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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Sep 09. 2022

실패할 수 없는 카드들

파리 21/22 시즌 오픈

월간객석 2021 10월호에 실린 기사로, 파리 21/22 시즌 오픈에 대한 내용입니다. 객석에 실린 편집본에 원고 원문을 보강했습니다.  




어느새 프랑스 공연계는 위드 코로나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보건 패스(백신 접종 증명서, PCR 음성 검사서, 코로나19 완치 증명서 중 한 가지 제시)가 시행된 뒤 손님이 현저히 줄어든 레스토랑과 달리 공연장에는 시즌 공연에 목말랐던 관객들의 티켓팅이 이어진다. 아슬아슬하던 지난 시즌 오픈과 상반된 풍경이다. 그동안 몇 차례 봉쇄 이후 가까스로 20/21 시즌을 마친 저점과, 이후 마치 코로나19 전으로 돌아간 듯 활기찬 여름 페스티벌을 보낸 고점을 모두 찍어본 공연계. 감염병 대처도 이제 경험과 데이터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9월 파리의 시즌 오픈은 인상적이었다. 파리 오페라는 그간 연기됐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마리아 칼라스의 일곱 가지 죽음’을 드디어 상연했고, 9월 1일 필하모니 드 파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사상 첫 프랑스 연주(지휘 안드리스 넬손스)라는 역사적인 슬로건으로 개막했다. 파리 오케스트라는 16일 차기 음악 감독으로 내정된 클라우스 메켈레(Klaus Mäkelä)와 진은숙 ‘스피라(Spira) 프랑스 초연을 치렀다.


‘처음’이란 수식어가 줄줄이 붙던 9월에 비해 10월은 조금 다르다. 파리 오페라와 파리 오케스트라는 각각 ‘윌리 데커 연출’와 ‘메켈레의 쇼스타코비치’라는 실패할 수 없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윌리 데커 연출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 Opéra national de Paris

파리 오페라는 왜 윌리 데커를 사랑하나


파리 오페라는 윌리 데커(1950~)의 고전 작들로 중심을 잡는다. 상반기에는 데커가 연출한 모차르트 ‘티토 왕의 자비’을 올렸고, 10월에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공연된다. 파리 오페라와 데커는 다섯 작품을 함께 했고 그의 작품은 2~3년마다 파리 오페라에 오른다. 파리 오페라가 한결같이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징주의 연출의 대가 윌리 데커. 쾰른대에서 음악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80년대부터 미니멀하고 상징적인 연출을 선보여 왔다. 우리에겐 젊은 안나 네트렙코를 단번에 스타의 반열로 올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라 트라비아’(2005)로 잘 알려져 있다. 불필요한 장식을 버린 희고 좁은 반원형 무대에 붉은 소파와 커다란 시계만 둔 무대, 간명한 의상과 색상 선택. 가수의 연기와 줄거리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연출이다. 오페라의 멜로드라마적 진부함을 가장 경계하는 그는 이전까지 화려함에 치중하던 ‘라 트라비아타’의 판도를 바꾸었다.


10월에 오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역시 커다란 배라는 전형을 탈피한 연출을 선보인다. 무대는 푸른 조명 아래 거대한 문과 밧줄, 사선으로 놓인 긴 테이블로 함축된다. 거대한 배는 오로지 관객의 상상 속에서 펼쳐진다. 그는 말한다. “극장에서 우리는 실제 바다를 표현할 수 없다. 이 작품은 무한한 이미지와 이야기로 남아야 한다.”


화려한 무대 장치가 주목받던 1980~1990년대, 절제된 연출로 관객의 상상력을 열어준 데커. 그의 순도 높은 연출은 단기적인 성공과 실패로 따질 수밖에 없는 사실주의적, 초현실주의적 연출이 넘치는 지금 시대에 다시 한번 오페라 연출이 무엇인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다.



Klaus Mäkelä/Orchestre de Paris ⓒ MATHIAS BENGUIGUI


메켈레+쇼스타코비치=성공?

지난해 핀란드 출신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는 세간의 화두였다. 24세에 불과한 그가 파리 오케스트라의 차기 음악감독 (2022.9~)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당시 파리 오케스트라는 대니얼 하딩이 취임한 지 3년도 안 되어 퇴임하는 바람에 객원 지휘로 공백을 메우고 있었고, 대표 로랑 베일은 2019년 쇼스타코비치 5번으로 파리 오케스트라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던 메켈레를 점찍었다. 라디오 프랑스 필의 지휘자 미코 프랑크와 파리 오케스트라가 사랑해 마지않는 에사 페카 살로넨과 같은, 현재 프랑스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핀란드 지휘자들의 계보를 이을 다음 주자로 본 것이다.


큰 키에 언제나 꼭 맞는 수트와 단정하게 넘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는 젊은 지휘자. 연주자들을 하나하나 뚫어질 듯 쳐다보며 지휘하는 메켈레. 그는 12세란 이른 나이에 지휘를 시작해 2017년 21세에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를 지휘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이곳 객원 지휘자(2018)를 꿰차더니 오슬로 필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2019)되고, 쉴 틈 없이 로열콘세르트헤보우(RCO)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유수 오케스트라 데뷔를 치른 뒤 데카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 데카와 지휘자의 독점 계약은 1978년의 리카르도 샤이 이후 40년 만이다.


Klaus Mäkelä ⓒ Orchestre de Paris


메켈레는 이번 시즌 음악 고문의 역할로 매달 파리 오케스트라를 찾는다. 이달에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와 메시앙의 ‘빛나는 무덤’,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르노 카퓌송)을 지휘한다. 그동안 모차르트부터 뒤티외(1916~2013)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인 그는 특히 말러와 쇼스타코비치 등 대편성 교향곡에서 인기가 높다. 젊은이답지 않은 노련함과 젊은이다운 생기가 공존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절도 있는 제스처와 단호한 리듬감으로 견인하는 그의 쇼스타코비치 7번은 듣고 있자면 함께 전진하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이미 유럽에는 ‘메켈레+쇼스타코비치’라는 성공 공식이 성립된 듯하다. 적어도 흥행은 보증된 셈이다.


글 전윤혜(프랑스통신원)


월간객석 2021년 10월호 객석아이 From France 파리 시즌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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