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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Dec 29. 2020

세계로 뻗어 가는 손오공

중국 4대 기서 <서유기>의 다채로운 변주


나관중의 <삼국지>, 시내암의 <수호지>, 오승은의 <서유기>, 왕세정의 <금병매>를 중국의 '4대기서'라고 부른다. <서유기>의 경우 불교, 도교, 민간 종교, 신화 등 다양한 요소가 버무려져 있는 데다가, 교훈과 풍자적 성격까지 가미되어 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조화, 로드무비의 형식, 다양한 요괴들과의 대결 등의 극적 요소도 많이 지녔기에 드라마와 영화로 꾸준히 제작되었다.


손오공 캐릭터는 어린이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애니메이션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로라 공주와 손오공>, <날아라 슈퍼보드>, <드래곤볼> 등 서유기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들이 오랜 세월 계속 제작되었다.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tvn)는 서유기의 주인공을 바탕으로 여행지에서 각종 게임을 진행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8번째 시즌을 이어나가고 있다.


기본 줄거리는 대동소이하다. 주인공 손오공은 화과산의 돌에서 태어났다. 신선술, 분신술 등 뛰어난 재주를 익혔으나, 지나친 장난으로 석가모니의 법력에 따라 오행산에 갇히고 만다. 이로부터 500년이 지나 삼장법사와 함께 불경을 전수받기 위해 천축으로 떠난다. 저팔계와 사오정을 만나 함께 힘을 합쳐 기나긴 여정을 완수하고 불경을 얻어낸다.



출처 : <드래곤볼 극장판 - 신룡의 전설>



주성치의 서유기와 그가 남긴 그림자


‘서유쌍기’로 알려진 <월광보합>(1994)과 <선리기연>(1994)은 오랜 세월 컬트적인 인기를 누려왔다. 영화팬들은 주성치가 만든 영화 중에서, 서유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중에서 최고로 여긴다. 주성치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처럼 황당한 설정과 슬랩스틱 코미디가 난무한다. 그를 좋아하는 이들은 열광하지만, 개그코드가 맞지 않으면 유치한 것도 사실이다.


서유기에서 캐릭터를 가져왔지만, 스토리는 새롭게 구성되었다. 500년의 간극을 두고 두 개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손오공은 당삼장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우마왕의 말에 혹해 그를 죽이려 하지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이를 막는다. 손오공은 500년 후에 산적의 우두머리인 지존보로 다시 태어난다. ‘월광보합’은 타임머신처럼 두 세상을 이어준다. 전편에는 코미디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놓고, 후편에서 멜로를 중심으로 이를 거둬들인다.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설정과 패러디 장면들이 등장한다.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무사들, 등장인물이 1인 2역을 연기하는 게 <동사서독>(1994)과 닮았다. 지존보의 대사 “사랑의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중경삼림>(1994)에서 금성무가 먼저 한 말. 유진위와 왕가위의 인연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동사서독>의 제작기간이 길어지자, 유진위가 3개월 동안 <동성서취>(1993)를 만든 이야기는 유명하다. <동사서독>의 촬영 지연으로 제작비마저 고갈되었는데, <동성서취>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덕에 <동사서독>은 촬영을 재개할 수 있었다.


주성치와 서유기의 인연은 10년쯤 지나 다시 한번 이어진다. <서유기 : 모험의 시작(원제: 서유항마편)>(2013)에서 주성치는 배우로 출연하지 않고 감독으로 영화에 참여했다. 후속편인 <서유복요편>(2017)은 서극이 감독을, 주성치는 한걸음 더 뒤로 물러나 제작과 각본을 맡았다. 비슷한 시기에 유진위 감독은 <서유기 3: 월광보합 리턴즈>(2016)을 만들었다. 연속성이 부여되고, 전편의 배우들도 일부 등장했다. 두 영화 모두 주성치의 부재가 강하게 느껴질 뿐이다.



출처 : 영화 <서유기 2 선리기연>



중국판 블록버스터로 깨어난 손오공


중국영화라고 하면 명절 때마다 tv를 장악하던 이소룡과 성룡이 나오는 무술영화, 주윤발과 장국영 등이 활약하던 홍콩영화, 장예모와 첸 카이커 등의 국제 영화제를 휩쓸던 예술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중국 영화계로 거대 자본이 유입되었다. 2010년대 말부터는 <몬스터 헌트>(2015), <미인어>(2016), <특수부대 전랑 2>(2017),  <유랑 지구>(2019)처럼 흥행에 성공한  중국판 블록버스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서유기를 내세운 <몽키킹> 시리즈도 이 즈음에 등장했다.


<몽키킹: 손오공의 탄생>(2014)은 손오공의 기원을 다뤘다. 평화롭던 천상은 우마왕의 침입으로 황폐해진다. 우마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옥황상제는 여신 여와의 희생으로 얻은 신비의 수정으로 천궁을 복원한다. 그중 한 수정이 땅에 떨어졌는데, 여기서 손오공이 태어났다. 전쟁에서 패하고 지하세계에 갇혔던 우마왕은 손오공을 이용하여 천계를 다시 공격하려 한다.


<몽키킹 2: 서유기 여정의 시작>(2016)에서는 삼장법사 일행이 모여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불경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난 삼장법사와 오행산에 갇혀있던 손오공이 먼저 만나고, 이어 저팔계와 사오정까지 합류한다. 백골정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호시탐탐 삼장법사의 목숨을 노리게 된다. 특이사항으로 배우 교체가 있었는데, 1탄에서 우마왕으로 등장했던 곽부성이 2탄부터는 손오공이 되었다.


