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감상기
2016.12.28 작성
1
똑똑히 보았다 /
반대로 가더라. 5년 후 금의환향한 미아의 골프 카트는 영화 초입의, 그러니까 그녀가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여배우의 카트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카페를 떠났다. 극적 장치의 두 장면이 완벽히 같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 사소한 방향의 의미는 크고 무거웠다. 적어도 나에겐 확실히 그랬다.
Someone in the crowd /
미아의 단짝 친구들에게 누군가는 자신들을 스타로 만들어줄 타인이지만, 미아는 그 누군가를 자신에게 입혀본다. 군중 속의 희미한 한 명일 뿐인 부정적 someone으로. 친구들이 기다리는 백마 탄 왕자로서의 someone과는 사뭇 다르다. 더 나아가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somewhere을 찾는다.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넘겨버리지 않고 결국 어딘가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어 꿈을 이룰 바람을 가진 미아. 이 진실된 모놀로그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이어지는 사교계의 코러스, someone in the crowd는 그저 허망할 뿐이다.
힙스터, 긱 /
달랐다. 세월의 가치를 더럽고 불쾌하다고 넘겨 버리는, 새롭고 깨끗하며 돈 되는 것을 찾고 이용하는 비즈니스맨들과 세바스찬은 같지 않았다. 미아의 연인 그렉과 그의 형의 대화 주제는 불과 단 몇 초 안에 수 번 바뀐다. 그들의 얕은 흥미가 알려지는 게 무섭기라도 한 듯이 빠르게 갈아 치워 버린다.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적정선에서 가치를 매기고 상품화시키는 사업가들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세바스찬이 그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다고, 그런 세바스찬이 미아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재즈를 싫어했지만 단번에 좋아하게 되고, 멋진 사람들과 하는 값비싼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를 놔두고 뛰어간 이유가 다른데 없다. 재즈 하나의 이야기만으로 배경을 낮에서 분홍빛 석양이 지는 저녁으로 바꿀 수 있는 남자. 겉만 핥고 유행에 편승하는 힙스터가 아닌 힙스터가 가진 본연의 정신을 이해하고 향유하는 남자. 평가절하 되어버린, 싸구려 재즈로 비추어진 자신의 업을 침 튀기며 대변하는 세바스찬의 열렬한 몸짓과 눈빛은… 아무래도 라이언 고슬링이라서인지… 어떤 여자에게도 섹시할걸! 지루하고 과시적인 그렉 일행과의 대화 중에 들리는 세바스찬의 멜로디를 미아가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은 필연을 넘어선 진리라고 본다. ...라며 크으 역시 긱함이지! 긱 뽕에 취해 나만의 은밀한 긱함을 곱씹는 중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입맞춤.
파블로프의 개 /
아 x발… 현실! 영화 초중반에 커플이 탄생된다면 이미 그 감독은 파블로프이고 난 그의 개다. 달콤함을 무색하게 깨부수어 버리는 현실이 종소리를 냈으니, 난 그저 침을 흘리며 스크린 너머로 주인공들의 스트레스를 나머지 시간 동안 함께 짊어질 준비를 할 뿐이다. 에이, 종소리를 잘못 들었겠지 라며 잠시 외면해보려 했지만, 셉의 집 하얀 천장의 누런 누수는 내 귀에 대고 한 번 더, 종을 흔들어 댔다. 재즈에 대한 셉의 순결한 열정에 누런 현실이 끼기 시작한다. 재즈만큼, 혹은 재즈보다 더 사랑하게 된 미아를 생각하면 그깟 변절자와의 한솥밥은 눈감고 먹으면 그만이고 내 꿈은 언젠가 또 기회가 오겠지란 자위면 그런대로 잊을 수 있을 것.
그래서 /
그 희생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포장할 것인가? 현실의 퀴퀴한 구린내가 결국 셉이 깜빡 잊은 요리의 탄연으로 방을 가득 채울 때 우린 그 대답을 이미 얻었다. 셉은 미아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만든 미아를 사랑했다. 셉의 꿈을 저버리길 바라는, 셉 자신의 미아는 더 이상 미아가 아니다. 타인을 두려워하는 자신에게 늘 fuck’em을 외쳤던 셉이 자신 때문에 꿈을 끝내 포기하겠다는 것은 미아가 사랑하는 셉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모욕이다. 이 나쁜 놈보다 더 지혜로운 미아는 역시나 현명하게 셉이 자가당착에 빠졌단 것을 깨닫도록 이끈다. 하지만 라라 랜드로 가다 샛길로 빠진 그를 되돌리기엔 그는 한참 멀리 가버린 것 같다. 남의 꿈을 비호하고 있는 미아에게 마저도, 더 이상 세바스찬이 예전의 세바스찬이 아닌 이 절묘한 패러독스!
Smeone in the crowd 2 /
이러한 역설에도 몽환적인 네온과 석양빛, 꿈같은 안무와 노래의 잔향은 여전히 강렬하다. 미아가 자신이 되기 두려워한 그 희미한 누군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친구들이나 애타게 찾던 백마 탄 누군가를 미아 자신이 만나게 된 씬은 너무나 현실적인 또 하나의 패러독스이기에 관객은 다시 현실의 잔인함을 마주한다. 미아는 그들 앞에서 담담하게 이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은 어리석게 보았지만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살았던 그녀의 이모는 자신이 위로하는 반항아와 이단자들이라 매도당했던 화가, 시인, 광대들 그들 자체였다. 세월이 지나 이모는 이제 미아의 목소리를 빌려 그들을 위로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꿈 꾸는 바보들 셉과 미아, 우리 일지도 모르는 관객 속의 누군가.
결국 현실, 그리고 여지 /
5년 후, 과거의 꿈을 이룬 미아는 우연찮게 한 재즈바로 들어서게 되고 그곳에서 역시 꿈을 이룬 셉을 마주하게 된다. 셉의 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클리셰와 오마쥬들은 현실로 싸늘해진 관객의 마음을 잠시나마 또 하나의 라라 랜드로 데려간다. ‘그때 그랬다면’을 시작으로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는 행복한 둘의 모습. 하지만 그곳엔 꿈을 이룬 미아와 꿈을 포기한 셉이 있을 뿐... 셉을 여전히 사랑하고 그의 꿈도 사랑하기에 자기중심의 라라 랜드에서 헤어 나와 담담하게 현실을 마주하러 나선다.
다시, 똑똑히 보았다 /
반대로 가더라. 5년 후 금의환향한 미아의 골프 카트는 영화 초입의, 그러니까 그녀가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여배우의 카트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카페를 떠났다. 극적 장치의 두 장면이 완벽히 같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 사소한 방향의 의미는 크고 무거웠다. 적어도 나에겐 확실히 그랬다.
The light house 카페에서 셉은 밴드의 연주를 들으며 재즈를 이렇게 묘사한다.
It’s new every time. it’s brand-new every night. It’s very very exciting!
반복되는 코러스 속에서 즉흥적인 연주자들의 이야기가 재즈를 ‘very very exciting’하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씬들의 극적 반복 위에서 감독은 현실의 클리셰 속에 숨은 꿈같은 여지를 남긴 것은 아닐까?
2
감독의 연출은 물론, 극에서 다루는 재즈는 반복이라는 큰 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난 그 속에 숨겨진 사소한 변칙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도돌이표. 힌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