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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zi Aug 13. 2020

광고와 나, 이 정도면 운명이었을까?

광고가 하고 싶다면 춤을 춰요, 애지메랄다

나는 광고회사에 다닌다. 벌써 9년째, 인턴기간까지 계산하면 햇수로 딱 10년이 되었다. 대학시절 연합광고동아리 생활을 하며 광고라는 일에 인생을 헌납한 시간까지 고려하면, 거의 15년에 가까운 시간을 올곧게 광고에 몰두하며 살아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스스로 "나의 장래희망은 광고인"이라고 이야기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처음 광고란 업이 내 인생에 들어온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CA수업으로 'NIE/광고제작반'을 수강하면 서다. 그것 또한 광고에 대한 갈망 때문이 아니었다. 2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댄스반에 들어가서 최신 유행하는 춤이나 배우며 놀고 싶었는데, 인기가 많은 반이었기에 연속으로 2년을 수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남아있던 과목 중 경쟁률이 비교적 치열하지 않았던 반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들어간 광고제작반은 딱 내가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신문을 많이 봐야 하는 수업 치고는 재밌었지만, 역시 춤을 추는 것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당시 강사였던 대학생 선생님은 내게 광고 제작에 대한 감각이 있다며 열심히 칭찬을 해주었다. 집에서도 받지 못한 칭찬을 받으니 나름 뿌듯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업 광고인을 결심할 만큼의 동기부여가 되었던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CA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던 내가 다시 춤의 길(...광고가 아니고?)로 들어선 것은 대학교 때였다. 고등학교 때도 댄스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왠지 그곳은 인싸들이나 가는 곳처럼 느껴졌다. 춤은 좋아하지만 천성적으로 내향적인 나는 댄스부 대신 컴퓨터실 청소동아리 또는 PC방 동아리(=컴퓨터동아리)와 낮잠 동아리(=명시 감상반)에서 춤에 대한 강한 열정을 숨긴 채 살았다.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동기와 함께 교내 댄스동아리에 입단했다. JYP를 만난 유재석처럼 그간 맺힌 댄스의 한을 원 없이 풀었지만 그만큼 빨리 배웠던 게 술이었다. 하루 수업이 끝나면 매일 동아리방에서 3시간 동안 춤추고, 3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 원래 나는 술을 한 잔만 마셔도 빨개지는 체질이었는데, 젊은 간에 매일 술을 들이붓고 또 매일 땀 흘리며 술독을 해소하다 보니 어느샌가부터는 그냥 술이 잘 받는 체질로 바뀌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술도 춤도 다 좋았지만, 젊은 꼰대들의 술 문화 만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길로 한 학기만에 댄스동아리를 그만두고, 이듬해에 연합광고동아리에 지원했다.


그렇다. 또 춤 다음으로 광고를 선택했다. 물론 이번엔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의 향수가 갑자기 떠올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농구가 하고싶어서 안선생님께 돌아간 강백호처럼 갑자기 광고가 '미친듯이 하고 싶어서' 연합광고동아리에 지원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고등학교 시절 꿈이었던 영상 디자이너(내지는 뮤직비디오 감독)의 꿈이 입시 실패로 좌절되었기 때문에, '영상'에 대한 나의 학문적 갈증을 해소하고 싶어서 '영상부'가 있는 광고동아리에 들어간 것뿐이었다. (물론 이때, 동아리에 합격하기 위해 굳이 '중학교 광고제작반 출신'임을 강조했다. 역시 자소서란 팩트를 기반으로 소설을 써야 합격하는 것...) 


어렵게 연합광고동아리에 합격했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광고동아리에서 영상에 대해 이렇다 할만한 걸 배우긴 어려웠다. 열정페이로 기업의 의뢰를 받고 가끔 UCC 동영상을 몇 편 찍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부조리는 신입들의 탈퇴러쉬로 이어졌다. 광고동아리 활동이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서 일찍이 탈퇴를 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초반에 신입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친목을 빙자한 빡센 밤샘 문화였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고 들었음) 라떼는 매주 동아리 모임이 있는 토요일이면, 다음날 아침 첫 차가 다닐 때까지 마시는 게 기본이었다. 그 때문에 같이 동아리에 입단한 동기들의 반이 초반에 줄줄이 탈퇴했다. 동아리에 더 이상 친한 사람이 남지 않게 되자(뭐, 원래도 친한 사람은 없었지만...), 나도 탈퇴러쉬를 감행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운명은 이미 나를 광고계로 점찍어 두고 있는 듯했다. 동아리에서 단체 소풍을 가서 한가롭게 '수건돌리기'를 하던 어느 날, 당연히 아무도 나에게 수건을 놓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멍하니 앉아 탈퇴각을 재고 있던 나는 그만 벌칙에 걸려버렸다. 딱히 뭘 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댄스동아리에서 배웠던 춤을 췄고, 그렇게 강제로 동아리 인싸들의 눈에 들게 되었다. 그 길로 자연스럽게 동아리 인싸(라고 쓰고 노예라고 읽는다) 대열에 합류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동아리에 나의 무덤을 만들고, 그 옆에서 나 자신을 위한 관짝춤을 추고 있었다. 


이것이, 광고와 나의 질긴 인연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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