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회자정리 Oct 19. 2022

너도 나처럼 자랐구나

작은 고무나무의 성장기

 아내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아내와 회사는 다르지만 같은 건물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 덕분에 저녁에 일하다가 갑작스런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각 자의 팀 회식에 끼여 동료이자 친구처럼 상대의 회사동료들과 떠들기도 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적지 않다. 연애 초기니 좋은 기억뿐인 게 당연한가? 훗!


 아무튼, 당시 난 팀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초보 팀장으로 팀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가져가기를 희망했기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 마음에 팀원들에게 사무실에서 키울 수 있는 화분을 하나씩 선물을 하고 아내에게도 선물하려고 인원수대로 화분을 샀었다.


 각각 이미지에 맞는 화분을 골랐고, 아내에게는 천양금을 주었다. 빨간 열매가 달려 있는 것이 그녀에게 잘 어울려 보였었다. 팀원들까지 하나씩 골라주고 내가 고른 녀석은 인도 고무나무였는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화분을 포함해 30cm가 조금 넘는 크기로 사무실에서도 별 탈 없이 잘 클 것 만 같았다.

 

집으로 거쳐를 옮긴 후부터 해를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같은 건물(회사는 다름)에서 결혼까지 하고 난 후에야 아내가 먼저 이직을 하고 나도 몇 달 후에 이직을 했었다. 이직을 하면서 내가 키웠던 인도 고무나무는 자연스레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책상 위, 작았던 고무나무는 어느새 햇수로 13년이 되었다. 아내와 만난 해에 결혼했으니 연차가 같다. 당연한 것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그때 화분을, 정확히는 그 나무를 키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만이 지금까지 말 그대로 키우고만 있다.


 중간중간에 분갈이를 한 횟수만 세 번. 제법 긴 세월 동안 자랐기에 벌레도 한 번 생겼었다. 또, 가지치기 물꽂이를 해서 새롭게 키우기도 선물을 주기도 했었다. 올곧게, 그리고 가지가 굵게 자라기를 바랐는데 쉽지 않다. 가지치기를 잘하지 못해 휘어지고 잔가지들이 들쑥날쑥이다.


 그나마 너무 한쪽으로 뻗거나 더 키가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가지를 자를 때마다 맘이 아프다. 고무나무다 보니 가지를 자르면 하얀색의 끈끈한 고무 진액이 나오는데 마치 하얀 피를 흘리는 것만 같다.


 나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햇빛도 잘 들게 해야 하고, 물도 주기에 맞게 잘 줘야 한다. 또, 환기도 주기적으로 잘 시켜야 하는데, 알고는 있지만 매번 정성을 다 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집안에 갇혀 오전에만 드는 짧디 짧은 햇빛을 갈구하고, 화분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의 뿌리를 내리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작년 거실에서 찍은 고무나무 사진 (맨 우측)


 이사를 할 때마다 남향의 집을 구하지 못했었다. 그 집의 구조에 따라 빛이 비교적 잘 들기도 하고, 반나절만 들기도 했는데 식물들은 여지없이 그 빛을 찾아 가지가 휘어졌다. 자주 화분을 돌려주고 신경 쓰면 덜 할 텐데 하루하루 그냥 지나치기 십상. 


 그 자리에서 잘 있다 보나 하며 방심하면 아무도 모르게 새순이나 새로운 가지를 뽐내고 빛나고 있는데 옆에 있는 나만 미처 알아보지 못했나 하는 약간의 자책이 생기기도. 관심을 바라는 건 식물이나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나 보다.


 그제야 발견한 새순은 초록초록빛이 난다. 어떻게 이걸 발견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를 품은 색이랄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며 진한 초록의 잎으로 변해버린다. 하지만, 초록의 생생함은 결코 변함이 없다. 최근에서야 너무 휘어진 고무나무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지지대에 고정하여 허리를 펴고 있다. 완전하게 꼿꼿하게는 어려워도 제법 바로 섰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타인에게 이런 일도 겪었다가 할만한 일 두세 번쯤 없었을까? 풍파가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이까지 여러 면에서 제법 잘 자랐고, 컸고, 그리고 살아왔다. 나도, 고무 나인 너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