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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훼 Jun 17. 2018

새로운 제주내과

하늘이 맑고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봄을 제주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연애할 때부터 제주에 한번 다녀오자고 말하던 걸 결혼 후에야 다녀오게 된다.


겨울에 결혼식을 치룬후 새해가 밝자 마자 탁상달력을 꺼내놓고 한해의 계획을 세웠다.

명절이 두번이고, 양가 생신이 두번씩 네번이고, 어버이날을 챙기니 매달 끊이지 않고 일정이 생긴다.

결혼은 가족이 하나 더 생겨 삶의 범위가 두배로 커지는 일임이 실감난다.

성수기를 피하고 기념일을 피하고 보니 4월의 봄이 딱 비었다.

휴가를 미리 내어두고 비행기표를 일찌감치 예매해뒀다.

넉달을 보내는 동안 새로 일이 들어와도 그날만큼은 미리 양해를 구하며 사력을 다해 비웠고,

남편도 회사에서 생긴 해외일정 기회를 인심좋게 양보하며 그날을 사수했다.

이게 뭐라고 우린 4월만 기다리며 날을 보냈던것 같다.


일도하고 살림도 하는건 남편이나 나나 매한가지다.

혼자 지낼땐 내 몸 되는대로, 내 몸이 하고 싶은 때에 하면 그만인 삶이다.

둘이 산다는 건 상대의 몸과 마음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하는 삶이니

행복한 만큼 체력도 많이 소비된다.

서너달을 새로운 삶에 맞추어 지내는 동안 꽤나 피로가 쌓였나보다.

드디어 여행날이 밝자 어린날 소풍가듯이 맘이 설랬다.

퇴근하고 공항으로 가는 9호선에 사람이 가득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 4월이야! 이제 제주라고!


소풍처럼 설렌것치고 제주의 늦은 밤은 몹시 추웠다.

렌트카를 찾아와 호텔에 도착해 뜨거운 컵라면을 먹는데 신나는 만큼 몸이 안따라와 주는 느낌적인 느낌이 엄습해왔다.

쓰러지듯 잠들었다 깨어보니 남편은 으슬거리는 감기기운에 목이 붓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새파랗게 맑고 뜨거운 낮. 우린 전복뚝배기를 비워내고 병원을 검색해 진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얼마나 기다려서 온 제주인데. 여행길에 아파서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애월에서 가장 가까운 내과를 검색하고  외도동으로 차를 몰았다.

제주 새로운내과의원.

진료실에 들어간 남편은 한참동안 나오질 않았다.

다 똑같은 대한민국 병원인데도 제주도 병원은 왠지 특별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과가 이리도 새로웠나?

접수대에서 허리가 아파서 왔다는 할머니께

“할머니~ 여기는 내과에요. 허리아픈건 다른데로 가셔야 하는데.”라고 달래듯 말하는 간호사샘과

“그냥 봐줘어어어...허리가 아퍼서 왔어.”라고 진료를 고집하는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남편이 나왔다.



“어우. 여기 진료 잘하네.”

“왜? 꼼꼼히 문진했어?”

“어. 어떻게 알았어?”

“오래걸리길래. 감기기운으로 들어간건데 꼼꼼하게 물어본다 싶었지.”

“응. 의사선생님이 자세하게 물어보고 살핀다음에 처방해주더라. 믿음직하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으례 증상을 간단히 듣고 아~입을 벌려 목 부은것 보고,

청진기로 숨소리 들어보고 주사나 약을 처방받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분도 있겠지만

감기라는게 환자가 감기라고 진단하며 들어가는 병이라 그런지

의사선생님들도 간단히 진료하는게 내 경험의 대부분이었다.


평소 몸상태가 어떤지, 다른 아픈곳이나 먹고있는 약은 없는지,

식생활이나 최근 상태를 꼼꼼히 문진하며 살펴주고 환자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는 의사선생님은

화려한 학벌과 경력이 보이지 않아도 절로 신뢰가 생긴다.

약먹는걸 즐겨하지 않는 남편도 이번에 처방받은 약은 꼬박꼬박 먹어가며 남은 여행을 즐겼다.


이렇게 또 하나 마음에 새겨둔다.


"판단하기 전에 물어야지."

"잘 들어야지."

"마음을 다해 들어야지."


마음에만 새기기 아까워 명함에도 새겼다.


마음을

다해

마음을 듣다




푸른 애월의 바다와 카페, 에머랄드빛 협재 해변, 풍력발전소의 커다란 바람개비.....

들을 기억하며 낭만을 누리고 싶지만

둘다 피로와 감기에 쌓여 보는것보다 쉬는시간이 더 많고 맛있는 것만 잔뜩 먹고 왔던 여행이 되었다.

산고등어회와 낚시고기로 만든 생선가스, 전복뚝배기와 흑돼지구이들이

여행을 곱씹어 볼때마다 행복이 되곤 한다.


마음에 새긴 봄 제주여행 한토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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