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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Dec 02. 2021

20년 전 영화들을 꺼내어

2001년에 개봉했다가 2021년에 재개봉한 영화들

코로나19로 인해 새 영화들이 개봉일자를 줄줄이 서로 미루며 눈치를 보고 있을 때, 극장은 옛 영화 들을 다시 스크린에 올리기 시작했다. CGV의 경우, 지난 3월부터 ‘시그니처 K’를 운영하며 지나간 한국영화들을 재개봉시키고 있다. 2000년대 전후로 개봉했던 영화들을 주로 선보였다. 


지금 재개봉되는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천만 관객을 이끌며 크게 흥행했던 작품들은 <태극기 휘날리며>(2004) 정도.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뒤늦게 작품성을 인정받은, 그래서 이제라도 스크린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이 주로 선정되고 있다. 


옛 영화들도 그냥 돌아오지는 않았다. 화질이 좋지 않던 필름 상태는 지금에 맞게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말끔하게 변신했다. 재개봉과 함께 GV도 열리곤 했다. 감독과 출연했던 배우들이 나와 당시의 에피소드와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들려주며 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1년 영화들은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한국영화의 상업화로 인해 영화 시장의 외연은 커졌으나, 그와 동시에 작가주의 영화, 독립영화들은 투자와 배급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몇 주 견디지 못하고 극장에서 퇴출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뒤늦게나마 다시 만나게 된 영화들이 반갑다. 



출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 2001.10.27. 개봉 2021.6.23. 재개봉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지방을 전전하는 삼류 밴드이다. 어려운 현실로 인해 멤버들은 하나둘 떠나 버렸다. 일자리를 찾아다니다가 결코 오고 싶지 않던 고향, 수안보까지 흘러들게 되었다. 고교시절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들, 그 옛날 첫사랑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친구들은 약사, 환경운동가, 시청 건축과 공무원이 되어 있었고, 첫사랑 인희는 남편과 사별한 채 트럭을 몰며 야채를 팔고 있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는 두 개의 타임라인으로 흘러간다. 고교생인 성우(박해일)와 성인이 된 성우(이얼)의 시간이 교차된다. 음악을 사랑했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음악을 업으로 삼았지만 성우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나신으로 자유롭게 해변을 달리던 과거의 성우와 질펀한 술판에서 벗은 몸으로 연주를 하는 현재의 성우를 통해 극명하게 대비된다. 


누구나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여러 갈래의 길에서 선택을 한다.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을 선택한 사람이 있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러 제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한편에 이루지 못한 꿈,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본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다면 과연 행복했을까?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보며 또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몇 명은 여전히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20년의 시간 동안 신인이었던 황정민, 박해일, 류승범 등은 더욱 성숙한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 꿈을 접고 영화계를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토록 커진 한국 영화계를 멀찌감치 바라보며, 그 안에서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활동하는 옛 동료 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보지 않은 길은 알 수 없다. 사람일도 알 수 없다. 그저 항상 그 상황에서 최선으로 사는 수밖에. 



출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고양이를 부탁해>(2001) - 2001.10.13. 개봉 2021.10.13. 재개봉 


혜주, 지영, 태희, 비류, 온조는 고교 단짝 친구들이다. 혜주(이요원)는 서울에 있는 증권회사에 취업했다. 판잣집에서 조부모와 사는 지영(옥고운)은 텍스타일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지만, 가난한 현실이 늘 발목을 붙잡는다. 태희(배두나)는 아버지의 찜질방에서 일하면서 뇌성마비인 시인의 타이핑 작업을 돕는다. 화교인 쌍둥이 자매(이은주, 이은실)는 노점을 열고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판매한다. 


가장 그럴듯한 직장을 가졌지만, 실제 직장에서는 가장 별 볼일이 없는 혜주. 꿈도 있고, 열심히 살고자 하나 무너진 판잣집처럼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지영. 배를 타고 물처럼 흘러가고 싶던, 친구들 사이를 연결하는 태희. 문전박대를 당해도 비굴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비류와 온조. 서로 다투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지만 이들을 어그러뜨리지는 못 한다. 


‘와라나고 운동’이 있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라이방>(2001), <나비>(2003), <고양이를 부탁해>의 첫글자를 딴 것으로, 좋은 작품이었지만, 극장에 제대로 걸리지도 못 하고 사라져 버린 영화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팬들의 외침이다. 2001년은 멀티플렉스와 거대 상업영화들로 영화시장이 확대해 가던 때이자, 이로 인해 작가주의 영화들이 설 곳을 잃어가던 때였다. 


