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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Jan 09. 2023

우리 이야기는 돈이 되어요

『나디아의 수요일』 3호 ‘예술은 예술이고 먹고는 살아야지’ 중

호경, 혜선 선배에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예요. 뒤늦게 남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가는 길입니다.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 서둘렀더니 땀이 나네요. 기온은 영상 15도. 벽난로가 필요없는 크리스마스니 산타 할아버지가 오실 수 있으려나요. 썰렁한 벽난로처럼 제 감정도 메말라 있어요. 봄에 예정된 한국 결혼식을 다음해로 미뤘거든요. 단도직입적으로, 비용이 모자라서요. 이번 호의 주제(‘예술은 예술이고 먹고는 살아야지’)를 듣는데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올해 제가 돈을 모으지 못한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상당 부분이 제가 일하는 방식에서 비롯됐거든요.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하고픈 것에만 집중하는 방식이요. 지나친 낙관이랄지, 현실 외면이랄지….


직장과 직업을 나누어 생각해 보라는, 수년 전 호경 선배가 건넨 조언으로 현재 제 삶을 돌아봐요. 제게 ‘직장’은 없어진 지 오래죠. 다만 글 쓰는 ‘직업’만 있을 뿐. 남편은 이곳에서 제가 ‘직장’을 얻길 원하지만 저는 ‘직업’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어요. 문제는 아직 글 쓰는 일로 ‘직장’만큼의 수입을 가져오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선배들이 통장을 확인하고, 높은 원고료가 들어오는 글에 더욱 애정을 기울일 수 있을 때, 저는 아직 고료보다는 제가 관심있는 주제에 먼저 시간을 쏟게 돼요. 지방 취재를 갈 때면 원고료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고 돌아오죠. 지금의 경험이 훗날의 자산이 될 거라면서요. 남편은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일은 일이 아니라 취미가 아니냐고 반문했죠.


지난 편지에서 혜선 선배가 말했어요. 누군가 선배의 글에서 매너리즘이 느껴진다고 말했을 때 선배는 되레 화를 냈다고, 그게 맞는데 한편 창피해서요. 저는 남편이 ‘취미’란 말을 꺼냈을 때 화가 났어요. 같은 맥락으로요. 어쩌면 저는 제 존재의 증명을 ‘일’이라는 ‘행위’로 드러내고 싶었나 봐요. 내가 관심 있는 일을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한다는 사실 자체요. 대가보다 순수한 열정이 우선되는 마음가짐을요. 남편이 이 가성비 없는 글쓰기를 내 이상을 펼치는 숭고한 직업이 아닌 취미로 치부하는 게 싫었어요. 결국 그 가성비의 구멍 때문에 이곳에서 현실적으로 삶을 꾸리고 미래를 위한 목돈을 마련하는 데 차질이 생겼죠.


그런데 호경 선배 말이 맞아요. 돈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덕분에 저는 황폐하지 않아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들, 정신적인 만족감이 제게 내재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것들이 제 엉덩이를 받치고 있죠. 그러나 때로는 그 내재된 가치를 유형의 가치로 바꾸기 위해 이 든든한 엉덩이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깨달은 바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돈이 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저 그것으로 돈이 되는 방식을 찾는 데 관심을 덜 가졌을 뿐이죠. 그러니 우리의 글을 적당한 가치와 맞바꿀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이 직업의 연장선일 겁니다. 원고의 가성비를 따지는 일이든, 내 원고를 들고 이곳저곳 두드리며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일이든, 무엇이든요. 적당한 자유와 안락함은 욕심이 아닐지도요!


이번 결혼식 사건을 통해 몇 년 간 남편과 겪어온 ‘재정 자립’ ‘노동과 수입의 균형’과 같은 갈등들이 실마리를 찾았어요. 한결 후련합니다. 새해에는 낭만과 현실을 오가며 살아볼까 해요. 이미 많은 것을 헌신해 온 남편에게 더이상 양해를 구하고 싶지 않아요. 사랑도, 미래도, 언제나 내 자리를 책임질 수 있을 때 더욱 당당해지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낭만을 뒤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이렇게 편지를 써 나가는 것처럼요. 언제나 저의 귀한 자양분이 되어주는 고마운 두 선배. 여러모로 풍족한 한 해 되세요.


윤혜




이 글은 웹진 『나디아의 수요일』 3호 중 「다정한 대답」 꼭지에 실은 글입니다. 「다정한 대답」은 웹진의 필진인 호경, 혜선, 윤혜가 하나의 주제를 두고 나눈 편지예요. 이번 호의 주제는 ‘예술은 예술이고 먹고는 살아야지’. 글과 음악으로 돈 버는 세 사람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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