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회고
해마다 연말에, 다른 개발자들의 회고를 읽으면서, 나도 한번쯤은 회고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쓸 내용이 없어서 그동안 회고를 쓰지 않았었다. 2022년에도 내새울거 없는 평범한 한해였지만,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새해를 맞이하면서 2022년 한해를 회고하고자 한다.
시간이 참 야속하게 흘러간다... 벌써 43이라니
와이프가 파랑새가 집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소중한 아기가 찾아오는 태몽이었다. 임신중인 아내를 위해 주말에는 집안일을 전담했고, 산부인과에 2주 주기로 내원했다. 다행히 회사의 격주 놀금에 맞춰서 산부인과에 방문할 수 있어서 회사 업무에 어려움은 없었다. 무사히 가을에 출산하였고 아이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모든게 너무 감사하다.
100일이 조금 안된 육아 중인데, 자유시간이 거의 없다. 아기는 3시간에 한번씩 분유를 먹고, 시도때도 없이 놀아달라고, 안아달라고, 재워달라고 울어서 육아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기술블로그를 만든 이후로 22년에는 가장 적은 글을 작성했는데, 포스팅을 보통 주말에 작성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상관없다. 건강하고 소중한 아기가 찾아온 것만으로도 올해는 대성공이다.
신규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TF장 역할을 수행하였다. "WebRTC 기반 게임 리모트 플레이"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었고, 회사는 관련 기술력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업계 후발주자로서 짧은 시간에 최소한의 개발 리소스로 핵심 기술력을 확보해야했다. 나란 사람은, 게임 도메인에 대한 부족한 역량, 커뮤니케이션 어려움 등 여러가지로 부담이 되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나는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서 명확하고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다. 게임 사용자의 플레이 환경 개선이라는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끌고갈 수 있었고, 내가 리딩하는 프로젝트가 반드시 성공할거라 확신했다. 제한된 개발 리소스에서 성과를 낼수 있는 가장 빠르고 심플한 아키텍처로 프로토타입 개발을 착수하였고, TF리딩 4개월 쯤 진행되었을 때 가능성 있는 프로토타입 개발을 완성하였다. 대표님께 찾아뵙고 직접 데모 시연을 하면서 보고를 드렸고, 게임 개발사에 방문해서 서비스 도입 제안을 위한 PPT 리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핵심 기술력 확보를 하였지만, 실제 서비스를 오픈하기에는 나의 역량은 많이 부족했다. 아쉽지만, TF는 5개월만에 해산하게 되었고, 나는 프로젝트를 들고(?) 팀을 이동하게 되었다. 이동한 팀에는 훌륭한 리더가 계셨고, 나는 다시 팀원이 되었다. 그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 관련 기술을 새로운 팀원들에게 잘 인계하는 일이 내 첫 임무라 생각했다. 새로운 팀원들이 개발을 빠르게 시작할 수 있도록 WebRTC 기술 전파 및 연동 가이드를 전달하였고, (나에겐 낯선 멤버들이) 개발에 빠르게 투입할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사실, 리모트 플레이 핵심 기술력은 이미 TF에서 확보가 된 상황이었다. 단지, 서비스 오픈을 위한 추가 작업이 필요했고, 기획 조직과 협업하여 빠르게 진행하였다. TF에서 리딩하던 업무를 천천히 새로운 리더에게 자연스럽게 넘겨주었고, 나는 WebRTC 시그널링 서버를 주도해서 개발하였다. 내 포지션에 크게 신경쓰진 않았고, 프로젝트 서비스 오픈이 잘되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무사히 서비스는 12월 중 오픈하였고(사실은..서비스 오픈 직전에 팀을 이동하였다), 나는 WebRTC 의 한 축이 되는 시그널링 서버를 나름 잘 개발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기존에 사내 지원 부서에서 제공했던 WebRTC 시그널링 서버가 있었지만, 우리 프로젝트에서 사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처음부터 새로 개발하기로 결정했었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새로 만드는 선택은 매우 잘한 것 같다.
WebRTC 프로젝트를 리딩하고 개발하면서 경험했던 주제로 if kakao 2022 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if kakao 지원자 모집할때 나는 지원하지 않았는데, 프로젝트의 개발/QA 일정이 겹쳐서 if kakao 준비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서비스 오픈을 하기 전에 발표를 준비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서비스 오픈이 되지 않은 주제를 외부에 발표하게 되면, 상세한 서비스 기획을 미리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비공개로 발표해야만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나에게 발표를 제안했고, 평소에 if kakao 오프라인 발표는 꼭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고민끝에 도전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ifkakao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경되었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주말에 틈틈히 겨우겨우 준비하였고, 무사히 온라인 촬영을 마무리했다. 서비스 오픈 전에 촬영한 영상이라서 많은 내용을 생략해서 너무 아쉽게 생각한다. 프로젝트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고, 풀지 못한 얘기들이 많지만 (나는 이미 팀을 이동했기 때문에) 하고싶은 말이 있어도 더이상 하지 않을 예정이다.
