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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자정리 Dec 29. 2022

글은 변하지 않는구나

2022년을 보내며...

구독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님의 글 중에... 문체에 대한 글이 있었다. 문체에 관한 글은 아니었고, 작가님의 지인과 글에 대해 논쟁 중에 나오던 설명이었다. 간략하게 말하면 문체는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사람의 글의 스타일인데... 지인이 문체도 가르치고 바꿀 수 있다는 식으로 혹자들을 기만하고 있다 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뜬금없이 왜 문체 타령인고 하니. 그 글을 읽기 전에 통상적으로 표현되는 스타일이 있다는 것쯤이야 인지하고 있었으나 글에도 고유의 개성이 '문체'라는 의미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터라 내가 갖고 있는 문체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오래된 ID를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 이름도 가물가물한 한 메일에 접속했다. 휴면을 해제하고 과거 메일을 보다가 가장 아래에 있던 메일을 한 통 발견했다. 


대학생 때 배낭여행에서 만났던 지인들 중 한 명에게 보낸 메일로 리포트가 첨부파일로 있었다. 20년도 더 된 영화 감상 리포트. 당시 여행을 다녀와서 또래다 보니 자주 만났고 몇몇이 아주 많이 친해졌다. 지금까지 모두는 아니지만 몇몇은 연락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특별한 인연인 것만은 틀림없다. 


어쨌든, 그 몇몇 끼리 만났던 날. H가 교양수업을 듣고 있는데 감상문을 써야 하는데 난감하다며 툴툴거렸다. 


몇 장이나 써야 하는데? 그냥 쓰면 될 거 같은데...

그럼 오빠가 쓸래요? 


어떤 표정이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얄미워 째려보았는지 혹은 관심을 보이며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는지 말이다. 몇 마디의 대화가 더 오고 가고 이야기가 더 진전되었다. 


H가 먼저 제안을 했는지, 내가 먼저 장난 삼아 제안을 했는지 명확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를 H가 보여주고 내가 리포트는 써주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그래~ 뭐 그까지 것 내가 써줄게. 영화도 보여준다고 하는데...


학생 때는 리포트, 직장인 일 때는 보고서, 기획서 쓰는 거야 어디 가서 못 쓴다는 소리는 안 들었던 터라 호기롭게 수락했던 것 같다. 행여, 혹자가 상상하기에 둘이 썸이라도 탔나 싶겠지만,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같이 늙어가는 처지지만, 당시 여행을 다녀왔을 무렵에 나는 무려 군대를 다녀온 나이 많은 오빠였고, 나머지들은 또래들이어서 그런 감정적 교류에 끼기에는 어려웠다. 실제 어렴풋이 영화를 본 사실은 기억이 나는데 어느 영화관이었는지 영화를 보고 나서 밥을 같이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희미하다. 


영화 4월 이야기 - 포스터


어쨌든, 약속은 했으니 영화를 보고 나서 이틀 만에 리포트를 써서 보냈던 것 같은데, 그 메일을 아주 오래간만에 다시 본 것이다. 영화는 이와이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였는데, 러브레터 유명세 이후 이와이슌지 감독의 국내 개봉작으로 꽤나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10 포인트로 2장. 서론과 본론 구성으로 꽉 채워 쓰긴 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굴림체 폰트. 하나부터 열까지 가관이다. 간결하지 못한 문장. 한 문장으로 끝내지 못하고 붙이고 늘이고 덧붙인 문장들 투성이다. 


그런데, 가만히 읽다 보니 지금 쓰고 있는 문장의 스타일. 문체가 간혹 보인다. 다시 쓰라고 한다면 전부 다 손댈 것 같지만, 얼마나 좋아질지는 알 수 없다. 더하여, 몇 개의 표현과 구성은 지금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도대체 발전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인가라는 반문이 든다. 솔직히 적잖이 충격이었다. 


문체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에 안도를 해야 하는 걸까?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데 역시나 완전한 변이는 불가능 한가 보다. 


22년, 목표가 있었다. 브런치에 쓴 글들을 모아 자가출판을 하는 것. 그래서 22년 올해의 키워드는 '출간작가'를 선정하겠노라고 21년 겨울에 다짐을 했었는데, 하지 못했다. 


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몇 가지 이유로 안 한 것에 가깝다고 억지를 좀 부려보고 싶다. 첫째, 글을 쓰고 책을 한 권 가져 보겠다는 것이 온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것인데, 그를 준비를 위해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둘째, 브런치라는 준 프로 작가님들 속에 파묻혀 살다 보니 조금이 나마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었다. 일부 변함없는 나의 문체를 보고 성장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깨달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2022년을 마무리하는 이때, 올해의 키워드를 뽑아본다면 생뚱맞게도 '젊어지기 프로젝트'다. 운동을 비롯해 보톡스를 포함한 시술도 좀 받았기에, 건강해지고 젊어졌다. 적어도 올해의 키워드에 대한 개인적 만족도는 아주 높다. 하려고 했던 것은 부족했으나 새로운 것을 이뤄낸 한 해랄까?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설이 있지 않은가? 막상 22년을 마무리하는 글을 쓰다 보니 자기만족을 위한 열망이 스멀스멀 일렁인다. 23년을 맞이하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22년의 목표를 이뤄 볼까 싶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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