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허즈번(허즈번드의 줄임말)이 내게 물었다.
인공지능 개발 공부를 더 하고싶어. 영국 석사가 일년이라던데, 어떻게 생각해?
허즈번은 사실 문과생이었다. 법학을 전공하고 모 기업의 기획실에서 일을 하던 그는 이십대 후반에 진로를 바꿨다. 기획자에서 개발자로. 처음에 진로를 바꾸던 때 그도 나도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별 일이 없다면 백살까지 살아야하는데 젊은 때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간 ‘국비 지원 빅데이터 과정'을 수료했다. 공부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허즈번이 적성에 맞는 일을 잘 찾은 것 같아 진심으로 기뻤다.
그 과정을 수료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영국에 석사를 하러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물론 이 분야와 전공도 다르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젠가 남편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영국으로 가자니? 약간 놀랐다.
"서..석사? 여..영국? 석사는 왜 해야되고 갑자기 영국?"
매사에 따져 묻기를 잘하는 와이프의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이 허즈번은 곧잘 대답을 이어갔다. 마치 준비된 면접 답변처럼.
"아니..이제 이 분야에서 쭉 일을 하고 싶고 전문가가 되려면 학문적인 공부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아. 어짜피 할거라면 빨리 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리고 너도 나도 대학교 때 교환학생 한 번 안갔다와서 늘 아쉬워했잖아. 아직 아이가 없으니까, 지금이 적기 같아서. 아 그리고 영국은 석사가 1년이야. 2년이면 부담스러운데 1년이면 다녀올 만 한 것 같아서."
잠시 생각해본 후 나는 대답했다.
"그래 그럼. 영국 석사 어떻게 가는건데? 일단 알아봐."
나의 스피디한 대답에 남편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갑자기 들은 이야기에 충동적으로 답한 것 같아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사실 이 의사결정 속도는 5년 연애+2년 결혼생활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였다. 우리 두 사람이 살면서 뭐가 아쉬웠고, 어떻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왔으며 어떤 선택을 내려왔는지 이미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결단하는데 오랜 시간과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저렇게 이야기 하고나서 우리는 지원하고 싶은 학교와 합격 가능성, 생활에 필요한 비용 등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조사하고 다시 한번 숙고한 후 최종 결정을 내렸다.
우리의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와이프분이 대단하시네, 남편 위해서 영국까지 같이 가고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들을때마다 이렇게 답변하고는 했다.
"호호호..아니에요. 제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에요."
그 말은 그냥 형식적인 말이 아니었다. 사실, 아니, 진실이었다,
나 역시 모 기업의 기획실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직장 생활 만 4년이 지난 때였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후로 대학교 학사 학위를 한번 딸 만큼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대학교는 방학이라도 있지, 직장 생활 4년 하는 동안에는 매년 주어진 연차는 열 몇일 정도. 그것으로 내 영혼에 연료를 채우기에 충분치 않았다. 나 역시 휴식과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껴진 때였다. 그런데 딱 그 시기에 허즈번이 ‘해외 일년살기'를 제안하니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물론 ‘해외 일년살기'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삼십대 부부라는 새로운 세계에 접어들면서 ‘삶의 모드 전환'을 한번 쯤 해보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어려움도 다 감수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그래도 가장 걱정됐던 것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영국에 가 있는 동안 일년치 월급은 포기해야 하고, 가서도 생활비가 필요하다. 우리의 가정 경제는 영국 생활을 준비하는 동안, 그 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리고 다녀와서도 한 동안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두 번째 걱정은 ‘나의 회사'였다. 육아휴직, 병가휴직은 법적으로 보장되는 것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청원휴직'을 신청해야 하는 것인데, 사실 청원휴직은 회사가 승인해줄 의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쉽게 말해 나는 ‘직장'을 걸고 영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직장'을 걸만큼 ‘삶의 모드 전환’이 절실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가능하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문과에서 이과로, 기획자에서 개발자로 아예 필드를 바꾼 남편과 달리 나는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인더스트리가 좋았다. 나는 생활용품 소비재회사에 다닌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에 가면, 그 곳에서 취업 준비를 해야하지 않나. 영국에서는 그런 걱정 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채우는 시간이길 바랬다.
오빠가 학교에서 오퍼를 받고, 영국에 가기로 최종 결정을 한 후 떨리는 마음을 안고 회사에 가서 부서장님께 먼저 말씀을 드렸다.
"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남편이 영국에 석사를 하러 가게 되었는데, 저도 같이 가야할 것 같습니다. 5개월 뒤에 출국할거같아요. 요즘 일도 많은데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해요."
약간 놀라신 목소리로, ‘회사 그만둔다고?’ 라고 말씀하셨다.
"아..아뇨..혹시 휴직할 수 있을까요?"
부서장님은 더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본인의 필요에 의해 외국에 가는거면서 너무 당당하게 휴직할 수 있겠냐고 묻는데,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실장님은 그런 선례가 있기도 했으나 최종 결정은 사장님께서 하셔야 한다고 했다.
얼마 후에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회사에서는 직원의 가족이 해외를 가야하는 경우가 생기면 해당 직원의 휴직을 허락하는 선례가 있었다. 그런 선례가 있었기에 나도 용기를 내서 청원휴직을 신청하긴 했지만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생각을, 그리고 회사에 돌아오고 싶은 이유를 정확히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년 후에 회사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영어도 늘리고 플라워 디자인도 배우고 영국에 가든이 유명한데 이곳 저곳 열심히 다녀보려고 합니다. 회사에 돌아와서는 홈 가드닝 섹션에서 엠디로 일하고 싶습니다.
말해 놓고도 너무 떨렸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좋은 것 많이 보고 배워오라고 격려해주셨고 결과적으로, 청원휴가 1년 승인을 받았다. 참 감사한 일이다. 처음에 오빠가 ‘영국에서 석사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마디 꺼낸 것이, 차근차근 유학을 계획하게 되고, 나까지도 직장과 휴직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든 끝에 드디어 결론이 났다.
‘오빠, 나 청원휴직 승인 받았어. 이제 우리 진짜 영국 가는거야!’
신혼여행차 영국에 갔을 때까지만해도 우리가 그곳에 공부를 하러 다시 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여행지일줄만 알았는데...
정말 삶은 어디로 어떻게 흐를 줄 모른다. 영국에서 우리는 어떤 시간을 보낼까?
영국에서 다시 돌아올 때 우리는 어떤 추억을 안고 올까?
어디로 어떻게 흐를줄 모르는게 인생이지만 매순간 즐거운 도전과 모험을 함께하는 나의 짝꿍, 허즈번이 있어서 행복하다. 우리, 잘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