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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Oct 06. 2020

마당 탄생

10월의 어느 멋진 날

옛집 멸실을 준비하면서 마당에 잔디가 사라진 날이 2월 23일

기초시작한 날이 3월 25일

착공한 날이 4월 7일

시공팀이 공식철수한 날이 7월 29일

이삿짐 들어온 날이 8월 11일

그리고, 오늘은 10월 6일


긴 시간동안 참 여러분들께서 바쁘게 움직이신 덕에 옛집이 사라지고, 새집이 생기고 기다리고 기다려서 10월의 첫 날, 아늑하게 나무담장이 둘러싼 초록의 잔디 마당이 생겼습니다.


9월 29일

달력에 빨간날이 시작되기 전날 곳곳에서 자재들이 들어왔어요.

디딤석, 파쇄석, 나무들이 차례로 들어와서 마당에 내렸습니다.

9월 30일

추석을 흙바닥에서 보낼 수 없지 않겠냐며, 저희집 기초공사때부터 와주셨던 사장님이 대식구와 함께 오셔서 남은 배수로 공사와 마당 디딤석과 잔디를 깔아주셨어요. 군데군데 보면서 물길이 잘 나가도록 길도 잡고, 파쇄석 밑에는 제초매트도 꼼꼼히 깔면서 작업하시다보니 어느 새 해질 무렵이 되었지요. 저도 열심히 쫒아다니면서 음료도 드리고, 간식도 드리고, 어디에 뭘 하고 싶은지 디딤석은 어떻게 놓고 싶은지를 말씀드렸더니 저녁엔 녹초가 되었습니다. 땅속부터 마당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한 사장님께 드릴 것이라고는 정성들인 식사뿐이라서 그날도 엄마랑 이모가 한상 차리면서 고생하셨지요.


종일 정말 바쁘게 움직여서 드디어 오후 6시쯤이 되자 잔디 마당이 생겼고 사장님께서는 추석 잘 보내고 진짜 마무리할 때 다시 만나자는 말씀을 남기시고, 저는 동네 지나실 때 가끔 불쑥 차 한 잔 드시러 꼭 오시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어요. .. ........ ... 그리고, 그날 완료된 사진은 없네요. (ㅠㅠ)

시작 전, 지긋지긋했지만 다시 볼 일없는 풍경을 찍어두었어요. (안녕...)
종일 쉴새없이 움직였는데, 사진은 달랑 이것 뿐

10월 1일

아침 일찍 반가운 분들이 오시기 시작했어요. 우리집에 전세계의 기운을 모아주었던 분은 도착해서 3분만에 솔방울과 개나리의 아이돌이 되어서 커피 한 잔을 했고, 집엔 처음 오신 분께서는 하필 고양이를 키우시는 바람에 개들이 너무 짖어 대서 만 하루동안 민망했습니다. 그리고, 솔방울이 너무 사랑하는 분이 짠- 하고 나타나셨어요. 오자마자 아침 이슬이 다 마르기도 전에 다들 바쁘십니다. 저는... 안 바빴는데, 왜 사진이 없을까요?

여튼 어마어마한 기둥 기초를 파고 파고 또 파고, 시멘트를 붓고 붓고 또 붓고 그거 말고도 이래저래 바쁜 하루를 보내고 엄마랑 이모가 잔뜩 채워놓고 간 냉장고 파먹기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당에 불을 피우고 달놀이를 했지요. 소원은 빌었던가...?

등에서 하트나오는 솔방울과 그날 찍은 보름달과 마당에서 한 추석잔치


10월 2일 

드디어 집에 담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집앞에 쌓여있던 디딤석들과 파쇄석 더미도 바닥에 예쁘게 자리를 잡았어요. 그거 원래 제가 한달쯤 걸려 슬슬 치울 예정이었는데... 1시간만에 싹 제자리에 놔주셨지요. 근데 사진이 남은 것이 없어요. 이상해요. 종일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백장은 찍을 줄 알았거든요. 왤까요. 


