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 세계관의 안과 밖 — 설계 원리에서 산업 응용까지
예습 원고와 FEWK 단편선 100편의 경험이 응축된 설계 원리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이것들은 세계관을 만드는 사람이 내부에서 지켜야 할 원칙이다.
저는 세계관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있다. ‘이 세계에서 무엇이 안 되는가.’ 가능성을 먼저 묻는 분들이 많은데, 순서가 반대다. 이 세계에서는 어떤 마법이 있고, 어떤 기술이 있고, 어떤 종족이 있는가. 이런 질문은 세계관을 넓히지만 정의하지 못한다. 진짜 세계관을 만드는 것은 금기다. 무엇이 불가능한가.
듄(Dune)을 보자. 아라키스에서는 물이 귀하다. 물이 귀하기 때문에 스틸슈트³가 존재한다. 스틸슈트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막 횡단이 가능하다. 사막 횡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스파이스 채굴이라는 경제가 작동한다. 스파이스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은하 전체의 정치가 아라키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프레멘의 장례 의식에서 시신의 수분을 부족에게 돌려주는 문화가 생겨난 것도, 물 한 방울에 경의를 표하는 인사법이 존재하는 것도 전부 같은 기원이다. 물의 불가능성 하나가 세계 전체의 경제, 정치, 문화를 결정한 것이다.
FEWK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소금이 복제되지 않는다. 소금이 복제되지 않기 때문에 소금장수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소금장수라는 직업이 존재하기 때문에 18킬로그램의 무게가 판돈이 된다. 금기가 판돈을 만든다. 3장에서 다룬 규칙과 법칙의 구분이 여기서 실무로 작동한다. 법칙은 위반이 불가능한 자연의 질서이고, 규칙은 어길 수 있는 사회적 약속이다. 세계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법칙, 즉 이 세계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의 목록이다.
7장에서 다룬 FEWK의 천연교양이 이 원리의 정확한 구현이다. 복제기가 모든 것을 만들어주는 세계에서, 복제하지 않을 여유가 계급이 되는 역설이다. 불가능성이 만든 가치이다. 천연 직물 교복을 입는 학교가 가장 비싼 학교라는 설정은, 물의 불가능성이 듄 전체를 결정한 것과 동일한 구조이다. 하나의 금기가 경제를, 계급을, 문화를 낳는다.
이것은 6장에서 다룬 메시지의 법칙 코딩과 직결된다. '자유는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직접 서술하면 교훈적이고 지루하다. 그러나 '이 세계의 공기는 마법 정부에 의해 배급되며, 숨 쉬는 횟수만큼 세금을 낸다’는 법칙을 설정하면, 자유라는 메시지가 세계의 구조 자체에 내장된다. 불가능성을 설계하는 것이 곧 메시지를 설계하는 것이다.
여러분 중에 친구한테 ‘이거 꼭 봐’ 하고 추천해본 적 있는 분, 그 순간 여러분은 이미 공범이었다.
우리는 독자를 해석자로 본다. 이 서사를 읽고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 그런데 세계관 기반 서사에서 독자는 단순한 해석자가 아니다. 이 세계의 규칙을 알고, 그 규칙 안에서 인물의 선택을 판단하는 공범이다.
추리소설의 독자가 "범인은 집사야"라고 추측하는 것은 해석이다. 그 독자가 친구에게 “이 책 읽어봐, 절대 범인 못 맞출 걸” 하고 추천하는 것은 공범 행위다. 세계관의 규칙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그 세계를 전파하는 순간, 해석자에서 공범으로 전환된다. 해석은 혼자 할 수 있지만 공범은 상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공범은 본능적으로 다음 공범을 찾는다.
8장에서 다룬 커뮤니티 사람들, 조회수를 쌓아 콘텐츠를 밀어올려주는 그 사람들의 정확한 이름이 공범이다. 약탈적 소비자가 1등이 되면 보러 오는 사람이라면, 공범은 1등이 되기 전부터 밀어올려주는 사람이다. 문피아에서 조회수를 쌓고, 팬사인회를 위해 앨범을 태우고, “이거 꼭 봐” 하고 링크를 보내는 사람. 이들이 공범이다.
2장에서 다룬 핍진성의 원리가 여기서 작동한다. 세계 내부의 일관성이 현실과의 일치보다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은, 독자가 그 세계의 규칙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동의한 순간 독자는 더 이상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다. 스타워즈에서 소리가 들리는 이유를 팬덤이 에테르 이론으로 해명한 것처럼, 세계의 규칙을 지키고 보강하는 공범이 된다.
공범이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된다. 해석자는 혼자이지만 공범은 함께여야 한다. 5장에서 다룬 배타적 지식 체계의 진짜 기능이 여기에 있다. 같은 규칙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 그것이 커뮤니티의 최소 단위이다.
빈 곳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우리는 절제의 미학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더 깊은 층위가 있다. 빈 곳은 팬덤이 채운다.
원피스(One Piece)에서 "공백의 100년"⁴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워둔 역사다. 80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작중 세계정부가 금기시하고, 작가도 밝히지 않는다. 팬덤은 20년 넘게 이 빈 곳을 채우려고 이론을 세우고, 토론하고, 2차 창작을 한다. 공백의 100년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팬덤은 매주 새로운 단서를 찾고, 매주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이 빈 곳이 없었다면 팬덤의 에너지는 절반 이하로 줄었을 것이다. 빈 곳은 결함이 아니라 엔진이다.
FEWK 단편선 100편에서 오지리¹에 전용 편이 없다. 리추얼 메카닉이 약하다. 이것은 결함이 아니다. 룰북 본편과의 역할 분담이다. 단편집이 세계관 사전이 되면 안 된다. 오지리에 전용 편이 없기 때문에 독자가 오지리를 상상한다. 그 상상이 참여다. 참여가 소속감이다.
즉 빈 곳을 설계하는 것은 팬덤의 창작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다. 세계관이 미완성인 것이 아니라 독자를 공동 창작자로 초대하는 구조다. 8장에서 다룬 케이팝 팬덤이 비공식 굿즈를 만들고 파는 것이 용인되는 이유도 같은 원리이다. 팬덤의 2차 창작은 세계관의 빈 곳을 채우는 행위이며, 그 행위 자체가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연료이다.
물리적 판돈만 작동하는 세계관은 초보적이다. 생존, 부상, 경제적 손실. 이것들은 가장 즉각적이지만 가장 얕은 층위이다.
세계관의 법칙이 정교해질수록 더 깊은 층위의 판돈이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직업적 판돈(해고, 자격 박탈), 정체성 판돈(이름의 소멸, 분류 불가능), 관계적 판돈(배신, 묵인, 보호의 포기), 존재론적 판돈(기억, 존재 자체). 설계자가 의도하지 않아도 세계의 법칙이 인물을 그 층위로 밀어붙인다.
FEWK가 사용하는 판돈의 층위 구조는 다음과 같다.
물리적 : 생존, 부상, 경제적 손실 - 소금장수의 18kg 등짐
직업적 : 해고, 실격, 자격 박탈 - 뇌네보정사의 패러독스 부하
정체성 : 이름 소멸, 분류 불가능 - 먹개비사냥꾼의 이름 미끄러짐
관계적 : 배신, 묵인, 보호 포기 - 게이트키퍼의 밀입국 아이
존재론적 : 기억, 차원, 존재 자체 - 에이미 하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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