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 미래가 있을까 싶은 지금 보기 좋은 SF 블랙코미디
<갈 때까지 가는 미래>
변화하는 시대상과 사 남매 가족의 역사가 교차되면서, 여러 세대와 관계에서 펼쳐지는 연결과 갈등을 다채롭고 실감 나게 보여준다. 컴퓨터에 뇌를 업로드하는 트랜스 휴먼, 미중 핵전쟁, 인기를 얻는 극우파 정치인, 비인간적인 난민 탄압… 미래의 기술과 정치에 대한 상상은 SF에서 자주 다루는 익숙한 소재도 있었지만, 피부에 와 닿는 묘사와 몰입감 있는 연출 덕분에 얼마 멀지 않은 2034년까지 이 세계가 6개의 에피소드만으로 과연 어디까지 달려갈지 궁금증과 조바심을 자아낸다. 각 화의 후반부에 긴박한 배경음악과 빠른 화면 전환으로, 각자의 앞에 닥친 미래를 마주하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다 보면 인류가 마치 파멸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십 년 만에 격변해버린 지구의 강산>
빙하가 다 녹았으며, 쓰나미 없던 세상을 떠올리지 못한다. 10년이 가는 핸드폰 배터리 기술이 무색하게도 정전이 잦아서 데이터를 날리는 일이 빈번해지자 종이 문서로 회귀한다. 미래에 대한 찬란한 환상이 다 실현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곳은 신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이다. 알칼리 가수분해로 신체를 용해하는 친환경적인 장례 형태, 끈만 당기면 알맞은 온도로 데워지는 비건 간편식 ‘골디락스’, 비건을 넘어 아예 생명체인 적이 없었던 음식, 노인의 시력을 되돌리는 의료 신기술 등. 미래엔 이 기술들이 없는 삶을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미래엔 진정으로 윤리적이며 친환경적인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할지 기대된다. 한편 낯선 미래 기술들 앞에서 과거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형체 없는 ai에 적응한 가족들과 달리 정든 구식 ai 기계를 고쳐 쓰는 할머니처럼 옛날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애증 하게 되는 다양한 인간상>
중년의 사 남매가 매년 할머니의 집에 모인 장면을 중심으로 1년 간의 흐름을 보여주지만 따뜻한 가족 드라마는 아니다. 우크라이나 난민 빅토르와 영국에서 함께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놓는 대니얼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족들이 둘을 응원하다가도 뒤로는 빅토르 얘기에 지겨워하는 모습을 그린다. 할머니의 인종차별적 농담이 살짝 거슬리는 정도라면 스테판은 다양한 행동으로 분노를 자아낸다. 철없던 베서니가 성장하는 모습과 이디스가 불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며 버텨보았다.
<알고 봐도 현혹되는 정치인 캐릭터>
엠마 톰슨이 표현하는 광기 어린 캐릭터 비비언 룩은 역사 속에도 디스토피아 작품에도 항상 등장하는 전형적인 정치인 캐릭터이지만, 모두가 쓸려가고 있을 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이 답답한 세계에서 혼자 확신을 가진 인물이라 눈길이 간다. 도덕과 의무를 내버린 비브의 발언들은 거침없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제3세계의 일에 대해 ‘I don’t give a shit!’이라 일축하고 투표를 IQ 70 이상으로 제한하자며, 사람들의 감춰둔 욕망을 저격한다.
비비언 룩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말하는 대사는 과연 이렇게까지 될까 싶게 파국으로 치닫는 시나리오에 개연성을 부여해준다. 비비언은 보어전쟁에서 수용소를 비울 방법은 질병이라는 자연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방임이라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며, 이건 영국의 전쟁영웅 키치너의 방법이라 덧붙인다.
<이 세계의 미래와 마주하기>
골 때리는 묵직한 맛이 역시 디스토피아 맛집 영국의 작품다운데, <닥터 후>나 <블랙미러>의 다양한 미래들이 남의 일 같다면 <Years&Years>가 그려내는 미래는 코앞에 다가온 것만 같다. 휘몰아치는 전개 속에 디테일한 아이디어들이 밀려들어서 뭉크의 절규 같은 자세로 보았다. <Years&Years>가 그려내는 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시청했지만, 이 근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너무 사실적이라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거리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현실이 상상을 뛰어넘는 2020년의 혼란 속에서 이 작품을 보니 과연 세상이 어떻게 될까 감도 안 잡히지만, 대책 없는 낙관과 비관 대신에 보다 차가운 정신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서 도래할 미래를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