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8장 콘텐츠 소비의 구조

8장 · 소비의 구조 — 매일의 콘텐츠 소비를 설계하는 것

by 김동은WhtDrgon

일반 대중이라는 허상 — 약탈적 소비와 장르적 소비

일반 대중이라 부르는 집단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특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만 관객이라는 현상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천만 관객이 전부 그 장르의 팬인가. 그렇지 않다. 왕사남 같은 사극 영화가 대박을 치면, 그 천만 명의 태반은 사극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아니다. 1등 하면 보러 오는 사람들이다. 공통의 화제를 위해서 오는 것이다. 품질이 보장된 1등의 영역에 올라갈 때까지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 영역까지 밀어 올려주는 것은 커뮤니티 사람들뿐이다.


더 흥미로운 현상은 그 다음에 벌어진다. 사극을 봐버린 것이다. 이제부터 사극이 안 팔린다. 어제 짜장면을 먹었으면 오늘은 짬뽕조차 먹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약탈적 소비¹라 부른다. 경험할 것은 사방천지에 널려 있기 때문에 한 번 경험하면 당분간 끝이다. 낚시를 한 번 갔으면 낚시꾼이 아닌 이상 1년 동안 낚시터에 안 간다. 산에 한 번 가면 산도 끝이다. 바다를 가야지. 이렇게 장르를 점프하듯이 한 방에 끝내버린다. 그래서 어떤 영화들은 1년에 한 편밖에 선택을 못 받는다.


반면에 서브컬처²나 장르물, 드라마 팬 소비자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매일 본다. 똑같은 내용 같은데 계속 보고 있다. 판타지를, 무협을, 로맨스를, 비디오 테이프를 바꿔가면서, 책을 바꿔가면서 쌓아두고 계속 본다. 표절과 양산의 산더미에서 같은 키워드로 구분되는 이세계 순정 악역영애 같은 장르와 키워드 안에서 끊임없이 소비한다. 끝났으면 딴 데로 점프하지 않고 똑같은 것을 또 찾는다. 아침 드라마의 팬이라면 아침 드라마가 끝났을 때 동일 장르가 또 나와야 한다.


이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웹소설 플랫폼이다. 문피아³ 같은 도전 작가 플랫폼에 일반인은 절대 안 간다. 커뮤니티 사람들만 소비한다. 거기서 조회수가 쌓이면 메이저 출판사가 픽업하고, 그제서야 출간이 된다. 과거의 시스템은 완전히 반대였다. 편집자가 OK하면 잡지에 연재가 시작되고, 인기투표를 거쳐서 단행본이 나왔다. 위에서 인지가 내려오는 구조였다. 지금은 밑에서 올라가야 하는 구조로 완전히 뒤집혔다. 게이트키핑의 방향 자체가 역전된 것이다.


서브컬처나 아침 드라마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세계관을 분석해보면 전문 용어들이 재편되고 있는 똑같은 장르물이다. 이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끊임없이, 100원짜리처럼 소비한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영화는 한 편을 보고 끝나지만, 드라마는 매일 봐야 한다. 1일 연재물이 계속 나오고, 그것을 계속 소비해준다. 어제 봤다고 오늘 안 보지 않는다.


1장에서 다룬 팬덤의 투자적 소비가 여기서 산업의 실체로 드러난다. OTT⁴ 방식에서는 사실 커뮤니티 체계가 맞다. 특정 장르를 끊임없이 소비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상위 1위부터 10위를 계속 보고 있는 일반 대중도 있지만, 그것은 소비되어 끝나는 것이다. 커뮤니티의 소비는 다르다. 브리지턴을 보고 섭정 시대 로맨스에 빠졌다가 그 장르가 소진되면, 다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다. 재탕 삼탕이 시작된다. 자기가 보고 재미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또 본다.


이 커뮤니티 사람들은 단순한 해석자가 아니다. 이들의 정체를 9장에서 더 정확한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소결]

일반 대중은 약탈적으로 소비하며 장르를 단발적으로 체험하고 떠난다. 밀어 올려주는 것은 커뮤니티 사람들뿐이다.

장르 커뮤니티의 소비자는 같은 장르를 끊임없이, 매일, 반복적으로 소비하며 이것이 OTT 시대의 실질적 소비 구조이다.

콘텐츠의 게이트키핑이 역전되었다. 과거에는 위에서 인지가 내려왔지만, 지금은 밑에서 올라가야 한다. 세계관 기반 콘텐츠의 타깃은 약탈적 소비자가 아니라 그 밑바닥에서 조회수를 쌓아줄 장르적 소비 커뮤니티이다.