10월 3일

구들방 옆엔 두달만에 수돗가가 생겼고, 입구에 있던 쓰레기가 사라졌고, 담장이 다 생겼어요. 그리고 아니나 다들까 사진은 없습니다. 집 지을 때도 그랬거든요. 현장 가면 사진 많이 찍어와야지-! 하고는 늘 두 세장이 다 였지요. 사실, 핸드폰이 손에 없는 시간이 더 많아서... 다음에는 목에 걸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10월 4일

예정보다 하루가 더 길어졌습니다. 연휴인데 하루도 못 쉬셔서 죄송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오늘도 종일 바쁘십니다. 담장은 예쁜 색으로 변했고, 보일러실엔 발판이 생겨서 이제 더이상 뛰어내리지 않아도 되고, 남은 자재로 걸터앉을 곳을 만들어 주셔서 그날 이후 가끔씩 가서 앉아 바람을 쐽니다. 이제 아셨겠지만 사진이 없네요.

아쉽게 작별인사를 한 날은 노을이 정말 멋졌어요. 아직 해주셔야 할 일이 남아서 곧 뵙겠지만, 늘 헤어짐은 아쉽습니다. 이제 끝나면, 구석 구석 예쁘게 가꿔놓고 일 말고 놀러오시라고 하려고요. 






그래서, 오늘의 집은 이렇게 예뻐졌습니다.

오랜만에 정면에서 사진을 찍어 봤어요. 바닥에 있는 것들만 제자리로 가면 정말 끝나네요. 널부러져있는 것들은 눈감아주세요. 아직 공사 중입니다! (ㅎㅎ)


감나무 근처에 만들어주신 곳에 앉아서 집을 바라보면 이런 풍경이에요. 간이의자는 다음에 데크 칠하는 날 함께 칠하기로 했어요. 저기 잠시 앉아서 맞는 가을 바람은 맛이 다릅니다.


힘껏 만들어주신 수돗가는 매끈하고 물 잘빠지는 곳이 되었고요. 아직 배수구망을 못 사서 나뭇잎 살짝 치우고 오늘 물 한 번 틀어봤습니다.


아담하고 예쁜 담장 아래엔 예쁜 꽃들이 가득하게 될꺼에요. 세상에 없는 꽃 욕심쟁이였는데, 이 정갈한 모습도 좋아서 욕심을 버리고 있습니다. 


담인 줄 알았쥬? 문이에요~ 담장 어딘가에 히든도어가 있습니다. (ㅋㅋ)


뒷마당에서 옆마당으로 넘어가는 공간이에요. 참 좋아하는 곳인데, 그동안 악어떼 나올만한 늪이 되어 있어서 볼 때마다 속상했던 곳이지요. 미술관옆 한적한 길의 느낌을 내고 싶었는데, 팀장님이 딱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집 옆에 빨랫대 만들 자리를 보면서 딱 그 말씀을 하셨어요. (ㅎㅎ) 이런 거 잘 맞아서 집짓는 내내 좋았나봅니다.



흰색 이불을 햇빛에 말려서 바스락 거리게 만드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에겐 이런 빨랫대가 로망이지요. 이불 걸어놓고 팡팡 두들겨서 먼지도 날리고, 하얀 이불을 햇빛에 바싹 말리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사실... 안되면 말고의 심정으로 슬쩍 말씀드려봤는데, 말만 하면 이뤄져서 도깨비 방망이인 줄...


구들방 뒷쪽, 집 입구는 폐기물과 자재들로 가득했던 공간이었어요. 폐기물이 사라진 김에 마지막 연휴였던 월요일에 엄마와 둘이 종일 힘써 만든 마지막 마당입니다. 여기가 말끔해지니 끝나는 것이 실감나요.


그리고, 마당의 디딤석은 나무 모양이에요. 작업해주시는 분들이 왜 이렇게 삐뚜루하게 대각으로 돌을 놓는지 궁금해하셨는데, 마당에 그림을 하나 그려놨습니다. 며칠 써보니... 가로로 돌을 몇 개 더놔야 편해질 듯해서 언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땅에도 나무 한그루를 심었어요.


우리집은 나무집이고, 저는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되고 싶거든요.


이제 곧 정원사의 시간이 찾아올꺼에요. 초보 정원생활자는 가을에도 봄에도 노랑 수레를 열심히 끌고 다니면서 정원을 가꿀 예정입니다. 즐거운 나의 집에서의 나의 시간은 이제부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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