자신의 이름을 지닌 젊은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서사를 내세운 작품은 그 때나 지금이나 찾기 어렵다. 여상을 졸업한 다섯 친구의 우정과 갈등을 그려낸 듯 보이지만, 그 안에 노동과 실업의 문제도 담겨있다. 최근 4k 리마스터링 버전 작업으로 거듭난 <고양이를 부탁해>는 20년이 지나도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영화를 다시 보니 당대의 영화와는 달리 표현되는 장면들이 있었다. 첫 장면에서 블라인드를 거둘 때 창문에서 제목이 나타난다든지, 서로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그것이 여백에 배치된다든지, 감독 특유의 참신하고도 섬세한 연출력이 빛을 발한 것 같다. 분명 재능이 많은 감독인데 그 이후의 필모를 보면 다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출처: 영화 <파이란>



<파이란>(2001) - 2001.4.28. 개봉 2021.11.18. 재개봉 


조직폭력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박스오피스를 휩쓸던 시절이었다. 당시 <친구>(2001)의 성공에 이어 <신라의 달밤>(2001), <조폭마누라>(2001), <두사부일체>(2001)가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투자자들은 이런 영화에 몰렸고, 조폭이 주인공이 나온다고 하면 으레 코미디물을 생각하던 시기였다. <파이란> 역시 조폭과 양아치가 나오지만 결이 달랐다. 기대에 이반 했기 때문인지 성적은 저조했고, 일찍 간판을 내렸다. 


<파이란>은 삼류 건달인 강재(최민식)가 주인공이다. 그는 보스의 살인 현장에 같이 있었고, 배 한 척 살 돈을 받는 조건으로 대신 감옥에 가기로 약속한다. 그때 뜬금없이 아내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일전에 돈 몇 푼을 받고 위장 결혼을 해 준 중국인 여성이었다. 그는 죽은 아내를 만나러 강원도로 여정을 떠난다. 다녀온 강재는 거짓 자수를 거부한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한다.  


영화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강재는 양아치의 비루한 삶으로 시작하여, 조직에 의해 처절하게 응징당하며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파이란(장백지)은 가족을 찾으러 왔으나, 이국땅에 홀로 남겨진 인물이다. 한국에 계속 머물기 위해 서류상의 결혼을 했다. 자신과 결혼을 해준, 일면식도 없는 남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한다. 그의 사랑은 한 남자를 변화시킨다. 비록 때늦은 후회를 동반하지만. 


고단한 삶을 살아온 강재에게 파이란의 사랑은 회환과 반성을 가져온다. 비록 이제는 없고, 다시는 곁에 올 수 없지만, 나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한 사람으로 인해 그는 새로운 눈을 뜬다. 내일도 없이 바닥의 삶을 살아온 강재에게 구원이 찾아오지만, 그에 대한 시샘도 함께 찾아온다. 새로운 출발은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출처: 영화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2001) - 2001.9.28. 개봉 2021.6.9. 재개봉 


지방 방송국의 아나운서 겸 프로듀서인 은수(이영애)와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류지태)는 소리 채집 여행을 다녀온 후,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장거리 연애를 하며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위기의 순간도 찾아온다. 더 깊은 관계를 원하는 상우와 달리 이혼의 아픔이 있는 은수는 자꾸 밀어낸다. 두 사람의 밀고 당김이 이어지고, 둘의 사랑은 예측 가능한 결말을 맞이한다. 


<봄날은 간다>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함께 허진호 감독의 대표작으로 언급된다. 한국 멜로 영화로써는 앞으로도 전설처럼 남을 두 편의 영화라 하겠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불치병을 지닌 남자의 다소 이상적인 사랑 이야기라면, <봄날은 간다>는 보다 현실적인 연인들의 갈등을 다룬다. 두 작품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다. 


관객들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때로 상우의 순수한 사랑에 감정이입을 하고, 때로 은수의 지독한 상처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때로 갑이 되고, 때로 을이 되는 관계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른 동명의 ost는 봄철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상우와 은수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벚꽃길을 떠오르게 한다. 


같은 해 개봉한 또 한 편의 멜로 영화가 있다. 이병헌과 이은주의 열연으로 유명한 <번지점프를 하다>(2001). 이 역시 올해 재개봉했다. 두 사람이 대학생이던 1983년의 여름을 배경으로, 그리고 인우가 국어 선생님이 된 2000년 봄을 배경으로 극이 진행된다.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을 인기를 끌었다. 최근 카카오tv에서 16부작 드라마로 리메이크하기로 결정되었다. 



출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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