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감빵생활 7화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의 여러 합작들중 하나입니다.
[응답하라 1997]에 이어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까지 응답시리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저 또한 재밌게 봤던 드라마 들이었습니다.
'응답' 시리즈가 더 나오려나 했는데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예상을 뛰어넘는 행보였어요.
저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아주 여러번 되돌려 보는 습관이 있는데, 특히 대사들이 재미있는 드라마들을 다시 보는 편이에요. 다시 봐도 기가 막힌 장면들때문이기도 하고, 아는 드라마는 그냥 틀어놓으면 큰 에너지 쓰지 않고 적당한 즐거움을 선사해주기도 해서지요. 뭔가 보고싶기는 한데, 새로운 것은 집중해서 봐야하는 에너지를 써야 하니 시간이 여의치 않을때, 머리말리고 화장하며 출근준비하며 뭔가 틀어놓고 싶을때 그냥 틀어놓는 드라마 명작들.
최근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다시 보기 시작하다 결국 또 16회까지 정주행하고 말았습니다.
#헤롱이 #고박사 #문래동카이스트 가 투닥대는 장면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다시보고 또 다시봐도 유쾌상쾌 합니다. 헤롱이는 무료한 감빵생활에서 종종 신문의 낱말맞추기 퀴즈를 풀곤 하는데 눈에 띄는 장면이 있어 글 한꼭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고박사는 고지식하고 규칙과 관습적 규준을 중시하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횡령사건이 발생하고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지만 윗사람들의 말에 넘어가 죄를 뒤집어쓰고 형을 살고 있는 사람이지요. 회사를 위해 자기몸 생각않고 열심히 일해온 고박사에게 윗사람들은 때아닌 인정을 해주고 치켜세워주더니 사건을 마무리하라고 떠넘겨버렸습니다.
감빵에서도 고박사는 "형의 집행 및 처우에 의하면..."이란 말을 늘 달고 살며, 융통성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우직하고 꼼꼼하고 성실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한마음으로 협력해 점호준비를 잘해낸 보상으로 대면 접견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아내와 마주앉아 대화할 수 있게 되었지요.
아내는 갑자기 회사에서 월급의 세배가 넘는 돈이 들어왔다며 다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어요. 남편인 고박사가 무슨 잘못이있다고, 당신이 그럴 깜냥이나 되냐며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비치는 아내에게 고박사는 단호하게 아내에게 말합니다.
"회사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거라고."
고박사는 자신이 이미 회사의 윗사람들이 시키는대로 그들의 인정과 격려에 힘입어 모든일을 떠맡아 버렸기에 그것이 사기를 당한 것이고 부당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행동해버린 결과를 바꿀 수 없으니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다 날 위해주는 것이고, 더 큰 뜻이 있을거라고"
이에 아내는 슬프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하죠.
"정말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라고요.
장면은 절묘하게 낱말맞추기를 하는 헤롱이를 클로즈업 합니다.
"인 지 부 조 화" 라는 낱말을요.
인지부조화 이론의 핵심적인 생각은 태도와 행동이 부조화 상태에 있을 때,우리가 부조화라는 불쾌한 상태를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경로를 택하게 된다.
즉, 우리는 태도를 비꿈으로써 조화 또는 일관성을 이루어낸다.
이미 저질러진 과거 행동은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단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새롭고 조화로운 인지로 바꾸거나 새로운 인지를 더함으로써
행동이 유지되거나 정당화되게 한다.
출처: 힐가드와 에트킨슨 심리학, 박학사
생각보다 일상의 많은 장면에서 우리는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센터를 개소할 때 여러가지 준비 중 로고 작업에 대해 기대가 컸습니다. 센터이름에 맞는 분위기와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 혹은 느낌을 나타내는 로고를 갖고 싶었어요. 디자인이라는 창작과 기술은 제 능력밖의 일이었기에 열심히 서칭하며 로고디자인을 찾았습니다. 저렴한 가격의 상품들도 있었지만 블로그와 인스타를 서칭하며 매우 맘에 드는 포트폴리오를 찾아 디자이너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포트폴리오에는 정말 멋지고 창의적인 로고작품들이 가득했어요. 스마트스토어나 크몽에 나온 것보다 다소 가격이 비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껏 기대를 하며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받아본 결과는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가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원하는 바와 싫어하는 바를 요청했어야 하는데 '알아서 해주겠지'란 마음으로 두루뭉슬하게 의뢰했던 탓이 컸어요. 그래서 고민고민하며 디자이너님과 수정을 거듭했고 결국 지금의 로고가 완성되었습니다. 완성되고 나니 괜찮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여전히 컸습니다. 하지만 인테리어와 기타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다른 곳에 새롭게 의뢰할 형편은 못되었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간판과 명함과 홈페이지 등의 작업을 해나가면서 저는 제 태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자연스레 제 태도 즉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가만... 보면 볼수록 멋진데? 아주 맘에 들어. 따뜻하고, 센스있고, 생각보다 괜찮은데?" 라고 말이에요.
인지부조화는 좋다, 나쁘다 의 개념이 아닌 인간의 행동이나 태도를 이해하는 개념입니다.
저처럼 일상에서 사소한 불만이 있을때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결과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합리화" "정당화"를 만드는 큰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고들 말하지. 나도 그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흡연은 내 마음을 너무나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고, 그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야."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함으로써 불일치를 감소시킬 수 있으니까요. : 출처: 힐가드와 애트킨슨 심리학, 박학사
우리가 인지부조화에 대해 알아차리게 된다면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편함과 고통을 견뎌내더라도 기꺼이 행동을 바꾸려 노력하거나, 행동에 맞는 생각을 함으로써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고박사도 결국 그 불일치를 견뎌내고 새로운 시도를 해냅니다.
회사를 옹호하면서 자기를 희생하기보다 사실을 직시하고 회사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갖게 되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사기당했다는, 날 이용하는 것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불찰을, 나 자신에 대한 괴로움과 고통을 견뎌냅니다. 이미 동조한 행동에 대한 결과를 바꾸진 못하겠지만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새로운 선택을 주체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인지부조화 경험은 어떤가요?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혹시 결과를 바꿀 수 없어 내 생각을 합리화 하고 있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