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짓도 재능
열 가지 재주 가진 놈이 굶어 죽는다
외할머니한테 그렇게도 많이 들었던 말이에요. 전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많았습니다. 그건 뭐 뾰족한 하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어른들이 말하는 그 밥 벌어 먹여 줄 "한 가지 기술"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늘 새로운 것을 찾고 배우고, 꽂히면 밤을 새면서라도 파헤쳐서 먹고 씹고 즐기곤 했죠.
집에 컴퓨터라는 녀석이 들어오고 나서는 얼마나 컴퓨터랑 죽고 못 살았나 몰라요. 멀쩡한 바탕화면을 이것저것으로 바꾸다 지겨워져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그림판으로 만들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무작정 혼자 포토샵을 독학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디자이너가 얼마나 힘들게 고생해서 만들었을 텐데... 윈도우즈 아이콘을 하나하나 다 바꿨어요. 혹시 그거 아는 분 계세요? 키티, 미키, HOT 오빠들 얼굴 이런 걸로 아이콘 다 바꾸는 거... 다이어리 꾸미기가 이렇게 컴퓨터 세팅환경 꾸미기... 요즘은 아이패드 굿노트 꾸미기.. 이런 것까지 번진 게 아닐까요. 마우스 커서조차도 가만히 못 내버려두고 캐릭터나 색깔로 바꾸고 얼마나 난리였게요. 그런 거에 빠져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웠었어요. (생각해 보니 지금 밤작업하는 게 그때부터의 영향인가... 진심으로 깜짝 놀랐네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굳이 예쁘게 포장해 보자면 PC 디스플레이 커스터마이징(?) 하느라 시간을 그렇게나 쏟았죠. 어른들한테도 얼마나 혼났나 몰라요... 쓸데없는 짓 한다고. 저에게 컴퓨터 앓이는 잠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게 아니었어요. 교회에서 행사를 하고 나면 사진을 꾸미겠다고 나서서 , 영상을 자처해서 꾸미겠다고 했었죠. 당시 무료 배포했었던지 제가 어둠의 경로로 구했던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소니 베가스로 영상 편집도 엄청 했었어요. 이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제가 했던 뻘짓입니다.
2023년 현재 전 AI 교육 회사를 운영합니다. 디지털 능력을 가르치고 배우는 협회도 운영합니다. 사람들은 절 보고 "그런 건 어디서 배웠냐" "어떻게 이런 것도 아냐" 많이 물으세요. 네... 어른들이 엄청 뭐라 하던 10대 때 하던 뻘짓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전 문과였고, 대학에서도 인문학도 졸업 후 줄곧 영어 교사, 강사로 일했어요. 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모든 건 그냥 뻘짓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때요? 저의 가장 찬란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쓸데없는 일이 하나도 없더라고 하기도 하잖아요? 네, 전 그 말을 믿는 쪽입니다. 나는 좋아하고, 미쳐있는데 남들은 별 볼일 없다고 하는 일... 미래의 내가 사용하게 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줄 수도 있다는 말이죠.
Jack of all trades is a master of none but oftentimes better than a master of one.
여러 가지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특정 한 가지에 능숙한 사람보다 종종 더 나을 수 있다
+ 덧
분명 이렇게 생각하는데... 분명 그런데... 딸내미 아들내미가 내가 보기에 영 아닌 짓을 하면 전 또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되어 버릴 뿐이겠죠? 후... 마음을 다스리자. 그들의 뻘짓이 미래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