기업까지도 쉽게 바뀌지 않는 잘못된 인식이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 음식이나 한국 제품이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일시적이고 극히 일부의 사례이다. 

세계적인 한류 스타 BTS 멤버들의 사진을 넣어 판매한 H사의 콜드브루 커피가 한류의 인기가 절대 만능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다. 해당 제품은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인기 속에 팔렸지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BTS 커피를 독점 유통한 업체의 대표는 베트남에서 유명하고 영향력도 상당했다. BTS 커피를 판매할 당시 베트남 현지 연예인들과 인플루언서들까지 대거 불러 토크쇼를 하고 주요 매체에 광고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BTS 팬이 2번쨰로 많은 나라의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팬덤 연구소 블립(Blip)의 유튜브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한 ‘2019년 K-POP 세계지도’에 따르면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BTS 인기가 높은 나라였다. 당시 베트남에 이어 전세계에서 BTS 인기가 3번쨰로 많은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도 역시 BTS 커피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언론은 ‘가격은 비싸고 맛은 평범하다’고 혹평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업계 관계자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판매하기에는 BTS 커피의 가격이 높기 때문에 반응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모두 270ml 용량의 BTS 커피를 현지 한 끼 식사 값인 한국돈으로 3000원가량에 판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판이다. KPOP 열풍의 중심에 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10대~20대들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세계 2위~3위 커피 원두 생산국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는 자신들만의 커피 문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들 지역 직장인들은 졸음을 깨우고 집중력을 위해 카페인을 섭취한다. 야외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카페인 함량이 높고 단기적인 에너지 보충을 해줄 수 있는 달콤한 연유가 듬뿍 들어간 커피를 선호한다. 당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판매되었던 BTS 커피는 모카 라떼, 바닐라 라떼로 베트남 소비자들의 취향에도 맞지 않았고 주요 소비자가 될 MZ들은 커피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제품 판매가 잘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판매가 잘 되는 것을 더욱 잘되게 하는 것이지 안팔리는 제품을 팔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지난 20년간 중국에서 크게 성공했던 한류와 한국 제품 인기에 대한 기억이 ‘한류=한국 제품 판매’라는 고정 관념을 떨치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렇게 입장을 바꾸어 설명해보면 어떨까?


한국에 피자와 스파게티를 판매하는 식당이 수 천 곳이 있는 것을 확인한 이탈리아 기업이 ‘한국은 이탈리아 문화 열풍이라 이탈리아 상품을 수출하면 대박이 날 것이다’라고 분석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또한 대한민국 베이커리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1, 2위 기업의 이름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 있고 프랑스풍 베이커리를 추구하고 있으니 프랑스 제품이라면 무조건 팔릴 것이라 판단한 프랑스 기업 담당자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명품은 한국에서 엄청나게 팔리지만 그 외에 제품이나 두 나라의 문화 상품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하다. 이탈리아인과 프랑스인이 우리 나라에서 충분히 오판할 수 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스스로에게 자문자답 한다면 한류가 해외 사업의 만능은 아닐 것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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