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 풍경이 환해지고 있다

말을 하는 것은 늘 부담스러웠다. 어린 시절, 말투가 ‘여자 같다’며 놀림받은 기억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씩씩하게 자기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면 ‘여자 같다’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놀릴 만한 이유인지를 따졌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습게도 이런 일들을 오랫동안 잊지 못해서, 발표를 최대한 피했고 꼭 해야만 할 경우엔 훌륭한 발표를 꾸리기보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지 않는데 큰 노력을 들였다.

이렇게 남들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려 왔음에도 라디오 출연 섭외를 승낙한 건, 오래전 친구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언젠가 그 친구와 택시를 탄 적이 있다. 내가 행선지를 이야기했더니, 기사님이 대뜸 ‘사내자식’ 목소리가 ‘계집애’ 같다며 웃었다. 인사보다도 먼저 훅 들어온 말에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있자니 친구가 두둔을 해주었다. 다정하고 친절한 거라고. 그래서 좋은 거라고. (이 글에 쓰기 민망할 정도로) 칭찬을 쏟아내자 기사님은 당황하셨고,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격주 목요일 새벽마다 라디오 방송을 하러 간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서 PD님이 이제 시작한다는 사인을 보내면 ‘목소리를 한 톤 낮춰 볼까?’ 생각하다가 그냥 평소처럼 DJ에게 인사를 건넨다. “2주 만에 뵈어요. 잘 지내셨죠?” 그 친구가 떠오르는 사연을 방송작가님이 프롬프터에 띄워 줄 때도 있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좋아요’ 같은. 문득 거리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그 택시에도 이 목소리가 가 닿고 있을지 궁금해하다 그만둔다. 창 밖 풍경이 환해지고 있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2년 8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