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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Apr 08. 2024

음식은 하나인데 설거지는 여러 개

잠에서 깨어나면 싱크대를 구경하러 주방으로 간다. 지난밤 거품을 내어 닦은 접시와 행주가 건조대에 가지런하고 텅 빈 싱크대는 물기 없이 깨끗하다. 기분이 좋다. 지금 충분히 봐두어야 한다. 밥상을 차리고 커피와 간식을 만들어야 하니, 텅 비고 말랐으며 가지런한 싱크대는 지금 뿐이니까.


설거지는 고약한 일이다. 만든 음식은 하나인데 생긴 설거지거리는 여러 개다. 달걀 프라이 하나를 해도 프라이팬에 뒤집개, 담아먹은 접시, 젓가락까지 네 개의 설거지감이 나오는 식이다. 기름 묻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담갔다간 다른 그릇까지 자국이 남으니 따로 닦아줘야 한다. 구멍이 송송 뚫린 찜기와 체망은 사이사이 때가 남으니 구석구석 손써야 하고, 수세미가 닿지 않는 깊은 물병은 병솔을 꺼내어 씻는다. 헹군 그릇은 카드로 성을 만들듯, 포개지 말고 공기가 통하도록 공간을 만들어가며 쌓아줘야 잘 마른다.


깨끗하게 텅 빈 싱크대가 왜 좋을까? 바삭하게 마른행주와 새것 같은 그릇, 물자국 없이 매끄러운 싱크대 표면을 만져볼 때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펼친 듯한 기분이 된다.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오늘 밤에도 설거지를 할 것이다. 내일 아침, 단정한 싱크대를 구경하고 싶으니까.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3년 9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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