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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Apr 11. 2024

조각 하늘

빨간 벽돌 다세대주택과 그 사이로 뻗은 전깃줄이 그곳에서 본 하늘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 틈새정원 설계 수업의 대상지였고, 내가 살던 동네였다. 이름은 청량했지만 시원하게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곳. 나무를 심는 대신 전봇대보다 높은 곳에 닿는 공중계단을 놓아 보았다. 손바닥만 한 공간은 예쁠 것도 없이 빙빙 도는 계단으로 가득 차버렸지만 그곳에 오르면 하늘을 통째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빨간 벽돌 속 작은 방에서 골목골목을 돌아 나와 학교 옥상에 올랐다. 시선 저 끝까지 고만고만한 집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있다. 그 위로 크고 작은 산이 섬처럼 떠있고 하늘은 까만 도자기같이 매끄러웠다. 먼 곳의 가로등은 공기에 일렁거렸으며 별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괜찮아졌다 싶을 때까지 이 풍경을 보고 돌아오곤 했는데 사실 뭐가 어떻게 괜찮은지는 몰랐다.


귀가 먹먹해지는 걸 모르는 호텔 엘리베이터는 침을 삼키지도 않고 층을 오른다. 모르는 사람들과 루프탑에서 내린다. 맥주를 계산하고 자리에 앉으니, 뜻밖에도 귀뚜라미가 운다. 21층 꼭대기에서 산딸나무와 억새가 살랑인다. 사람들은 작업실 보증금보다 무거운 가방을 끼고 있다. 작업실의 한 달보다 비싼 호텔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일까. 밤하늘을 보며 이상하게도 오래 전의 공중계단을 계속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3년 10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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