<몽키킹 3: 서유기 여인왕국>(2018)은 남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여아국에 도착한 삼장법사 일행을 다룬다. 우연히 삼장법사를 만나게 된 여아국의 여왕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여아국의 국사대인은 남자인 삼장법사 일행을 없애려 한다. 극 중에서는 이어지지 않지만, 삼장법사(풍소봉)와 여아국 국왕(조려영)은 실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세계를 선도하는 영화가 아직 나오지는 않고 있지만, 영화에 대한 중국의 투자와 영향력은 나날이 더 커져가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 14억 인구의 영화 시장, 점차 보강되는 CG 등 기술력, 세계적인 영화감독 등은 중국 영화계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다만 규제가 많아 창작자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없는 것은 큰 약점으로 지적된다. <몽키킹> 시리즈는 성장세를 탄 중국 영화계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예라 하겠다.



출처 : <몽키킹 3: 서유기 여인왕국>



사랑에 빠진 손오공


어린 진선미에게는 남다른 면이 있었으니 바로 악귀를 보는 능력이다. 어느 날 악귀에 쫓기던 진선미를 우마왕이 지켜준다. 진선미는 악귀를 물리치는 우마왕의 우산을 갖고 싶어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집에 들어가 파초선을 가져다주기로 한다. 안에 들어간 진선미는 갇혀있던 손오공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계약을 믿고 봉인도 풀어준다. 하지만 손오공은 진선미의 기억에서 ‘손오공’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고 도망쳐버린다.


어느덧 시간은 25년이 지났다. 진선미는 성장하여 부동산업자가 되었다. 원귀로 인해 망해가는 상가를 구입하여, 원귀는 저승으로 보내고, 상가를 되파는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우마왕은 대형 기획사 회장이 되었다. 그는 신선이 되기 위해 천년 간 참으며 선하게 살고 있었지만, 사고뭉치 손오공으로 인해 그 꿈이 점점 멀어져 간다. 손오공 역시 신선이 되기 위해 선행 포인트를 쌓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삼장의 고기를 먹으면 엄청나게 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진선미와 재회하게 되고, 진선미가 삼장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화유기>(2017)는 ‘서유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이다. 손오공은 돌화산에서 태어난 요괴 원숭이로, 치명적인 퇴폐미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삼장법사(진선미)는 여성 캐릭터로 바뀌었는데 악귀를 보는 능력을 지녔다. 부동산업체 대표이며, 속물근성을 지녔다. 우마왕(우휘)은 거대한 흰소 요괴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회장이다. 세 사람은 묘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저팔계는 톱스타 아이돌로, 사오정은 대기업 총수로 등장한다.


<화유기>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군 복무를 마친 이승기의 복귀작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최고의 사랑>을 집필한 홍자매(홍정은, 홍미란)와 박홍균 PD가 다시 손을 잡은 작품으로, 홍자매는 이승기와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이후로 7년 만에, 차승원은 <최고의 사랑> 이후 6년 만에 재회했다. 전작의 팬들로부터 큰 기대를 받은 것은 당연했다.


높은 화제성과 달리 <화유기>는 회를 거듭할수록 한국 드라마가 지닌 문제점을 다양하게 드러냈다. 2회 방송 중에 방송이 멈춰 드라마 광고만 나왔고, 결국 전체 분량 중 절반 정도 방영되지 못했다. 편집 지연으로 와이어가 CG 처리되지 못 한 채 방영되기도 했다. 미술팀 스태프가 3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제작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웹소설 <애유기>와의 표절 논란도 있었다. 거듭된 악재로 인해 초반 화제성에 비해 시청률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출처 : <화유기>



중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을 지나 호주에서 만들어진


신들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절, 요괴들은 날뛰지 못하고, 세상을 평화로웠다. 손오공은 신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이 있었지만, 패하고 적에 의해 추방당했다. 손오공이 사라지자 요괴들이 세상을 점령했다. 그리고 500년이 지났다. 전해오는 전설을 사실로 믿으며 손오공을 찾아 풀어주고자 하는 무리가 나타났다. 그중에는 삼장법사도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요괴가 찾아왔다. 삼장법사 일행을 모두 죽이고, 금강고를 빼앗아 간다. 죽어가던 사부는 현장에 있던 소녀에게 여의봉을 건네주며 손오공을 찾으라 한다. 소녀는 우연히 요괴를 다시 만나게 되고, 금강고를 훔쳐 달아나던 중 남장을 하게 되었다. 손오공을 만난 이후로는 죽은 삼장법사의 행세를 한다. 저팔계와 사오정도 일행에 합류를 하게 되고, 신성한 경전을 찾아서 서역으로 가는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손오공: 새로운 전설>(2018)은 호주에서 제작된 드라마다. 넷플릭스에는 시즌2까지 공개되었으며, 회차당 20~30분 분량이다. 원작은 물론 <서유기>지만, 1978년에서 80년까지 일본에서 방영된 tv시리즈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당시 이 작품은 해외로 수출되었는데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들에게 담긴 어린 시절 추억이 이 시리즈를 다시 만들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일단 우리가 보아오던 손오공과는 많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극장판에서 보여주던 장대한 스케일은 찾을 수 없고, 주로 격투기 중심으로 소박하게 진행된다. 영어를 쓰고, 다인종을 배경으로 진쟁되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느낌을 전해준다. 성인들이 보기에는 유치하다고 여길 수 있겠으나, 마냥 그렇게 치부하게에는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가족물로 여긴다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출처 : 넷플릭스 오리지널 <손오공: 새로운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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