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흐린 날 마음길 헤메기
날이 흐리다는 핑계로 택시를 불렀다. 나와보니 바람도 세차게 부는 것이 부르길 잘했다 싶다.
택시안에서 핸드폰을 좀 볼라치면 어김없이 울렁거림과 두통이 몰려온다.
멀미다.
날이 갈수록 멀미가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체력이 좋지 않거나 몸이 안좋아서 겠지란 생각은 피해버리고 싶다. 울렁거리고 토할것 같은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과 멀어지려고 눈을 감았다.
'그냥 지하철을 탈걸 그랬어.'
오늘 아침은 침대에서 바로 내려오는게 목표였고 다행히 그걸 해냈다.
눈을 뜨면서 핸드폰을 붙들고 쓸데없는 가십거리나 영상들을 보는 내자신이 너무 싫어 오늘 아침은 그냥 잠이 깨면 바로 일어나야지 했었다.
그 어려운 걸 오늘 아침 나는 해내었지만, 몸은 너무 무겁고 찌뿌둥해 거실 소파에 주저앉아 이전에 침대에서 해왔던 핸드폰탐험을 계속했다.
아침인데 어둡고 우중충한 것이 흐린 날이었다.
베란다 창문이 덜컹덜컹 흔들릴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고 빗방울도 떨어지는 듯 했다.
비를 좋아하지 않고 무서워했던 나는 어른이 되면서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곁에 많아졌다.
빗소리들으며 누워있는걸 좋아하는 우리 남편덕에 이젠 제법 비오는 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긴 했는데.
여전히 날이 흐리면 나는 왠지 모르게 추욱 쳐진다.
그렇다고 우울해지진 않는다. 천성이 우울보단 불안 인듯 싶다.
마음이 한곳에 탁 하고 안착하질 못하고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한다.
왜일까.
어제 친구랑 나눴던 이야기들 중 뭔가 마음을 건드렸나?
잘되어 가는 내 또래의 누군가가 부러워 내 자신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나?
다음주에 있을 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게 하기 싫은건가?
아님 그게 긴장되는 건가?
요즘따라 불어가는 내모습이 싫어서 인건가?
잘 풀리지 않았던 상담들이 떠올라서 인건가?
끝나지 않을것만 같은 시험공부가 막막해서 인건가?
갑상선호르몬이 또다시 흔들린건 아닐까?
요며칠 무리한탓에 으슬으슬 하던데 몸살이 오려는 신호인건가?
마음길을 이리저리 헤메이며 헤집어보다가
그게 또 싫어서 그냥 핸드폰만 붙잡고 있다가
여덟번은 더 본것 같은 익숙한 드라마를 켜두고 실내자전거에 올라 패달을 꾹꾹 밟아봤다.
'역시.. 오늘 출근길은 택시를 불러야겠어'란 후회할 생각에 결국 이르렀다.
센터에 도착에 환기를 시키고 택배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건들을 정돈했다.
새로 산 유리그릇에 작은 간식들을 담아 내담자 자리에 올려두다
문득 내담자 자리에 앉아보았다.
내자리에서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 큰 나무화분이 세개나 있지만 내담자가 앉는 자리에선 나무시계와 하얀 벽만 보였다. 내가 원한건 이게 아니었던것 같은데...
벽에 걸 그림을 고르는 일은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고 취향에도 맞지 않아 세개의 화분 중 하나를 번쩍 들어 반대편에 옮겼다.
다시 자리에 앉아보니 하얀벽에 짙은 녹보수 나뭇잎이 보기에 훨씬 좋아졌다.
날이 흐리면 기분이 확실히 산란하다.
해가 뜨고 하늘이 파랗게 보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비가 오면 상쾌하고 들뜨기도 하지만
바람이 불고 어둑어둑 축축하면 마음이 확실히 편하진 않다.
많은 이유들중에 진짜를 고르려 애쓰기보다
산란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나를 토닥여주고 위로하기로 결정해본다.
따뜻한 커피한잔, 무릎담요, 기분을 적어가는 글쓰기.
이제 해야 할 것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