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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 Jul 19. 2021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집에 틀어박힌지 오래되어  이상은 집이 홈카페나 홈씨어터라는 자기 최면이 먹히지 않는다면 흡인력 있는 작품이 절실하다. 발붙인 현실을 잠시 잊고 다른 세계로 떠나길 할 때, 이야기 구조가 첩첩이 짜인 극중극 형식의 작품을 추천한다.   빠져들면 환상적인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각각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야기를 둘러싼 정성스러운 포장을 푸르다보면, 이야기를 짓는 이들의 진심에 미소가 지어진다.


반전 매력의 모험 이야기, <프린세스 브라이드>



제목 탓에 단순한 공주 이야기라고 속단하게 되기 쉽지만, 1987년 개봉해 영화광들 사이에서 B급 영화의 전설로 입소문을 탄 영화답게 오랜 세월이 지나고 보아도 코믹하고 신선하다. 영화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프린세스 브라이드’라는 책을 읽어주는 내용이 책 속의 이야기와 액자식으로 그려진다. 손주는 회의적인 태도로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지만, 이야기의 매력에 이내 빠져들어버리고 주도권은 할아버지에게 돌아간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익숙한 모험물 장르의 문법을 유머러스하게 비튼다. 주인공이 죽게 되자 무슨 이런 책이 있냐며 불평하는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심각하게 생각 말라며 그만 읽겠다고 하고, 손자가 더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도 손자의 반응처럼 뒷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지는데,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펼치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가 번번이 예상을 빗나가기 때문이다. 주특기를 발휘할 땐 대단하다가도 약간씩 모자라 보이는 인물들이 힘을 합쳐서 명예, 의리, 사랑을 과연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기대하며 응원하게 된다. 악당이 승리하려는 대목에서 할아버지는 때때로 삶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야기 속에서는 인과응보가 실현되고 주인공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동심으로 집중하게 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황과 이야기, 그 두 가지를 재치있게 엮어내는 롭 라이너 감독의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의 원작은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골드먼이 가장 아끼는 작품인데, 이 책을 둘러싼 뒷이야기도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윌리엄 골드먼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읽어주던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 책 덕분에 작가가 되었지만, 어른이 되어 찾아보니 아버지가 르네상스 시대 작가 S. 모겐스턴의 난해한 원전에서 재밌는 부분만 편집해서 들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윌리엄 골드먼은 자신의 소설이 아버지가 그랬듯 자신이 재미있는 부분만 편집한 버전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허구로 S. 모겐스턴이란 작가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속은 걸 알게 되면 더 즐거운 트롱프뢰유의 트릭처럼, 충실한 설정 속으로 초대하는 이야기꾼의 재담에 기꺼이 모른 척 속고 싶어진다.



삶과 이야기가 조우하는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더 폴>은 영상미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로 손꼽히는데, 황홀한 장면들이 CG가 아닌 실제 로케이션에서의 촬영이라는 사실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환상적인 미장센으로 표현된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물은 부상으로 입원한 스턴트맨 로이. 그가 천진난만한 소녀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숨은 목적이 있다. 신비한 동화로 시작한 이야기에는 로이의 절망스러운 마음이 녹아들고, 현실과 환상은 얽히고 뒤섞인다.



타셍 싱 감독은 1981년 개봉한 불가리아 영화 <Yo Ho Ho>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이야기 구조와 유사한 것을 발견한다. 배우가 스토리텔링을 사용하여 어린이를 조종하는 내용이 상업 매체에서 작업하는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스토리를 제안할 때 상대의 관심을 붙들기 위해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듣는 이가 원하는 내용을 덧붙여 이야기했던 현실적인 경험은 <더 폴>의 스토리 구조에도 반영된다. 알렉산드리아가 로이의 이야기에 개입하자, 비극으로 치닫던 이야기의 방향을 틀게 된다. 결국 이야기를 통해 로이 역시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도 창작 방식이 보태지며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알렉산드리아를 연기한 아역 배우 카틴카 언타루의 반응을 통해 일부 대사와 장면이 바뀌기도 했다. 로이 역의 배우 리 페이스가 종이에 "morphine"이라는 단어를 쓸 때, 그는 카틴카가 "3"이라고 생각한 방식으로 문자 "e"를 쓰고 발음하였고, 영화의 제작진은 여기서 알렉산드리아가 오해로 세 개의 모르핀 알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리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배우와 캐릭터가 섞이며, 영화는 더욱 복잡다단한 매력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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