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온 0도. 가을이 끝나는 동안 균열을 감지하고 있었다. 추위가 시작되며 살얼음이 깨지는 걸 보고 있었다. 살얼음이 아니었다. 깨진 건 나였다. 깨졌다는 걸 알았을 때. 깨진 건 나였다는 걸 알았을 때. 이미 과거였다. 과거를 듣고 난 후에야 과거에 깨진 건 나라는 걸 알았다. 과거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과거의 시간에 대한 파괴를 각오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죄에 대한 이유를 물을 순 없겠지만. 의아한 표정까지 감출 순 없었다. 식어가는 낯빛까지 밝히긴 어려웠다. 최초의 경험에 대한 반응은 이런 식이다. 어떤 최초에는 모든 감각이 열리는 환희가 따라오겠지만 이번 최초는 아니었다. 위험했으니까. 내가 위험했다. 내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미 미치고 있을지 모를 범죄였다. 왜 이런 죄가 내게 왔을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치울 수 없었다. 어디론가 흡수되어 오염시키고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극적인 고통은 표출되지 않았다. 너무 늦었다.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난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길바닥에 누워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무엇에 치인지도 몰랐으니까. 뺨에 볕이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걷다가 보이지 않는 뭔가가 몸을 지나갔고 정신의 일부가 분쇄되었다. 외압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싹둑 나누긴 싫지만. 누군가 그랬다면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면 원래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미리 그걸 알고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까. 거대한 삽으로 뒤통수가 잘려 나가기 전에 막거나 피할 수 있었을까. 이런 가정은 얼마나 누추한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데.
내가 감지하지 못한 것과 내가 선택하지 않기로 한 태도 사이에서 공백과 여백이 돋아나고 이 공백과 여백에 누군가 오해와 증오와 공격을 그리고 다 완성된 오해와 증오와 공격의 그림을 가지고 누구에게 보여주고 설명하고 인식시키고 영향을 미치고 펑 사라지고. 어떤 세계는 얼마나 모르냐에 따라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고 자신만의 동력으로 움직이게 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알아야 하는 것과 몰라야 하는 것, 알지 못했던 것과 뒤늦게 알게 된 것,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과 미처 알지 못해 대응할 수 없었던 것 등이 얽히고 얽혀 타이밍이 엇갈리며 진실과 의견이 오가고 사건과 사고가 밝혀지고 무력감과 놀라움, 불신과 허무가 겹겹이 쌓인다. 잊고 지내고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일부분에 대해 유추하게 만든다. 놓친 것들과 가볍게 지나간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무죄 너는 유죄라고 선고한다. 무엇을 믿고 있는 걸까. 무엇이 부당할까. 시그널이 있었을까.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알아차렸으면 달랐을까. 이 모든 건 선택의 결과일까. 불확실성에 의해 당한 걸까.
답은 영영 모를 것이다. 문제가 제대로 쓰이지도 다 읽지도 파악하지도 않았으니까. 비슷한 사건사고가 다가온다면 감지할 수 있을까. 그때는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가해자에겐 내가 가해자일까) 어둠 속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을까. 막을 수 있을까.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타인의 자유의지가 휘젓고 있는 경로를 재설정할 수 있을까. 믿지 않았으면 달라졌을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덜 억울할까. 그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을까. 난 타인의 죄를 뛰어넘어 온전히 제값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도대체 무슨 짓을 한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했을까. 나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어디까지 모르고 있는 걸까. 이토록 구체적인 혼란은 오랜만이다. 아니 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