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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Mar 21. 2024

적당한 거리

자주 다니던 수목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물은 복수초 같았다.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진노랑상사화, 흰꽃을 피우는 희귀한 진달래, 종을 정의할 때 기준으로 삼은 기준표본목 문배나무 등. 특별한 사연과 가치를 가진 식물들이 많지만, 때론 몰려든 사람들에 줄까지 서서 구경하는 건 복수초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복수초 주변으로는 사람의 접근을 막는 울타리가 있다.


꽃 필 무렵의 복수초는 한 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닥에 뒹구는 낙엽 틈에 꽃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꽃을 보기 위해 쪼그려 앉은 채 울타리 창살 틈으로 팔을 뻗고, 카메라 배율을 최대한 당겨 사진을 찍는다. 꽃이 작고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휴대폰 카메라에 자세히 담기지 않는다. 괜히 이 울타리가 답답하고 성가시다.


울타리는 복수초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복수초는 한 해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어서, 겨우내 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앞다퉈 찾는다. 그런데 복수초는 크기가 작고 꽃이 노랗게 피기 전에는 눈에 띄지 않는 색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해가 없으면 꽃잎을 닫아버리기에 복수초 꽃을 찾아온 이들의 발치에 꺾이고 밟힌 꽃봉오리가 여럿이었을 것이다.


울타리 속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복수초가 피어난다. 가까이 보고 싶고 울타리는 답답하지만, 멀리서 복수초를 본다. 노란 꽃잎이 햇빛에 반짝인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3년 4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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