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울었던...
어른이 된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쌓아온 감정습관대로 살아간다. 그런데 부모가 된 누군가는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감정을 처리하고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아빠"가 되면 내 아이라는 자녀가 있기에 감정처리라는 것에도 책임감이 묻어나는 걸 보게 된다.
어릴때 내게 엄마아빠는 아주아주 큰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부모였기에 모든걸 의존하고 바라보는 대상이었고 내게 안정감을 주는 유일한 존재였으므로 어린 내눈에 엄마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으로 보였다. 국민학생(?)때 학교끝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근처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께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중이었나? 아주머니들끼리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누구야?" "아~ 왜~ 저기 가운데 2층에 키작은 애엄마 하나 있잖아. 그집 딸~" "아~ 그 키 짜그만한?" 스쳐가며 들었던 말인데 그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집에가서도 곰곰히 곱씹어 보았었다. 지금도 그때 기분이 생생한데 내가 하염없이 크게만 보던 엄마를 왜 저분들은 키가 작다고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 엄마 아빠가 작게 보이는 시점은 자라면서 어느순간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 같다. 엄마가 외할머니의 큰 수술을 앞두고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 보이셨을 때. 외할아버지 제사때 키가 아주 큰 이모부와 아빠가 나란히 서서 절을 하는 뒷모습을 보며 아빠 키가 작다는 걸 체감했을 때. 나는 비로소 두사람이 엄마 아빠였기 때문에 커 보였었다는 걸 깨달았었다. 어느새 늙으신 엄마아빠 생각에 씁쓸함이나 서글픔이 몰려들기도 하지만 평범하고 한 여자, 남자였을 그분들이 어린 아이였던 나와 동생들에게 든든함이 되어 주고자 살아내셨던 세월에 깊은 감사가 몰려온다. 자신의 힘듦과 슬픔과 무서움 들을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감춰가며 사셨을테니 말이다.
떠올릴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던 조카 이야기를 하나 나눠보려 한다.
조카가 태어나서 온 가족의 기쁨이 된지 100일도 채 안되었을 때 심장수술을 하게 되었다. 심장 판막과 혈관을 누르는 근육에 문제가 있어 수술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100일이 채 안된 조그마한 어린아기에게 수많은 검사와 수많은 주사는 말로 할 수 없이 아프고 고된 일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엄마 아빠 마음이 어떨지는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런 조카를 수술실에 들여보내야 할 때의 부모마음은 어떠했을까..
이른 아침 수술이어서 출근전에 병원에 들러 함께 있다가 조카를 안고 동생내외가 수술대기실에 들어가는 것만 보고 발걸음을 뗐었던 기억이 난다. 난 옆에서 보기만 해도 맘이 너무 아파 출근길 지하철에서 눈물이 참아지질 않았었다.
올케말로는 대기실에 여덟명 정도의 아이가 수술을 앞두고 부모님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들이 모두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부모마음이 다 같은 마음일지라 분위기는 침울하고 가라앉아 있었더란다. 올케라고 더하면 더했지 마음이 달랐을까. 그치만 그순간 올케는 "내가 울면 아기가 다 느끼니까. 무섭지 않게. 마음 편하게 보내줘야지."라 생각하며 아기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과같은 아기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흐느낌이 가득했던 대기실은 일순간 정적이 흐르고, 조카는 엄마의 노랫소리와 장난에 환하게 웃으며 대기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수술을 맡은 의사선생님이 나오시고 환하게 웃는 조카를 자연스레 건네받아 안고 수술실로 들어갔다고 한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는 엄마앞으로 문이 열리고 조카를 들여보낸 남동생과 올케가 나왔다. 올케는 그제서야 무너지듯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울먹이면 내 몸이 떨리니까.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해주려고 그랬다는 올케는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소리내어 울었다. 아이를 안고 케어하는 애엄마대신 서류처리와 복잡한 절차들을 묵묵히 감내한 남동생도 수술을 무사히 잘 마쳤다는 의사선생님 말을 듣고는 제 엄마를 와락 껴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 생각이 나서 글썽해진다. 조카에 대한 안쓰런 마음보다도 그렇게 이를 악물었던 동생과 올케 마음이 생각나서 먹먹해지는 것 같다. 두사람을 위로하려는 마음보다도 존경하는 마음이 드는건 이미 그들이 부모로서 큰 사람이 되어있다는걸 알아서일게다.
엄마와 아빠가 되면 내 슬픔과 내 무서움보다 아이의 무서움과 아이의 슬픔이 더 중요하기에 아이가 보는 앞에선 울음을 삼키며 아이에게 큰 산이 되어 준다. 아이는 그런 부모님의 든든함을 양분삼아 자라나게 된다. 엄마 아빠가 든든하게 아이를 받쳐 주는 만큼 아이는 불안함보다 용기를, 무서움보다 안정감을 머금고 자랄 것이다.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진 이땅의 모든 부모님들께 마음으로 감사와 존경을 보내드린다.
* 이런 부모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조카는 수술도 무사히 마치고 힘든 중환자실과 병실 생활도 무사히 견뎌 지금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곧 첫번째 생일을 맞이할 우리 조카에게 사랑을 담아 전한다. "많이 많이 축하하고 참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