if kakao 발표자 굿즈를 받았다. 처음 받았을 때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와이프는 집안일과 회사 업무, 발표 준비를 병행하면서 내가 고생한거를 잘 알아서인지, 고생에 비해서 쓰잘데기 없는걸 보내줬다며 엄청 웃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팀업무 외에, if kakao 준비하는 공동체 담당자 역할을 맡았다. DevRel 은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업무였는데 개발자 교육, 기술 공유 등 개발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대해서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DevRel 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사실, 기술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이다. 하지만, 회사 업무(프로젝트)를 하면서 DevRel 을 병행하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기술기획팀,기술전략팀 같은 DevRel 전문 조직에서 수행하는 업무인데, 평범한 개발자인 내가 개발 업무와 병행해서 DevRel를 수행하기에는 많이 어려웠고, 주1회 미팅 조차 부담스러웠다. 암튼, DevRel 역할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회사 상황을 지켜본 후 다른 담당자를 찾아서 넘겨줘야할것 같지만, 2023년 if kakao가 오프라인으로 진행한다면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해보고 싶긴 하다.
고민중이다.
1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고 서비스는 무사히 오픈하였지만, 나는 서비스 오픈 직전에 팀을 이동하게 되었다. 한해에 두번이나 팀을 이동하게 되었는데, 오픈 후 트러블슈팅까지 경험하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나는 회사의 제안을 존중하고 동의한다. 회사의 전략에 따라서 이동한 팀은, 리빌딩이 매우 시급했다. 기술부채가 쌓여있고, 소스코드는 관리되지 않았다. 아키텍처 문서는 업데이트가 필요하며, 개발자가 부족해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업무가 수없이 쌓여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클래스와 메서드로 가득했고, 개인톡으로 진행한 업무도 많아서 업무 파악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부채를 개선할 시점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그동안 미루고 있던 업무를 리딩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팀에 합류하자마자 업무파악도 되기 전에 나는 신규 인력 채용을 위해 수많은 이력서를 보고 있다.
와이프의 임신/출산 으로 주말에 개인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다. 대학 특강 제안이 왔지만 결국 하지 못해서 아쉽게 생각한다. 회사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핑계로 못했는데 사실 너무 바빠서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개인 스터디도 거의 하지 못했고, 기술서적도 몇권 읽지 못했다.
올해는 불안한 감정의 연속이다. 40대 개발자로서 몇살까지 개발할 수 있을지 고민이 크다. 개발만 하겠다는 생각은 접은지 오래전이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커리어를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다. 멘토는 나에게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셨다. 내 미래를 먼저 그려본 후, 그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고 조언해주셨다. 매니징, 순수개발자, 테크 리드, 미래의 커리어를 정한 후 그에 맞게 앞으로 5년, 10년 커리어를 쌓아가면 된다고 조언을 해주셨다. 감사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하고 싶다고, 전부 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30 중반 넘어서 최근 7년 동안 같은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몇 살까지 개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고민이 추가되었다.
"몇살까지 개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나는 뭘 하고 싶은걸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똑같겠지만, 나는 어떤 자리가 주어지던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남에게 인정받고 싶으면 남이 나를 봐줘야 하는데, 그들 역시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결국 남에게 인정받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회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게 좋겠다. 큰 회사일수록 점점 부품화 될 수밖에 없고, 회사가 나를 알아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너무 상심하지 말고 나 스스로를 잘 살펴봐야겠다.
"몇살까지 개발할 수 있을까"...
새로운 고민 "나는 뭘하고 싶은걸까"
여전히 나는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장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블라인드에서 누군가 꿈을 명사로 가지면 힘들고 동사로 가져야 한다는 글을 봤다.
"필수 인재", "꼭 필요한 사람" 같은 명사를 꿈으로 갖지 말고,
"팀에 긍정적인 활력을 불어넣는다", "매일 1%씩 실력을 키우겠다"처럼 꿈을 동사로 가져가고 꾸준히 노력하는 나를 칭찬해주는 게 좋겠다.
나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를 칭찬해주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회사에서 내가 엄청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회사에서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조금씩 매일 성장하면서 노력하면, 그래도 주변에서 누군가는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현재 상황에 너무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하다 보면 주변 동료들이 좋은 인맥으로 남겠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일단 가족의 건강!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것이다. 나는 미완성의 개발자이고, 배울것도 많고, 아직 갈길이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육아를 소홀히 할수 없어서 당분간 몇년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계획을 세우고 가치있는 일을 하나씩 간결하게 해내도록 하자.
새로 맡게된 팀의 리빌딩이 시급하다. 기술부채도 많고, 쌓여있는 일도 너무 많다. 하지만, 기술부채를 개선할 시점은 아닌것으로 판단된다. 팀을 키우고, 성과를 낼수 있는 업무를 주도적으로 끌고가야하는 시점으로 보인다.
정말 어려운 주제이고, 요즘 계속 고민 중이다. 유연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기획,사업 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다보면 개발자의 생각대로만 진행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나는 소프트웨어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사람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복잡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개발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때론 내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때가 온 것 같다.
2023년에는, 아키텍처에 대한 고민보다는, "소프트 스킬"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하기로 다짐하며 회고를 마치겠다.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하는데,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죄송하며..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2023년에는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화이팅!