신용과 허락 — 콘텐츠가 선택받는 과정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소비자에게 도달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도달하려면 허락이 필요하다. 5장에서 다룬 크레딧의 개념이 여기서 유통의 실무로 작동한다.


편의점에서 멋진 이성과 친해진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 용건 있는 관계가 시작된다. 물건을 사러 가는 것이다. 상대방과 대면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것이 용건 있는 관계이다. 콘텐츠도 똑같다. 용건 있는 관계가 시작되어야, 그다음에 딱히 용건이 없어도 그 콘텐츠를 누르게 된다.


넷플릭스 증후군⁵이라는 표현이 이것을 보여준다. 여러분도 해보셨을 것이다. 넷플릭스를 켜놓고 30분 동안 고르다가 결국 전에 봤던 것을 또 본다. 휠을 내리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 타이틀은 알지만 한 번도 선택해 본 적이 없다. 타이틀만 안다. 이렇게 한 번도 눌러보지 않은 것들이 끊임없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선택하지 않는다. 차라리 옆에 있는 처음 보는 것을 눌러본다. 그러다가 아는 것이 나오면 그것을 또 본다. 재밌다는 것을 이미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의 본질은 신용이다. 새로운 콘텐츠에는 신용이 없다. 내가 이것을 소비하는 신용, 즉 이것이 내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보증이 없다. 신용을 얻으려면 이미 내가 선택한 것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라야 한다. 1장에서 다룬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그것이다. 장르라고 부르는 그 영역에 들어가야 겨우 선택받는 것이다.


대량 생산 시대에는 달랐다. 좋은 제품이 있으면 팔 수 있었다. 물건이 항상 귀했기 때문에 찍는 대로 팔려 나갔다. 정보에 궁핍했기 때문에 라디오도 팔리고 TV도 팔렸다. 그러나 콘텐츠가 사방에 넘쳐 흐르는 시대가 되면 공중파가 과연 팔리는가. 지금의 현실은 숫자로 드러난다. 넷플릭스는 편당 80억에 작가의 자유까지 보장해준다. tvN이나 JTBC는 편당 12억이다. 공중파는 편당 4억이다⁶. 제가 콘텐츠 업계에 있으면서 느끼는 건데, 공중파가 편당 4억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예산이 아니라 위상의 추락이다. 10년 전만 해도 공중파가 최고의 무대였다. 지금은 넷플릭스에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왜 이렇게 벌어졌는가. 공중파를 보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40대 이상은 TV 광고가 먹힌다. 그러나 40대 아래로 내려가면 안 먹힌다. 광고가 안 먹히니 광고비가 안 들어오고, 광고비가 안 들어오니 제작비가 줄고, 제작비가 줄면 작가와 배우가 넷플릭스로 간다. 미디어의 노화⁷라는 현상이다. 매체 자체가 늙어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습관이 있다. 무언가 만들어지면 자꾸 그것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 습관이다. 그러나 절차적 생성 시스템을 만드는 이유는 필요한 만큼 유니크하게 찍어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의 소비를 수급해 주는 것이다.


[소결]

콘텐츠가 소비자에게 선택받으려면 신용이 필요하며, 신용은 익숙함과 장르적 약속에서 온다.

용건 있는 관계에서 용건 없는 관계로의 전환이 콘텐츠 소비의 핵심 경로이다.

TV 산업의 위계가 숫자로 증명하듯, 대량 생산 시대의 소비 논리는 콘텐츠 포화 시대에 작동하지 않으며, 커뮤니티 기반의 신용 구조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브랜드와 세계관 — 익숙함이 만드는 신뢰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체인 호텔이 왜 대박을 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힐튼이라는 간판을 보는 순간, 안 가봤는데도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디자인을 안다. 스타벅스 간판을 이국적인 거리에서 발견하면 그곳이 대사관 같은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문화, 내가 알고 있는 맛, 내가 알고 있는 디자인과 음악이 존재하는 곳이다. 현지 가격보다 아무리 비싸도 상관없다. 5달러짜리 커피를 마셔야 한다. 그래야 안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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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제웍스 CEO. 배니월드,BTS월드, 세계관제작자. '현명한NFT투자자' 저자. 본질은 환상문학-RPG-PC-모바일-쇼엔터-시네마틱-게임-문화를 바라보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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