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적지 않는다. 기억되어야 할지 몰라서. 어떤 순간은 적지 못한다. 적을 시간이 없어서. 어떤 비밀은 적히지 않는다. 비밀이 아니라서. 어떤 고민은 적지 않는다. 그만 적고 싶어서. 적는 것들과 적지 않는 것들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기록은 대부분 의지의 산물이었지만 그만큼 우연의 축적물이기도 했다. 적는 것과 적지 않는 것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남는 건 결과일 뿐이다. 적힌 것들은 남겨지고 아닌 것들은 다른 식으로 남겨지거나 또는 기록 바깥의 영역에서 옅어진다고. 적힌 것들이 더 가치 있는 것도 아니고 적히지 않은 것들이 무가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돈으로 시간을 구입해서 기록으로 남길 여유를 마련해도 옮길 수 없을 만큼 찬란하고 눈부시고 눈물겹고 가슴 벅찬 장면도 넘치고 넘쳤다. 그런 순간은 글과 사진이 아니더라도 아주 깊게 새겨져 오랜 잔상을 남긴다. 해야 할 일들과 들어야 할 말들이 10월과 11월의 낮과 밤 속을 가득 넘실거리고 있는 요즘, 방향 없이도 나아가야 할 것들의 수를 세고 있었다. 내일 마주할 사건들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고들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