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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육오늘 Mar 07. 2024

체력이 곧 여행력

#13_이탈리아 피렌체 4박 5일

피렌체에서의 르네상스 만나기


아침이지만 어두운 날씨.

비가 내리는 흐린 아침이다. 이제는 비 오는 유럽의 가을 날씨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전날 온라인으로 구입한 블루넬레스키 패스권을 사용하기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두오모 성당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서부터 우산을 쓰고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방 안에서 뒹굴고 싶은 으스스한 날씨라 평소였다면 부지런 떨며 나가지 않았을 텐데.. 시간이 한정적인 나 같은 여행객들에게 날씨는 선택지가 못 되다. 이른 아침부터 피렌체의 랜드마크라는 유명세에 맞게 여러 단체 관람객들로 주변이 분주하다. 우비를 입고 비를 흠뻑 맞으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남자 가이드를 보니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다. 빗소리 때문에 설명이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은데 가이드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미간 찌푸리며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여 인상 깊다. 


내부가 붐비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직원이 인원을 제한하며 사람들을 조금씩 입장시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좌측에 어둡고 좁은 계단이 보였다. 463개의 계단을 올라갈 생각 하니 시작부터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다. 유럽은 왜 이렇게 계단이 많은 건지.. 유럽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미리미리 체력을 길러 왔어야 했나 보다. 파리 개선문의 284개 계단을 올라갈 때만 해도 현기증이 나서 혼났는데 그보다 더 올라가야 한다니 자발적으로 왔음에도 한숨이 나왔다. 


확실히 유럽여행하면서 많이 걸어 다녔더니 체력이 좋아졌는지 처음 만보를 찍었을 때만 해도 다리가 며칠 동안 후들거렸는데 이번에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심장이 터질듯한 한계치에 다다를 때쯤 전망을 볼 수 있게 되어있어 조금씩 쉬면서 올라갔던 게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머리에 생각을 비우고 수행하듯이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의 끝자락에서 신을 만난 듯한 환상을 느낄 수 있었다. 



"최후의 심판_천당과 지옥"



눈앞에 펼쳐진 적나라한 모습의 거대한 천장화를 보며 천당과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대조적인 몸짓과 표정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신에 대한 믿음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이곳에 가장 적절한 그림일 것이다. 천주교인이지만 (종교인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마지막 미사 참여는 십여 년도 지났다.) 사후세계에 대한 의문이 있는 사람으로서 고통 속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리는 듯한 그림 속 사람들의 적나라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사뭇 '천당과 지옥이 진짜로 존재한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돔의 사이즈가 워낙 크다 보니 그림이 마무리되기까지 여러 명의 화가가 투입되어 그려졌다고 한다. 서로 다른 화풍이 섞이는 바람에 전체적인 조화와 연결성이 아쉽다고 평가된다고 하지만 적어도 나를 비롯해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경이로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게 느껴졌다.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뒷사람들을 위해 "Keep going"을 외치는 스태프들의 지시에 재빠르게 넓은 원형길을 한 바퀴 돈다.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안개비로 변한 상태였다. 시내 전경이 안개로 뒤덮여 내가 기대했던 탁 트인 시내 전경은 볼 수 없었지만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미묘한 정복감이 들었다. 어쩌면 다시 피렌체에 온다고 해도 다시 전망대에 오를 일은 없을 것 같아 열심히 안개비를 맞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힘들게 40여분을 올라간 것에 비해서 내려오는 데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성당 밖을 나서니 부르넬리스키가 자신인 업적인 돔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체력이 괜찮아서 바로 조토의 종탑으로 향했다. 돔보다는 낮아서 계단 오르는 데는 덜 힘들었고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언제 비가 왔는지 모르게 구름이 걷힌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파란 하늘을 보니 마음이 개운해진다. 가장 오고 싶었던 곳이 피렌체였고 그래서 유일하게 역사까지 찾아서 보고 온 곳이었다. 도시 전체가 역사와 예술로 뒤덮인 곳이라 길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인 곳이다. 맑은 날씨를 놓칠 수 없어 이 날 도시 구석구석 많이 걸어 다녔다. 

유럽 감성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감성이 충만해지는 느낌이다. 




늦어 버린 여행기 20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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