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요즘엔 현실을 잊게 만드는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기 위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누구도 정해진 시나리오에 맞춰 정확히 편집된 연출처럼 살지는 못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영화 속 세상은 좋아보인다. 그래서 영화에 관한 영화인, 메타시네마 중에서도 영화와 현실을 오가는 영화들이 더 재밌고 아련하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 <셜록 주니어>의 주인공처럼, 살고 있는 삶과 바라는 삶이 달라서일까. <셜록 주니어>의 도입부에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려고 하거나, 두 가지 일을 모두 잘하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속담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작은 마을 영화관의 영사 기사가 직업인데, 영화관을 관리하는 일은 뒷전이고 탐정책에 몰두한다. 실제로는 탐정과 거리가 멀어 오히려 도둑으로 누명을 써버리는 신세이지만, 의지만은 아주 확고하여 영화 속 사건을 해결하려고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버리기까지 한다. 영화 속에서 셜록 주니어로 활동하는데, 어수룩함이 어디 가지는 않지만 나름의 기지를 발휘하여 악당들을 물리친다. 꿈꾸다 돌아온 현실에서 누명을 벗긴 건 그의 연인이었다만, 영화처럼 삶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감독 때문에 길티플레저처럼 본) 우디 앨런의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는 영화 속 인물이 현실로 튀어나온다. 세실리아는 영화를 떠올리느라 실수를 연발해서 직업을 잃고나서도 극장에 가서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보고 또 본다. N차 관람 중 주인공 톰 벡스터와 눈이 마주치는데, 그가 스크린에서 걸어나오며 여러 번 그녀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환상으로 빚어진 인물답게 로맨틱하고 정의롭지만, 현실에선 돈이 없고 반칙에 당하는 무능력한 모습을 보인다. 한편 톰이 떠나자 영화 속 세계는 이야기가 전개될 수 없어 엉망이 된다. 톰을 연기한 실제 배우 길 쉐퍼드가 자신의 커리어가 망가질까봐 걱정하며 톰을 찾아나서다 세실리아를 만나고 자신의 연기를 인정해주는 모습에 사랑에 빠진다. 톰과 길은 세실리아에게 각자 자신의 매력을 어필한다. 자신은 완벽하고 키스도 잘한다는 톰 vs 자기가 진짜라며 같이 할리우드로 가자는 길. 세실리아는 길을 선택한다. 톰은 쓸쓸히 영화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세실리아는 길이 혼자 할리우드로 가버린 것을 알게 된다. 다시 극장에 들어온 세실리아가 다른 영화를 보며 이번에도 빠져버린 표정으로 끝난다. 현실과 영화가 만난 한바탕의 소동이 즐거운 작품이었지만, 현실을 잊은 채 영화에 몰두하는 세실리아의 모습이 남일같지 않아서 복잡한 심겸이 되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